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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120년, 현장을 가다] 120년 전 日 함대 첫출발한 그곳… 지금도 自衛隊(자위대) 기지

2014.07.23 | 조회 6750

[청일전쟁 120년, 현장을 가다] 120년 전 日 함대 첫출발한 그곳… 지금도 自衛隊(자위대) 기지


2014-07-23 03:01 



120년 전 일본 함대가 떠났던 사세보. 낮은 산이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다. 사진 왼쪽이 해상 자위대 기지, 가운데가 미군 군항이다. /사세보=이한수 기자


[1] 일본 사세보·히로시마·시모노세키


사세보서 시작된 日 제국주의 침략… 히로시마를 임시 수도·지휘본부로 구레·나가사키에선 전함 건조


미쓰비시 조선소 등 전쟁 시설… 내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동경 129도 43분, 일본 최서단(最西端) 역'.


일본 규슈(九州) 서북쪽 항구도시 사세보(佐世保)역 개찰구를 나오자 사람 키만 한 나무 표지판에 이렇게 새긴 글귀가 보였다. 후쿠오카(福岡) 하카타(博多)역에서 열차로 2시간 달려 도착했다. 일본의 서쪽 끝은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곳. 120년 전 이곳 항구에서 출발한 일본 함대는 1894년 7월 25일 한국 아산만 풍도(豊島) 인근 바다에서 청(淸) 전함을 기습 공격했다. 조선 지배권을 놓고 일본과 중국이 싸운 청일전쟁의 시작이었다.


◇옛 영광 회고 전시물 가득



청일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처음으로 벌인 대외 침략 전쟁이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과 한국 강제병합,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달려갔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은 이곳 사세보에서 시작했다.


지금 사세보에는 일본 해상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다. 역에서 해안로를 따라 20여분 걸어 항만 쪽을 바라보니 크고 작은 자위대 군함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자위대 기지 옆쪽 항구에는 미 해군기지가 있다. 커다란 군함이 보였다. 여전히 전략 요충지다.


"산에 올라가면 자위대와 미군의 군항(軍港)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관광정보센터 직원이 지도를 짚었다. 높이 364m 유미하리다케(弓張岳)에 올랐다. 오르는 길은 구불구불 숲길이다. 숲 이름은 보안림(保安林).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본다. 낮은 산들이 항구를 둘러싼 지형이다. 좁은 해협을 통해 전함이 나갈 수는 있지만 상대가 들어오기는 어려운 곳. 일본은 청일전쟁 5년 전 이 천혜(天惠)의 지형에 해군 사령부(진수부·鎭守府)를 설치하고 전쟁을 준비했다.


시내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해상 자위대 사료관'의 전시물은 옛 영광에 대한 회고였다.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1882년 군함 정비 계획안에 따라 2400만엔을 들여 8년에 걸쳐 군함 32척 건조 계획을 세웠다' '1889년 헌법 발표와 함께 대청 전쟁을 서둘렀다' '(청일전쟁에서) 청의 북양 해군은 지역 수준을 넘지 못했고, 근대국가 해군으로 발전한 일본 해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표현하지 않는 대신 '팽창'이라고 적었다.


◇히로시마 대본영은 전쟁 수도


청일전쟁은 일본이 온 국력을 기울인 전쟁이었다. 개전 직후 히로시마(廣島)에 전쟁 지휘본부인 '대본영(大本營)'을 설치했다. 메이지 덴노(天皇)는 1894년 9월 15일부터 전쟁이 끝나는 이듬해 4월 27일까지 히로시마 대본영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제국의회도 소집했다. 도쿄 밖에서 제국의회가 열린 것은 일본 근현대사를 통틀어 이때뿐이다. 청일전쟁 중 히로시마는 임시 전쟁수도였다.


대본영은 히로시마성(城) 천수각 앞에 있었다. 1945년 8월 미군의 원자탄 폭격으로 건물은 무너졌다. 지금은 기초석과 계단 등 터만 남았다. "대본영요? 그런 거 몰라요." 수학여행 온 여중생들이 깔깔거렸다.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히로시마 남쪽 우지나(宇品)항까지 철로를 놓았다. 이곳을 통해 병력과 전쟁 물자를 실어날랐다. 지금은 공원이다. 옛 철로 일부를 남긴 조형물 앞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있었다.


병력과 전쟁 물자를 실어날랐던 우지나항의 철로 구조물. 누군가 꽃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히로시마 동쪽으로 열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항구 구레(吳)에도 해군 진수부가 설치됐다. 사세보와 같은 해인 1889년이다. 구레 역 앞 야마토(大和) 뮤지엄에는 '사세보가 대륙 진출의 전진기지였던 반면, 내해(內海) 깊숙한 곳에 위치한 구레 진수부는 함정의 건조, 대포와 기뢰를 제조하는 병기 공장의 성격이었다'는 설명문을 달았다. 청일전쟁 당시에는 이곳에서 함정을 수리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이 자랑한 거함(巨艦) 야마토가 건조된 곳도 이곳이다. 구레는 '야마토의 고향'을 도시 표어로 내세우고 있다. 7월 12일부터 9월 23일까지 '전함 야마토·무사시 진수식' 특별전시회를 연다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사세보 남쪽 항구도시 나가사키(長崎)에서도 전함을 건조했다. 미쓰비시(三菱) 조선소 사료관에는 이곳에서 만든 전함들 사진, 당시 군함의 엔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일본은 이곳을 비롯한 전쟁 시설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란 이름으로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시모노세키엔 이토 동상


청일전쟁은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下關) 강화조약으로 종결된다. 일본의 일방적 승리였다. 일본은 대만을 첫 식민지로 얻었다. 청은 전쟁 배상금으로 2억3000만냥을 냈다. 당시 청나라 국가 예산의 3배, 일본 연간 재정수입의 8배였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세계 열강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다.


청국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은 강화조약을 위해 시모노세키로 찾아가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마주앉았다. 이토가 '봄 바다에 돛을 올린다'는 뜻으로 이름붙인 복어 요리집 슌판로(春帆樓)에서였다. 지금도 영업 중이다. 국가 사적(史跡)으로 지정됐다. 슌판로 옆 일청강화기념관에는 당시 청국과 일본 대표가 앉았던 자리를 재현해 놓았다. 건물 옆에는 일본 대표였던 이토와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외상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세보를 찾았던 날은 지난 9일. 태풍 8호 '너구리'가 몰고온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이 뒤로 젖힐 만큼 강풍이 불었다. 기상청 관리는 TV방송에 나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 경보가 내렸다. 아베 총리는 전날 호주를 방문해 '방위장비 개발 협정'을 맺었다. 이틀 뒤엔 파푸아뉴기니를 찾아 일본 전몰자 위령비에 참배했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도입으로 패전 후 69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이제껏 경험한 것보다 더 큰 폭풍이 동북아에 불고 있다.


공동기획: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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