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개벽뉴스

전염병이 진화한다

2009.11.11 | 조회 5559
'신종·변종·재출현' 新병원체의 공습…


 

“우리는 곧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주요 전염병들은 머지 않은 장래에 사라질 것이다.”

1963년 영국의 저명한 의사이자 인류학자였던 아이단 콕번(Aidan Cockburn)이 그의 저서 ‘전염병의 진화와 박멸’에서 한 말이다. 당시 이 주장은 새로울 것도 없었다. 1927년 플레밍의 페니실린 개발 후 본격화된 항생제의 사용, 각 병원체에 걸맞은 백신의 개발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곧 전염병 정복 시대가 올 것”이라 믿었다. 특히 사회적 보건·위생의식이 함께 발달하면서 수천 년간 인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전염병은 뒷길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195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주요 전염병만 20여개에 달할 정도로 ‘신종 전염병’이 득세를 했고 치사율이 상당 수준에 이르는 심각한 신종 전염병도 있었다. 1990년대엔 식품을 매개로 한 전염병이 큰 폭으로 늘었고, 말라리아·결핵과 같은 ‘후진국형’ 질병은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였다. 곤충을 매개로 하는 전염병도 확산됐고,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은 감염학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왜 아직도 전염병인가.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전염병이 아직도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간조선은 최근 ‘신종 인플루엔자’ 사태를 계기로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현대 전염병의 양상은 어떤지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위생 과민증’으로 몰아넣은 신종플루의 공포를 단순한 ‘플루포비아(fluphobia·인플루엔자 과대공포증)’로 치부할 수 있을지, 전염병에 대한 우리의 대응 현실은 어떤지 ‘현대 전염병의 진실’을 살펴봤다.


7만941명. 지난해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법정전염병’ 환자 발생 보고 건수다. 5년 전인 2003년 3만7661명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홍역이 대유행했던 2001년(6만6388명)보다도 많은 수치다. 몇 년 전까진 발생 건수가 전무했지만 최근 들어 감염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전염병도 있다.

전문가들은 21세기를 ‘만성질환의 시대’라 불렀다. 의학계에선 “인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전염병의 시대’는 가고, 암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는 시대가 올 것”이라 말했다. 실제 통계청이 집계한 만성질환으로 사망한 환자 수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환자 수를 압도한다.

하지만 전염병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2000년대 초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조류 인플루엔자(AI) 파동에 이어 올해는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 공포가 한반도를 덮쳤다. WHO(세계보건기구)도 지난 6월 신종플루 유행 경보를 전지구적인 ‘판데믹(대유행)’ 단계(6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수십 년 전 스페인 독감과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은 수백만~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 (좌) 올해 유행한 신종플루 바이러스 (우) 2003~2004년 유행했던 사스 바이러스




전염병이 진화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영원히 퇴출된 줄 알았던 전염병이 이전보다 더 빠르고 은밀하게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병원체를 전달하는 매개 통로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고, 지역·국가 간 교류 확대로 전염병 바이러스는 보다 신속하게 퍼지고 있다. 바이러스끼리 조합돼 만들어내는 변형 바이러스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고,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수퍼 박테리아’도 출현했다.

최근 전세계를 긴장시킨 전염병은 ‘신종 인플루엔자(H1N1)’다. WHO는 “현재(9월 27일 기준) 신종플루 감염자는 34만3298명이고 사망자는 4108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신종플루의 공식 치명률(감염자 가운데 사망자 비율)은 1.2%다.
우리나라에선 현재(9월 23일 기준)까지 약 1만5200건의 양성 사례가 보고됐다. 이 중 신종플루로 사망한 경우는 총 11건으로, 치명률은 0.07% 정도다. 일반 계절 독감의 치사율 0.05~0.1%와 비슷한 수준이다. 질병관리본부는 1만5000여명의 양성 환자 대부분이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나친 낙관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계절독감이 본격화되는 겨울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간 조합이 활발해져 변종 신종플루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WHO는 신종플루의 전파력(1차 환자가 발생시키는 2차 환자 수)이 1.6으로, 계절독감 1.2~1.3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반 전염병과 달리 변종 가능한 조합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되는 이유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 B, C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고, 이는 또 H와 N이란 단백질 구성으로 나뉜다. 바이러스끼리 언제 어떤 형태로 조합될지 모를 뿐 아니라, 조합될 경우 변종 가능한 개수도 천문학적이라 미리 대비를 하는 것도 어렵다.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수요가 워낙 폭발적이어서 물량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결핵 등 5대 전염병이 96%… “내성 커지고 확산 속도 빨라져”


