“인류가 지금처럼 산다면, 50년 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없다"

2014.01.04 | 조회 14207

ㆍ“인류가 지금처럼 산다면, 50년 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없다”
ㆍ“권력 잡은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하면, 혁명 일어날 것”

2014년이 밝았다. 갑오년인 올해는 한반도가 역사적 격랑에 휩싸였던 120년 전의 갑오년에 비유되곤 한다.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 일본의 보수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수와 진보의 반목이 더욱 심해지며 ‘유신’과 ‘종북’을 불러 싸움을 시킨다.

사람들 사이에 놓인 선은 집단끼리 경계를 만들며 이젠 벽이 된 듯하다. 월드컵 붉은 티셔츠를 나눠 입던 우리들은 서로에게 보수와 진보라는 딱지를 붙였다. ‘민주화’라는 단어도 두 개의 뜻으로 달리 해석한다. 좋아하는 영화에 따라 편이 갈리고 밥상에도 함께 앉기 불편해졌다. 그 속에서 미래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은 우리 손을 떠나고 있다. 세계는 문명의 위기를 논하며 산업적 전환을 꾀하고 생태환경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며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길게 멀리 보려 하지 않기에 걸린 덫이다. 역사에서 반복된 패턴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도 적용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린 인류가 지나온 긴 시간을 거울 삼아 지금 당장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멀리 보면, 엉켜진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의 해결 실마리도 잡힐 수 있다.

우리의 현재를 비춰줄 안내자로 미국 UCLA 지리학과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찾았다. 그는 인류 탄생 이전부터 내려오는 수억년의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문명의 발생, 이동, 몰락을 세밀히 살펴온 세계적 지성이며 남은 생을 지구의 생명이 지속 가능하도록 이어가는 데 쏟겠다고 선언한 활동가다.



다이아몬드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월9일 LA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붉은 벨벳 재킷으로 격을 갖춘 노학자는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우리의 대담은 한 시간 동안 몰입의 깊이를 유지했다. 이 문명의 살길을 묻는 내게 그는 온 정성을 다해 답했다. 

안희경 = 선생께서는 2006년 <문명의 붕괴(Collapse)>를 출판하며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4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별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단지 1000년뿐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고요. 우리 현대문명은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스티븐 호킹은
1000년뿐이라 했지만
우리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


다이아몬드 = 스티븐 호킹은 틀렸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에겐 1000년의 시간이 있지 않아요. 고작해야 50년뿐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풀든지 망치든지 할 수 있는 시간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이 별을 망쳐놓고 다른 행성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살 만한 별이라면 분명 이 태양계 말고 다른 은하계일 텐데, 그 먼 별에 도달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별을 망가뜨리지 않는 데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안 = 50년이라는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 =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50년 뒤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참 좋아하죠? 안타깝게도 세계 대부분의 어장이 50년을 못 버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속한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어려워요. 참치는 고갈되고 있습니다. 황새치는 대서양에서 사라졌고 태평양에서도 사라져가고 있죠. 또 다른 예는 목재입니다. 한국은 열대우림의 목재를 엄청나게 수입합니다. 이대로라면 세계 대부분의 숲은 30년 안에 사라집니다. 쉽게 꺼내 쓰던 화석 연료도 고갈되니까 바다로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이 파들어가죠. 또 다른 예는 물이에요, 담수. 소금물을 가져다 염분을 제거해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럼 또 고갈되는 화석연료를 써야 하니까 안되고요. 지금 세계 강물의 85%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머지라고 해봐야 아이슬란드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주 외딴곳이니까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물전쟁이 터질 만큼 위태롭습니다. 다뉴브강을 두고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충돌했고, 시리아와 터키도 그랬어요. 중국과 베트남, 태국까지 히말라야 고원에서 오는 물 때문에 갈등이 깊어질 조짐입니다.



안 = 마지막 물고기를 잡고서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는 인디언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불 붙은 집 안에서 이윤과 성장을 담보로 한 내기장기에 정신이 팔려 있구나 싶은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비관적인 예측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현대문명은 기술 발전을 통해 많은 해법을 제시해 왔습니다. 

