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개벽뉴스

전염병, 재앙인가 축복인가?

2009.12.07 | 조회 131136

 

윤석현 (가정의학과 전문의)

“앞으로 세계전쟁이 일어난다. 그 때에는 인력으로 말리지 못하고 오직 병이라야 말리느니라. 동서양의 전쟁은 병으로 판을 고르리라.” (증산도 道典 2편 139장)


“역사를 돌이켜보면 큰 전쟁이 발발할 때는 반드시 큰 전염병이 뒤따랐으며, 인류 문명의 전환점에서는 질병이 그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개벽 실제상황』 p.386)

 
“독약도 잘만 쓰면 명약이 된다.” 는 속담이 있다. 이는 비단 병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이것이 그대로 적용된다. 과거 역사의 선례들에 비추어 보아,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인간사회가 치유될 수 없는 병이 들었을 때는 전쟁과 함께 찾아온 전염병과 같은 치명적 독약이 오히려 사회를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동안 인간의 역사 속에 등장했던 전염병 중 특히 중세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의 창궐은 역사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감소시킨 죽음의 사신 페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산파 역할을 했다. 페스트는 당시 유럽에서 있었던 세개의 크고 작은 전쟁을 종결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문명의 새 시대를 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전쟁과 함께 시작된 페스트의 역사
유럽에 불어닥친 페스트의 첫 진원지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 서남부의 운남 지방으로 추정되고 있다. 1320년부터 1330년까지 중국에 가뭄과 기근, 폭풍우, 지진, 홍수 등의 자연 재해가 닥쳐왔고 몽골 왕조에 대항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1330년경 몽고군은 운남성과 버마 지역의 폭동을 막기 위해 이 지역을 침공했다. 이때 당시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페스트는 몽고의 기마병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1333년에는 북경에서 대발해 인구의 3분의 2를 절멸시켰다.
 
페스트는 크게 세 경로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첫 번째 경로는 실크로드를 통한 상인들의 이동이고, 두 번째는 아시아와 무역을 하는 선박을 통해서 이다. 그리고 세 번째 경로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자랑하던 몽골 군대를 따라서 전파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중 유럽에 가장 큰 재앙을 안겨준 계기는 몽골 군대에 의한 페스트균의 확산으로 보인다.
 
 
유럽의 3대 전쟁을 종결시키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늘 전염병이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발생한 전염병은 전쟁의 과정에서 큰 변수로 작용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대발하던 무렵에도 세 번의 커다란 전쟁이 있었고, 유럽 역사를 뒤흔든 그 전쟁들은 한결같이 페스트로 인해 종결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세계사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갔다.
 
몽고의 유럽정복전쟁
14세기 중반 중국, 소련, 인도,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점령한 몽고는 그 기세를 몰아 유럽까지 진출할 야망을 품었다. 이탈리아 최대의 항구도시 제노아(Genoa)를 침략한 몽고군은 제노아의 군대와 일전을 치르게 된다.
 
1346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방인 ‘카파’에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전투에 임하던 제노아 군인들은 막강한 몽고의 정예군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카파가 뚫리고 몽고군의 말발굽이 전 유럽을 뒤덮을 절체절명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다.
 
이 때 몽고군 진영에서 페스트가 발병하는 극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천하의 몽고군이라 하더라도 전염병으로 군사들이 쓰러지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고 결국 군대를 돌리게 되었다. 유럽에도 페스트가 퍼져나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때 만일 몽고군이 유럽을 점령했더라면 유럽의 르네상스 문명이 태동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유럽정복전쟁과 100년 전쟁
1346년 영국은 프랑스의 크래시 지역에서 프랑스 군대를 석궁(石弓)이라는 신무기로 전멸시키고 그 기세로 프랑스 파리까지 진격하려 했다. 하지만 풍전등화에 놓인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구해낸 것은 1347년부터 돌기 시작한 페스트였다. 프랑스에 주둔하던 영국군대는 결국 소수의 군대만 남겨두고 페스트를 피해 본국으로 철수했다. 결국 1년 안에 끝날 영국의 정복전쟁은 100년 전쟁으로 바뀌고 말았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전쟁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강제로 영국 북부로 밀려난 이후 한순간도 영국 본토로 복귀하는 것을 잊어본 적이 없는 민족이었다. 영국 군대가 프랑스 크래시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페스트를 영국으로 가져갔고 영국은 순식간에 페스트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스코틀랜드는 영국을 다시 지배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고 영국 남부로 진격해 갔다. 하지만 영국군과 전쟁도 해보기 전에 페스트가 먼저 휩쓸고 지나갔고, 결국 화살 한번 쏴 보지 못하고 전멸당하면서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 버렸다.
 