 

전문가들은 “전염병과의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성질환 대비 ‘치명률’은 낮지만, 감염양상 자체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질병관리본부가 매년 집계하고 있는 ‘법정전염병’ 환자 발생 보고 건수는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결핵처럼 매해 평균 3만4000건씩 꾸준히 보고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행성 이하선염이나 쓰쓰가무시증, A형간염 등 최근 5년 새 20~30%씩 급격히 늘고 있는 전염병도 있다. 수족구병과 세균성 이질 환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질병관리본부가 집중 모니터링에 들어간 상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5대 전염병’ 중 가장 감염환자가 많은 전염병은 결핵(3만4157명)이다. 그 뒤를 수두(2만2849명), 쓰쓰가무시증(6057명), 유행성 이하선염(4542명), 말라리아(1052명)가 잇고 있다. 5대 전염병이 전체 전염병 발생 건수의 96%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후진국병’으로 불리는 결핵과 말라리아가 5대 전염병에 포함된 것은 본격적인 ‘재출현 전염병’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전문가들이 현대 전염병 양상을 ‘신종 전염병’과 ‘재출현 전염병’이란 양대 축으로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종 전염병’은 신종플루나 사스같이 새롭게 등장한 전염병을 말하며, ‘재출현 전염병’은 결핵이나 A형간염같이 없어졌다 다시 출현한 전염병을 가리킨다.

전문가들은 이 전염병들이 대체로 ‘인수공통감염증’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성백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현재 사람에게 전염되는 감염균과 바이러스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며 “이번 신종플루가 초기에 ‘돼지 독감(swine flu)’으로 불렸던 것도, 이 바이러스가 1998년 북미에서 발생한 돼지독감 바이러스와 1992년 아시아·유럽에서 유행한 돼지 바이러스 유전자가 조합돼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염병은 이전의 전염병보다 훨씬 빠르게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일부 치료제에 내성까지 가지고 있어 현대 의학기술로도 쉽게 통제하기가 힘들다”며 “전염병 문제는 해결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신종과 재출현 전염병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신종 전염병(EID·Emerging infectious disease)’은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병원체에 의해 발생해 보건문제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쉽게 말해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전염병으로, 해당 병원체에 대한 면역이 없어 전파력과 병독성이 크기 때문에 대유행 시 영향력도 매우 크다. 레지오넬라증·에볼라출혈열·에이즈·사스·신종 인플루엔자 등이 대표적인 신종 전염병이다.

‘재출현 전염병(Re-emerging infectious disease)’은 과거 감소세를 보이다 새롭게 증가하고 있는 전염병으로, 결핵·말라리아·홍역·세균성 이질·A형간염 등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형태

신종플루, 1918년 4000만명 사망 ‘스페인 독감’과 유전자형 같아


▲ (위) 신종플루 의심환자들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설치된 외래진료소. photo 조선일보 DB (아래) 2003년 사스 유행 당시 방독면을 쓴 모나리자 그림을 들고 있는 중국 여성.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형으로 나뉘며, 이는 HA·HN의 하부구조로 다시 나뉜다. 사람에게 유행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는 주로 A형과 B형이며, 변이를 통해 대유행을 일으키는 것은 A형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형 H와 N은 바이러스 단백질을 가리킨다. H는 9개 종류로 나뉘고, N은 16개 종으로 나뉜다. H는 감염 초기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에 딱 달라붙게 하는 단백질이며, N은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를 감염된 세포에서 떨어지게 하는 단백질이다. H와 N은 세포 부착-세포 탈피라는 반복 작용을 통해 바이러스를 증식시킨다.

이번에 발생한 신종플루의 형태는 ‘인플루엔자 A형 H1N1’으로, 1918년 4000만명 이상을 사망하게 한 ‘스페인 독감’의 유전자형과 같다. 약 5년 전 유행했던 ‘조류 인플루엔자(조류독감)’는 H5N1 바이러스이고, 200만명 이상이 사망한 1957년 ‘아시아 독감’은 H2N2,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1968년 ‘홍콩독감’은 H3N2 바이러스다.



 

 

/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출처: 주간조선 http://news.nate.com/view/20091019n2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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