다이아몬드 = 그래요. 기술은 많은 것을 해결합니다. 에너지를 예로 들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기술도 나왔죠. 덴마크에서는 20%의 에너지를 바람으로 만들고, 독일 서부와 스페인 북부에서도 풍력 발전의 양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80% 가까운 에너지를 핵발전으로 생산하고, 캘리포니아 남부는 태양열 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염 문제도 풀고 있죠. 하지만 이는 기술이 갖는 좋은 면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나쁜 면이 있습니다. 바로 부작용인데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기술은 단 한번도 개발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냉장고에 쓰는 냉매가 유독해서 가스가 새어나오면 사람이 죽었어요. 밤에 자러 가면서 걱정을 했죠. ‘냉장고가 새면 내일 아침에 깨어날 수 없을 텐데’ 하고요. 그 와중에 굉장한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1940년대에 프레온이 발견된 겁니다. 사람이 죽을 일이 없어진 거예요. 기술 혁신입니다. 그런데 이 신념이 뒤집혔어요. 그것도 20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프레온 가스가 태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입니다. 프레온 가스는 금지됐습니다. 자, 이제 제 답을 내놓을 차례입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작동시킬 에너지 발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바람이나 태양, 핵발전처럼 더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겁니다. 

기술 발전 폐해 알았다면
지속 가능 에너지 찾아야
환경정책 거부만 말고
정치인이 결단 내려야


안 =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가운데 핵발전을 거론하셨는데요. 대기 오염을 유발하지 않고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많은 정부들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방사능이 유출되면 치명적입니다. 최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식품 오염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탈핵 요구 등 저항감이 높습니다. 



다이아몬드 =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에게 건강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사고 역시 비극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습니다. 이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그곳에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화석연료를 태웠겠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끔찍한 대기 오염을 유발합니다. 중국의 오염된 바람이 한국까지 불어오잖아요. 저는 후쿠시마의 비극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생활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고통받고 있어요. 베이징 도로에서 일하는 경찰관의 평균수명이 42세입니다. 거리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때문에 폐 관련 질환으로 죽어가죠.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안 = 핵발전소가 필요하도록 조장하는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말씀인데요. 에너지 소비가 감소되면 자연히 발전량은 줄어들게 되겠죠. 

다이아몬드 =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쓰는 에너지의 반만 소비합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인들을 닮을 수 있다면 미국의 화석연료 소비는 반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정치적 결단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환경정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안 = 나쁘다고 정의되는 일들이 세상에 기여해 온 업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파괴를 동반한 산업화의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다른 결핍에서도 벗어났죠. 저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여는 있다고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값싼 소비를 통해 생활의 편리를 얻을 수 있었죠. 중국은 대기 오염을 줄이고자 철강 생산에 제동을 건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생산 감소로 미국 철강회사의 이윤이 늘고 값도 올랐어요. 중국 대기가 맑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서민의 부담이 커집니다. 1%와 99%가 대결하는 갈등 구조 속에서 함께 감내해야 하는 불편은 수치로만 평등합니다. 실제 고통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약자의 등을 먼저 휘게 만들죠. 

가난한 나라 분노 생기면
부자 나라에도 문제 발생
그 예가 소말리아 해적
그들 공격 멈추는 방법은
정직하게 살도록
나눠주는 원조가 유일 


다이아몬드 = 그래요, 우리 삶의 표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어요. 당신과 나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소수의 농부들이 키워주고 있죠. 미국에서는 인구의 2%인 농부들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서 98%를 다 먹이고도 세계로 수출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항생물질 덕분에 병에 걸려도 죽지 않고 치료가 될 거예요. 내 이야기는 우리가 현대문명을 배척하거나 항생제를 버리고 다시 감기나 천연두로 죽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받아들이자는 겁니다. 

안 = 지속 가능한 경제란 무엇을 말하나요.

