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기니·수단…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미얀마·기니·수단…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주간경향 2021.12.27
김영미 다큐엔뉴스코리아 대표기자
2021년에는 유독 많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얀마, 기니, 수단, 차드, 말리의 쿠데타는 성공했지만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는 실패했다. 국제사회는 쿠데타를 반민주적 행태로 보며 결코 용인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각국의 실리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종종 연출한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팬데믹 공포 속에 세계는 또 다른 딜레마와 싸워야 했다.
지난 11월 21일 미얀마 양곤 라인시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 모습 / 미얀마 시민방위군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 일으킨 미얀마 쿠데타는 아시아 국가들에 충격을 줬다. 현재까지 미얀마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지만, 미얀마 군부는 무력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얀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최대 명분은 지난해 11월에 치러진 미얀마 국민선거다. 군부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창출하는 원칙은 단 하나, 선거를 통해서다. 하지만 쿠데타는 이 원칙을 무시하고 군대 등을 이용해 무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다는 데서 지지를 받기 힘들다. 미얀마 군부는 부정선거를 내세우며 나름 민주주의 명분을 찾으려 했지만 저항하는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해 명분도 많이 퇴색됐다.
기니 쿠데타 땐 알루미늄값 껑충
지난 9월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은 기니 군 특수부대 사령관인 마마디 둠부야 대령이었다. 둠부야는 1958년 기니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 지도자들이 경제발전은 뒷전이었다며, 그런 혼란한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이 최선의 행동을 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국경을 폐쇄하고 헌법을 정지하고 본격적인 정권 접수에 나섰다. 기니는 지난 2010년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투표를 통해 알파 콩데(83) 기니 대통령이 당선됐다. 문제는 콩데 대통령의 3선 연임 욕심이었다. 기니 헌법상 대통령 연임은 재선까지만 가능한데 정권욕에 눈먼 콩데 대통령은 3선 연임을 위해 지난해 3월 국민투표를 거쳐 개헌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24일 대선에서 콩데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다. 국민의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혼란 속에 시위대와 경찰 등 수십명이 사망했다. 이후 기니 헌법재판소가 대선 결과를 인정하며 콩데 대통령의 3선 연임이 확정됐지만, 여전히 정국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때 콩데 대통령이 군 급여를 삭감하자고 군대에 제안했다. 둠부야 대령은 강력히 반발했고, 쿠데타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콩데 대통령은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자원 개발에 대해 정상회담을 했다. 기니는 보크사이트 74억t을 보유해 전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을 갖고 있다.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도 많은 자원 부국이다. 자원외교에 관심 많은 이명박 정부는 기니를 중요한 국가로 봤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의 주재료다. 둠부야 대령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전 세계 알루미늄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기니 쿠데타 다음날인 9월 6일, 런던금속거래소 등 국제금속선물시장에서 알루미늄 3개월 선물은 1.07% 오른 t당 2785달러로 장을 마쳤다. 올해 초 2000달러 초반이었던 가격 대비 38%나 오른 것이다. 알루미늄 가격이 껑충 뛰자 전 세계가 기니의 쿠데타에 주목했다. 쿠데타 세력인 둠부야 대령도 이를 의식해 보크사이트 수출의 길은 열어놨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기니의 정국이 불안해 전 세계 알루미늄 시장은 동요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북아프리카 수단에서도 쿠데타가 발생했다. 압둘라 함독 수단 총리는 가택 구금당했다. 쿠데타 세력은 여러명의 내각 의원과 정당 지도자도 체포했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 국제공항은 즉시 폐쇄됐다. 전기 및 인터넷 접속 등 모든 통신시설도 차단됐다. 수단은 지난 2019년 4월 시민의 유혈 시위와 군부 봉기로 30년간 장기집권했던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했다. 알 바시르 전 대통령 축출 이후 군부와 야권이 주권위원회를 구성해 막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던 상황이었다. 과도정부는 오는 2023년 말 총선을 치를 계획이었다. 쿠데타 직후 하르툼 시내에서는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군부는 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이날 총격으로만 7명이 사망하고 최소 12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단은 1956년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한 이후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했다. 1989년 군부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오마르 알바시르는 30년 독재를 이어갔고, 2019년 4월 그 역시 군부쿠데타로 축출됐다. 이후 군부와 야권이 연합해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과도정부는 완전한 민정 복귀를 목표로 2024년 총선을 계획했지만, 각 정파 간의 분열 등으로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는 민간과 군부 간 갈등으로 발생했다. 군사정부 출범을 원하는 군부세력과 군사정권을 원하지 않는 시민세력이 각각 시위를 벌이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지난 10월 16일에는 친군부 시민 수천명이 대통령궁 앞에 모여 군부에 쿠데타를 실행해 무능한 정부를 끌어내리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번 수단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은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이다. 1960년 수단 수도 하르툼 북쪽의 간다투 마을에서 태어난 부르한은 수단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인물이다. 그는 수단을 30년간 장기집권한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 치하에서 2019년 2월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됐다. 그후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실각하자 민정 이양을 논의하는 주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그는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주도 인물을 놓고 외신은 한때 보도에 혼선을 거듭했다.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대통령궁을 습격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알파 콩데 대통령(가운데)의 신병을 확보했다며 공개한 사진 / 연합뉴스
수단 유혈사태에… 국제사회 우려 표명
쿠데타에 반대한 수단 시민 수천명은 즉각 “군부 통치 반대”, “민정 이양”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수도 하르툼과 제2도시 옴두르만 거리에 몰려나온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타이어에 불을 붙여 도로를 차단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군부는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사해 최소 7명이 숨지고 140명이 다쳤다. 대학생인 한 청년은 “우리는 이제 막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다. 군부는 어떤 명분에서도 시민을 죽이며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시위 참가자는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군인들에게 정부를 맡길 수 없다. 수단 시민은 이제 바보가 아니다”며 분노했다. 수도 하르툼에는 오밤중에 군인들이 가정집을 쳐들어와 시위 참여자들을 체포·구금하는 군사작전이 전개됐다.