 
절망의 그림자 위에 다시 핀 꽃, 르네상스
흔히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 한다. 전염병이 가져다준 위기가 유럽사회에 미친 영향 또한 그러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감소시킨 살인적인 페스트가 가져다 준 가장 큰 축복은 새로운 문명, 문화를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바로 유럽의 문화혁신운동 ‘르네상스’가 그것이다.
 
종교, 문화, 교육의 변화
소수 집단의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교육과 문학, 종교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페스트로 인해 학자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그로인한 공백 속에 새로운 사상이 생겨났다. 페스트 대발 이전의 모든 종교서적과 교육서적은 라틴어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가 창궐하여 수많은 성직자와 교육자들이 죽고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비주류의 지식인들이 성경을 읽고 새롭게 해석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라틴어 중심의 독점권이 사라지면서 모국어 문학의 발전이 일어나고 민족의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또 페스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새로운 인간 중심의 사상이 출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사회, 경제, 건축의 변화
수많은 사람들이 죽으면서 노동력 부족이라는 문제가 생겼다.
 
노동력 부족은 자연스레 임금상승과 농민폭동으로 연결되었고 새로운 노동력 확보 형태가 나오면서 장원제도도 붕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사회 경제구조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 왔다. 농경지가 목축지로 전환 되었고, 숙련된 장인들로 구성된 석공들이 줄어든 탓에 건축양식은 수직식 건축양식이 부활되었다.
 
 
 
전쟁을 끝막고 새문명을 여는 전염병
천재지변은 전쟁을 불러오고, 전쟁은 전염병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 전염병은 다시 전쟁을 종결시키고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연다. 이것이 전쟁과 전염병의 함수관계이다.
 
‘전쟁은 병으로 막는다.’는 증산도 『道典』의 말씀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도 계속 거듭되고 있는 인류사가 나아가는 대국적인 틀이다. 가깝게는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전쟁이 한참 무르익던 1917년, 전 세계에 스페인 독감이 대발했고 주 희생자들은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군인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1차 세계대전은 자연히 종결되고 말았다.
 
 
전염병은 나아가 새로운 문명의 개창을 불러오기도 한다. 『개벽 실제상황』에서는 미국 시카고대 역사학과 윌리엄 맥닐 교수의 말을 인용, 질병과 역사 변혁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질병, 특히 전염병(대규모의 유행병)은 개개인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해 왔고, 문화와 문명에 넓고도 뿌리깊은 영향을 미쳐 왔다. 질병에 의해 사회가 무너지고 가치관이 붕괴되고, 종래의 생활양식이 모두 박탈되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질병은 문명에 의해 만들어지고, 질병은 문명을 만들어 왔다.” (『개벽 실제상황』 p.403)
 
 
과거의 선례를 보더라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전염병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염병이 치명적인 재앙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씻어내어 인류사가 한 차원 높게 발전하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벽 실제상황』에 나와 있는 핵심구절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매듭짓는다.
 
 
질병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왔다는 이 말은 가을개벽을 앞둔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머지않아 대발할 괴질 병겁 또한 ‘인류의 신문명을 여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병겁을 극복하면서 인류는 진정한 상생 문명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병겁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죽음의 기운이자, 선천 상극 문화권의 묵은 기운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인종씨를 추려서 상생의 새 우주 질서를 열기 위한 가을 개벽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개벽 실제상황』 p.403)
 
 
 
 
<참고도서>
 개벽실제상황 (안경전, 대원출판사 2005년)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황상익 편저, 도서출판 한울림 1998년)
 전염병의 문화사 (아노 카렌, 권복규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2년)
 흑사병 (필립 지글러 지음, 한은경 옮김, 한긴 Historia 2004년)
 질병의 역사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마이클비디스, 김훈 옮김 가람기획 2004년)
 정역주의,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바꾸는 전염병이란 무엇인가 (노영균, 윤석현 공동저자 아람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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