다이아몬드 =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예가 되겠죠. 미국 자연산 연어는 거의 알래스카에서 잡힙니다. 연어잡이 어부들은 정부가 알려주는 어획량만큼만 잡습니다. 매년 야생 연어의 숫자는 비슷하게 되죠. 반대의 예는 지중해 참치입니다. 참다랑어라 불리는데 일본에서 최고의 횟감으로 큰 건 1억원이 넘습니다. 자, 이쯤되면 일본 사람들이 참치초밥을 무척 사랑해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아닙니다. 유럽에서 지중해 참치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자고 토론할 때 일본 사람들은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 5년이나 10년 안에 일본은 참다랑어를 먹지 못할 겁니다. 세상 모든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한다면, 우리는 스티븐 호킹 말처럼 앞으로 1000년은 넉넉한 해산물을 갖게 될 겁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것
지중해 참치어장 지속성
일본인들이 앞장서 반대
그 결과 5~10년 안에
참다랑어 못 먹게 될 수도


안 = 제가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생수를 마실 수 있는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산소탱크를 사서 오염 안된 공기를 흡입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는 소득에 따라 삶의 질이 굉장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장의 논리라면 물건값은 큰 폭으로 상승할 거고요. 기존 소비자들의 불만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욕망은 그대로인데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요.



다이아몬드 = 맞아요. 부자는 참다랑어를 더 오래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5년 안에 끝납니다. 당신의 질문은 바꿔 말하면 ‘부자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지 않을까’인데요. 네,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도 즐기지 못할 것들이 늘어갑니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1%의 미국인들이 80%의 부를 가졌습니다. 나라들 간에도 비슷해요. 한국은 1인당 평균 소득이 대략 2만5000달러인데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는 500달러죠. 한국의 수입이 가난한 나라의 50배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풍부한 해산물을 즐겨요. 수도꼭지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죠.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화가 상황을 변화시켰습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화났다고 미국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분노한다고 해서 미국에 지장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2001년 9·11 이후 더욱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가슴에 분노가 일렁인다면 이는 반드시 부자 나라에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한 가지 예가 소말리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정부마저 무너졌어요. 그들이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배들이 지나가는 겁니다. 유럽의 상선들, 미국의 상선들…. 그리고 그들은 해적이 되었습니다.

안 = 한국의 배도 여러 차례 납치를 당했습니다.

다이아몬드 = 소말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문제를 일으켜 돈 챙기는 법을 발견한 거죠. 소말리아인의 공격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원조입니다. 그들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하도록 돕는 거죠. 한국 배를 잡아 인질을 삼는 대신 정직하게 일하며 먹고살도록 이끄는 겁니다. 부자가 자신이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좋은 이기심이 이것입니다. 이제 가진 것을 지키려면 나눠야 해요.

안 = 1% 지배층의 자기 보호 방법은 ‘함께 살자’는 99%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네요. 그렇죠. 함께 살자는 생각이 권력의 카르마(업)를 멈출 수 있겠네요. 그 누구보다 긴 역사를 다루어 왔는데 역사적으로 문명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지요. 절정에 오른 문명이 극적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왔습니다. 문명 자체가 고도의 발전인데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드는 것
모두가 안녕해야지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돼 


다이아몬드 =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역사 속에서 왜 어떤 사회는 몰락하고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았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뤘던 마야 사람들이 대단한 천문학과 문자, 사원 등을 가졌을 때 왜 무너졌을까요. 마야 왕들이 뿌려놓은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계속 굶주리고 헐벗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활은 품격이 있었어요. 결국 지친 마야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타도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선거에 몰두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잠깐은 괜찮아도 사회를 몰락으로 이끄는 과업을 피할 수 없습니다. LA에서 제 평생에 두 번 시민 소요를 봤습니다. 하나는 1960년대 LA 다운타운 흑인 동네에서 일어난 왓스 폭동이고, 또 하나는 방화와 파괴가 넓게 자행됐던 1993년 로드니 킹 폭동입니다. 특히 많은 한국 상점들이 화염에 휩싸였죠. 가난한 사람들이 빈민 지역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비벌리힐스의 부자들은 집이 불에 탈까봐 두려움에 떨었고요. 경찰은 뭘 했을까요. 길에다 노란 폴리스라인을 둘러치더군요. 그래도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진짜로 비벌리힐스를 불태우려 했다면 했을 겁니다. 그때는 분노가 충분히 타오르지 않았기에 소강되었습니다. 만약 100만명의 시민이 나선다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최상위 1%에 맞서 99%가 일어난다면 비벌리힐스는 사라집니다. 답은 지도자들의 역할에 있습니다. 자기들만을 위해 살겠다면, 권력을 잡은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하다면,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모두가 안녕해야 합니다.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됩니다. 

