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개벽뉴스

다시 신종 전염병의 시대에 들어선 지구촌

2010.01.07 | 조회 4982

[한겨레] 다시 신종 전염병의 시대에 들어선 지구촌…

정말로 문명의 발전은 인류를 이롭게 하나

2003년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전쟁’을 들겠다. 인류는 연초부터 1년 내내 전쟁미치광이들과 전쟁을 벌였고,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새로운 전염병과 몇달 동안 사투를 거듭하였으며, 연말에는 조류독감과 광우병이 인간사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편 통계청은 ‘2003 한국의 사회지표’를 2003년 12월21일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15살 이상 국민의 44.9%가 건강을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꼽은 것이다. 이는 돈이라는 응답 비율 24.5%의 두배에 가까운데, 건강이 최대의 화두가 된 세상이 온 것이다.

인류의 천적으로 떠오른 전염병

우리 국민을 비롯한 전 인류는 현재 역사상 가장 건강을 누리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건강수명 등 거의 모든 지표가 그러한 점을 잘 나타내준다. 그런데도 건강이 최대 관심사가 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보다 더한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생긴데다가 암과 심장병 등 문명병뿐만 아니라 거의 사라졌다고 안도하였던 전염병들이 다시 우리를 습격하기 때문인 듯하다.

전염병 시계는 지금 몇시를 가리키고 있으며, 의학은 얼마만큼 뒤쳐져서 전염병을 좇고 있는가 일각에서 우려하듯 전염병이 다시 21세기 인류의 천적이 될 것인가.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4월7일, ‘세계보건의 날’을 맞아 “전염병 시대 다시 오다―우리 모두 관심을, 우리 모두 대응책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전염병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자신만만하게 두창(천연두)이 박멸되었다고 하면서 우두 접종이 필요없다고 선언한 지 20년이 채 안 된 일이다.

전염병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특히 문명을 이룬 뒤부터 인간들을 괴롭혀왔다. 그런데도 인류는 전염병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전염병에 걸려 고생하고 죽는 것을 운명처럼 감수해왔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 등에 의해 많은 전염병이 박테리아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 확인되고, 20세기 들어서는 박테리아 외에 바이러스와 곰팡이 따위도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는 전염병 퇴치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1880년대 이래 항독소와 예방백신들이 개발되고, 1940년대부터 페니실린 등 전염병에 특효를 보이는 항생제들이 생산되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전염병을 정복할 것으로 낙관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와 낙관을 비웃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두창이 박멸되어가던 1970년대 이래 에볼라출혈열, 에이즈, 사스 등 30여종의 전염병이 새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전염병은 대부분 아직 뚜렷한 치료법을 찾지 못하였으며 예방백신 또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말라리아와 결핵 같은 ‘후진국성 전염병’도 최근 선진국에서조차 다시 기승을 부릴 채비를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새로운 전염병 시대’를 경고한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으며, 지난해 사스 유행은 그러한 경고가 헛된 것이 아님을 인류에게 보여주었다.

문명은 역병을 뿌리며 발전하는가

최근에 등장한 전염병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인류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전염병 가운데 두창에 대해 알아보자. 두창은 곰보, 실명, 지체부자유 등 무서운 후유증을 남기거니와 사망률 또한 높다. 독성이 강한 대두창은 면역력이 없는 집단에서 사망률이 90%에 이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피해 사례가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유럽인 침략자들이 가기 전에는 두창이 없었으며, 이에 따라 면역력도 없었다. 약탈자들의 몸에는 총과 칼 외에 그보다 더 무서운 무기, 즉 두창바이러스가 들어 있었다. 비극이 시작되었다.


1518년부터 1531년까지 원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두창으로 사망하였다. 사망률도 매우 높았지만 원주민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무서운 병이 도는데도 신은 원주민들을 돌보지 않았다. 반면에 에스파냐 무법자들은 끄떡없었고, 이를 본 원주민들은 저항의지를 잃어 찬란했던 아스테카와 잉카 문명은 너무나 허망하게 순식간에 붕괴하였다.

두창 창궐은 아메리카에 몰아닥친 참사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에게 면역력이 생길 즈음해서는 각각 홍역과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연달아 몰려들었으며, 마지막으로 발진티푸스균이 기진맥진한 원주민 사회를 덮쳤다. 300여년이 지난 뒤에야 존재가 밝혀진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괴물’들이 중남미 원주민 전체의 90%가 사망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극을 연출하였다. 문명과 기독교를 앞세우며 세계정복에 나선 백인들의 최대 무기는, 적어도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그들의 문명이 아니라 두창을 비롯한 ‘문명병’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들은 원주민들의 몰살로 노동력 부족이라는 예상치 못한 장애에 직면하였다. 정복자들의 해결책은 흑인 노예의 수입이었다. 이로써 질병의 세계화와 더불어 세 대륙의 세 인종이 교류하는 인종의 세계화 현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 초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는 몇몇 동성애 남성들이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아프리카 흑인과 지중해 주변의 백인에게만 생기던 피부암의 일종인 카포지 육종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원생동물 뉴머시스티스 카리니가 일으키는 매우 드문 폐렴이었다. 그리고 원생동물이 일으키는 뇌 감염증의 일종인 톡소플라스마증도 있었다. 의사들은 잠정적으로 이 병을 ‘동성애자 관련 면역질환’이라고 불렀으며, 언론은 더 선정적으로 ‘동성애자 암’이라고 명명하였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1982년, 이 병은 아이티와 중앙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미국과 달리 주로 매춘을 통해 이성 사이에 전파되었다.