수단 쿠데타가 유혈 사태로 이어지자 미국 등 국제사회는 수단 쿠데타에 우려를 표명했다. 제프리 펠트먼 미국 동아프리카 특사는 트위터에 “미국은 (수단)군이 과도정부를 접수했다는 보도에 매우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과도기를 규정한 ‘헌법 선언’과 민주주의에 대한 수단 국민의 열망에 위배된다”며 수단 쿠데타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쿠데타가 지속되면 수단에 대한 7억달러(8180억원)의 일괄원조법안을 철회하겠다며 압박했다. 결국 수단 쿠데타 군부는 한발 물러서며 2023년까지 민간이양을 위한 합법적 국민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차드와 말리에서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비록 실패했지만,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에서도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아프리카는 지난 10년간 평균적으로 1년에 2회 정도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올해는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잦은 이유는 극심한 가난과 정부의 부패다. 국민의 원성이 커지면 이를 이용해 군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려 시도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진 것이 쿠데타가 올해 더 빈번해진 요인으로 보인다. 자체 방역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나라들은 무조건 봉쇄만 한 까닭에 의료비와 식량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며 민심이 동요했다. 수단은 물가가 4배 가까이 치솟았고, 식량과 생필품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가 올 한해 지속됐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이 같은 사회 혼란은 군부 쿠데타의 명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수단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군부 통치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수단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군부가 민간이양을 약속했지만, 쿠데타에 대처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예전 같지 않다. 미얀마도 쿠데타가 일어난 지 1년여가 돼가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미얀마 사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들의 국민은 비민주적인 정권 찬탈 방식을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개입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국제사회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오히려 서구 사회는 쿠데타 세력과 타협을 하는 경향도 보인다.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내정간섭 불가’ 정책도 번번이 유엔의 개입을 가로막는 요소다. 중국과 러시아는 심지어 일부 국가의 쿠데타 세력과 협조하기도 한다. 미국과 EU가 쿠데타 세력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압박 수단은 재정 지원 중단 카드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얀마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수단 쿠데타에 EU는 비난 메시지만 발표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 행동도 나서지 않았다.
주변국에도 많은 영향 미칠 것
문제는 쿠데타는 당사자들만의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국가에 쿠데타가 일어날 경우 주변국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쿠데타를 일으킨 수단 군부가 정권을 잡는다면 인근 국가인 에티오피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단 정부는 에티오피아 정부군에 맞선 티그레이 측에 그동안 물자를 공급하며 은밀하게 지원했다. 수단 군부 정권이 창출되면 이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정권은 통치세력으로서 쿠데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경분쟁 등 에티오피아와의 갈등 수위를 높이며 국민의 눈을 돌리려 할 수도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 내전 확대는 인근 테러 집단과 해적 활동의 본거지로 악명 높은 소말리아에도 영향을 미친다. 2007년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이 연합해 소말리아 치안 확보를 위해 1만5000여명의 연합군을 파견했다. 이중 4000명이 에티오피아군이다. 에티오피아군은 최근 티그레이 반군 소탕에 집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말리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어 그동안 다소 약화됐던 ‘알세바브’ 등 소말리아 극단 세력이 다시 활개 칠 수도 있다. 말리나 차드, 수단까지도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세력의 활약 국가들이다. 쿠데타라는 혼란이 이들에게 테러 명분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한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올해 쿠데타가 많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민주주의 가치가 그만큼 많이 손상됐다는 말이다. 합법적인 선거로 인해 국민이 선출한 정권이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진다는 원칙을 거스르는 무력 쿠데타가 용인된다면 지구상의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쿠데타로 정권이 창출된 역사가 있는 한국이 다른 나라의 쿠데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202112171323511#csidx13d5df8749f3559ad44c6e418de2b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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