안 = 선생께서는 문명사에 대한 저술을 발표하다 어느 시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데 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낳은 다음 더 민감하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지구 살리기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이아몬드 = 나는 쌍둥이를 두었어요. 1987년에 태어나서 26세입니다. 언젠가 지금 우리 둘이 나누는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2050년에는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러는 거예요. 2000년은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내가 예순셋일 테니까요. 2050년은 상상 속 숫자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AD 3200년처럼요. 그런데 아들들이 태어나니까 2050년이 현실로 와 닿았습니다. 내 아들들이 예순셋이 되는 실제상황인 거죠. 당신에게 적용해 봅니다. 딸이 여섯 살이잖아요. 2007년에 태어났겠네요. 2050년이면 마흔셋이고 우리가 다 파괴하지 않으면 살아있을 거예요. 그래도 2050년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티처럼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하수시설도 없을지 몰라요. 아니면 소말리아 사람들이 자동소총으로 배를 해적질하는 대신 핵무기를 들고 한국이나 미국에다 핵폭탄을 떨어뜨릴지도 모르고요. 큰 기업들의 지도자들이 요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래서 물어봤어요. 쉐브론 최고경영자한테 언제부터 신경 쓰게 된 거냐고. 딸 이야기를 합디다. 집에 가니 열세 살 딸이 묻더랍니다. “엄마는 환경을 위해 오늘 무슨 일을 하셨어요?” “환경? 난 그 말만 나와도 괴롭다. 환경이 뭐가 중요한데. 시간낭비 말고 공부해라.” 딸이 퍼붓더랍니다. “엄마는 한심해. 엄마가 세상을 망치고 있어. 엄마랑 말 안 해.” 그래서 바뀌었대요. 많은 경제계 인사들이 같은 말을 합니다. 자식의 미래를 지키려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가슴으로 느낀 거죠. 당신의 한국 지도자들, 신문을 읽을 경제를 책임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살 50년 뒤의 세상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들이 지금 안녕한 생활을 하든, 지중해산 참다랑어를 음미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안녕할 것인지 그걸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77) 45년 걸어온 생리학자 길 접고 인류문명 발달 연구 몰두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 그의 학문적 연구와 성과는 생리학에서부터 진화생물학, 조류학, 지리, 역사, 환경까지 광범위하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6년 UCLA 의과대학 생리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러다가 65세 되던 2002년, 45년 동안 이어온 생리학자의 길을 접었다. 지리환경 비교사학자의 길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이런 삶의 전환은 28세에 떠났던 뉴기니 섬 여행에서 비롯된다. 그는 뉴기니 말을 배워가며 생리학 못지않게 인류문명 발달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같은 무게로 두 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청소년기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배웠고 20대 중반에는 열두 번째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오전에 2시간 동안 이탈리아 문학작품을 필사했다. 그리고 매일 2시간씩 새를 관찰하며 걷는다. 새들이 보여주는 미미한 변화 속에서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고자 한다. 

미국예술아카데미, 미국과학아카데미, 미국철학협회 회원이고 환경 분야의 업적으로 타일러상, 국립과학메달을 수상했다. 대표 저서로는 문명사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총균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가 있다. 특히 <총균쇠>는 1998년 퓰리처상과 영국 과학출판상을 수상했다. 

안희경(43) 서구의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 집필

재미 저널리스트. 불교방송 PD로 시사·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1998년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 2000년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윌리엄 켄트리지, 다카시 무라카미 등을 인터뷰한 <현대미술 거장과의 만남>(2010), 노엄 촘스키·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2013)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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