재앙을 키우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1985년 무렵부터 에이즈는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이즈는 유럽, 아시아, 남미에서도 유행병이 되었다. 그러면서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이라는 또 하나의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치료법이나 백신이 당장 개발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형편이다. 이에 따라 에이즈는 중세말의 흑사병, 아메리카 정복 시절의 두창, 그리고 산업혁명기의 결핵보다 더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에이즈는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여러 해가 걸린다는 사실이 공포를 더욱 가중시켰다. 정체가 곧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두려운 것이다. 또한 에이즈는 한때 나병환자에게 그랬던 것과 비슷한 증오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병에 대한 두려움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에이즈가 동성애, 마약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사실은 일부일 따름인데)이 환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하였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또는 그것의 조상들은 오랫동안 아프리카의 영장류 안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언제 이것들이 인간에게 넘어왔는지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분명한 기점이 있는 병이란 별로 없다. 대개 환경이 변화하거나, 인간의 행태가 바뀌거나, 바이러스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경우 인간에게 서식하고 병을 일으킨다고 여겨진다.

자연계의 HIV가 독성으로 무장한 까닭

HIV나 그것과 비슷한 리트로바이러스들이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왜 에이즈가 진작 나타나지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한 가지 이유는 HIV가 전염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혈액·정액·질액과 같은 체액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전파된다. 단 한번의 성적 접촉으로 HIV가 옮겨질 수 있지만 대개는 몇백번 이상의 접촉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 후반 들어 대규모로 열대 밀림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간들은 다른 생물들과 바이러스를 상호교환하는 생태학적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벌목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 등 다른 동물들과의 더 많은 접촉을 의미했다. 또 아프리카에는 개발과 더불어 현대의학도 도입되었다. 오염된 주삿바늘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종종 재사용되었고 말라리아와 간염, 그리고 에이즈를 퍼뜨리는 도구가 되었다. HIV의 또 다른 전파 경로는 매독 등 성병의 피부 병변이다. 성병은 아프리카에서 시골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면서 창궐하였다. 그리고 매춘은 전세계적인 비즈니스로 에이즈를 지구촌 전역에 퍼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예전과 같은 무서운 전염병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규모 전쟁 등으로 세계질서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는 14세기의 흑사병 대유행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몰살과 같은 전 인류적인 전염병 사태가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세계적 규모는 아니더라도 한 나라와 사회가 그와 비슷한 피해를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사정은 그러한 위험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대규모 전염병이 생길 경우 상대적으로 특성도 잘 알고 대처해본 경험이 많은 세균성 질병보다 인플루엔자, 에이즈, 사스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에이즈에서 거듭 확인되었듯이 생태계에 대한 무차별적 개입, 서식지의 확대, 인구의 밀집과 양적·질적 변화, 성적 행태의 변화, 식생활의 변화, 새로운 발명품의 사용, 교류의 증대와 신속화 등 현대문명의 여러 요소는 대규모 전염병의 발생을 촉진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은 문명화·세계화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전쟁도 전염병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곤 했는데 미국의 이라크 침략도 예외일 수 없다. 더욱이 미군이 사용한 열화우라늄탄은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전염병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반면에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전염병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것은 인류를 역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전염병에 대해 경각심을 늦추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어긋나게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스 발생 초기 중국 정부의 소홀한 대응과 베이징의 혼란상, 그리고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 태도에서 우리는 반면교사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침략과 약탈 그리고 인간의 개입

아메리카 ‘발견’이 없었더라면 아메리카 원주문명과 원주민들이 멸망하지 않았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1960, 70년대의 아프리카 개발 붐이 없었다면 에이즈가 창궐하지 않았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터이다. 또한 소에게 동물사료를 먹이지 않았더라면 소와 인간에게 광우병이 절대 생기지 않았으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인들의 침략, 아프리카 원시림에 대한 약탈, 소 사육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개입이 각기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다. 반문명주의자가 아니라면, 문명과 경제와 과학의 발전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전염병의 역사는 그러한 발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의 복제 등 유전자 변형과 생명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이 ‘위대하지만 위험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성장’만이 진보인 양 여겨온 대다수 인류에게 점점 더 큰 목소리로 되묻고 있다.

황상익/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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