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100%' 돼지열병 주범은 잔반돼지
농장주들 청와대 앞 시위
먹다남은 햄으로도 감염
'치사율 100%' 돼지열병 주범은 잔반돼지
성우농장은 충남 홍성에 있는 돼지 농장으로 약 80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이 농장의 주인 이도헌 대표는 지난 27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중국 전역과 동남아시아로 번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한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잔반돼지가 열병을 전염시킬 확률이 높은데 이에 대한 대책은 빠져 있다”며 “농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돼지와 관련한 모든 산업과 식당 사장님들까지 연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잔반돼지는 일반 사료가 아니라 사람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먹여 키우는 돼지다. 1인 시위에는 다음달 학계와 양돈업계, 다양한 외식업 종사자들이 참여할 계획이다.
ASF, 구제역 치사율의 5배
ASF는 치사율 100%의 ‘슈퍼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감염된 돼지는 열이 나고, 피부에 푸른 반점과 충혈이 생기다가 통상 1주일이면 죽는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병했고,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해 스페인 양돈 농가를 초토화했다. 사람은 먹거나 접촉해도 상관없고, 오로지 돼지끼리만 옮긴다.
아시아에서는 지난해 8월 중국 북부 랴오닝성에서 최초로 발병했다. 3개월 만에 중국 전역으로 번졌고, 지금까지 100만 마리 이상 살처분됐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모돈도 최소 30% 이상 폐사했다. 중국은 전 세계 돼지의 절반을 키우고, 이를 전량 소비하는 나라다. 접경 지역의 베트남, 몽골 등으로도 순식간에 번졌다. 중국과 북한 접경 지역에서 ASF가 발병한 만큼 북한에도 이미 번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국내 양돈업계는 중국 발병 직후부터 정부에 “ASF는 구제역의 수백 배에 달하는 위험한 바이러스”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베트남까지 번진 이후인 지난 9일 나왔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선박과 항공기에 검역 탐지견을 집중 투입하고, 불법 축산물을 들여온 사람에게 부과하는 과태료를 10만~100만원에서 30만~500만원으로 올린다는 게 핵심이었다.
감염 돼지로 가공식품 제조
업계는 “잔반돼지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ASF 방역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SF 감염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멧돼지(숙주)가 돼지 사육 농가에 진입해 돼지끼리 직접 접촉하거나 멧돼지의 분변을 새, 들고양이 등이 옮기는 경우다. 두 번째는 ‘음식물 쓰레기’다. 양돈업계는 두 번째 경우를 더 우려하고 있다. 이번 ASF가 발병한 중국 몽골 베트남의 최초 발병지가 모두 ‘잔반돼지’를 키우는 농가였기 때문이다. ASF 바이러스는 고기를 얼린 상태에서 1000일, 고기를 소금에 절인 상태에서도 1년 이상 살 수 있을 정도로 생존력이 뛰어나다. 사람이 먹다 남긴 순대, 만두, 소시지 등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국내 양돈 농가는 전국 약 5500곳으로 이 중 5% 정도인 200~300곳이 잔반돼지를 키운다. 잔반돼지 농가는 각 지역의 호텔과 뷔페, 거주지의 음식물 쓰레기를 ‘폐기물 처리비용’ 명목으로 돈을 받고 가져온다. 여기에 중국 또는 베트남 등에서 감염된 돼지를 원료로 한 음식물 쓰레기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도축시설에는 잔반돼지와 사료를 먹는 돼지가 뒤섞이기 때문에 감염된 뒤에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 양돈업계 관계자는 “잔반돼지 사육을 정부가 전면 금지하고, 도축장이라도 잔반돼지 전용으로 분리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모든 화물과 사람을 검역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잔반돼지 사육 농가’ 통제가 급선무
양돈 농가는 불안해하고 있다. ASF가 한 번 발병하면 수십 년간 국산 돼지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국내 양돈산업은 약 7조원 규모로 전체 축산업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구제역이 발병한 땅은 6개월 정도 소독하면 다시 돼지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ASF는 20~30년간 돼지 사육이 불가능하다. 또 구제역으로 돼지고기값이 올랐을 때 정부는 물가안정 대책으로 돼지고기 수입을 늘렸지만, 지금은 전 세계 돼지고기값이 들썩이고 있어 이마저 쉽지 않다.
환경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ASF가 발생하면 잔반돼지 농가를 제재하고, 우선은 ‘가급적 잔반을 먹이지 말라’는 농가 홍보 활동을 벌이겠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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