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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1억 명 목숨 앗아간 스페인 독감 (2/2)

2018.10.15 | 조회 78


100년 전 1억 명 목숨 앗아간 스페인 독감 (2/2)

2018년 9월 15일  |  By:   |  건강세계  |  댓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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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페인 독감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디서 새의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 퍼져나갔는지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일단 유전자 지도로 보면 북아메리카에 머무는 철새와 가장 가깝긴 하지만, 토벤버거 박사는 스미소니안 연구소의 수많은 조류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지고도 1918년 이전에 부검한 새의 기록이나 표본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1918년 초 유럽을 포함한 전쟁터로 파병하는 미군이 집결했던 캔자스주의 한 육군 부대 근처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았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분명 1918년 3월 캔자스 포트 라일리의 캠프 펀스톤 육군 부대에서는 유행성 독감과 같은 병이 돌았습니다. 이어 미국 동부 연안을 따라 독감이 퍼졌고, 대서양을 건너 미군을 프랑스까지 실어나른 수송선에서도 감기가 퍼졌습니다. 하지만 토벤버거 박사가 확인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일찍 발견된 것이 1918년 5월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보다 전에 발생한 독감은 스페인 독감이 아니라 그냥 계절 독감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이를 입증할 방법은 현재로썬 없습니다.

영국 바이러스학자 존 옥스포드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군 부대가 스페인 독감의 진원지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당시 파리 교외 볼로뉴라는 곳에 영국군이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진을 치고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에타플(Étaples) 캠프에서 스페인 독감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솜강 어귀에 있는 에타플은 철새의 이동 경로 바로 근처에 있었으며, 수많은 철새에 사람들이 기르는 닭과 돼지 등 가축도 많았고, 부대 안의 병사들은 환기도 잘 안 되는 야전 막사에 빽빽이 모여 있었습니다. 또한, 에타플 캠프 내 야전 병원에는 화생방 공격 등으로 오염된 전장에 있다가 폐가 손상돼 입원해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1917년 겨울 에타플에 머물던 영국군 수백 명이 감기 증상을 보였고, 기록에 따르면 겨울에만 156명이 감기로 숨집니다. 당시 감기로 숨진 군인의 시신을 부검하면 폐의 기도에서 누런 고름이 잔뜩 흘러나왔기 때문에 고름이 나온다는 뜻의 “화농성 기관지염(purulent bronchitis)”이라고 불렸습니다. 의무병들 가운데는 이 고름이 화학 무기 포스진(phosgene) 가스 공격을 받고 폐가 손상됐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장에 산소가 부족해져 입술과 귀, 볼이 검푸르게 변하는 치아노제(cyanosis)도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가 폐렴까지 걸리게 된 환자들에게서 치아노제 증상이 특히 두드러졌는데, 의사들은 1919년 <랜쳇(Lancet)>에 낸 임상 보고서에서 화농성 기관지염과 치아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사실상 하나라고 썼습니다.

또한, 똑같이 스페인 독감에서 시작된 폐렴이라도 어떤 때는 초반에 병의 진척이 매우 빠르고 손상되는 폐 부위는 매우 국지적인 반면, 어떤 때는 기관지 폐렴과 비슷하게 폐 전체가 붓고 출혈이 일어나는 건지도 아직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독감 바이러스가 과다 면역 반응의 하나인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병리학자도 있고,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박테리아가 폐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설명도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은 역시 스페인 독감이 왜 유독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야 할 젊은 성인에게 유독 더 치명적이었느냐는 것일 겁니다. 시간이 흘러 과학자들이 수많은 가설을 내놓긴 했지만, 명확한 답이 될 만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일단 당시 나이가 든 이들이 어렸을 때 스페인 독감의 H1N1 바이러스와 비슷한 유전 형질을 지닌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어서 면역이 있었을 거란 설명이 있습니다. 반대로 1918년 당시 28살 이상이었던 성인들,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 접한 유행성 독감이 1890년의 러시아 독감(Russian flu)이었던 이들은 제대로 된 면역이 없었다는 겁니다. 러시아 독감은 H3 바이러스로 스페인 독감과 유전자 배열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러시아 독감에 면역이 있었어도 스페인 독감에는 소용이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아니면 1918년에 나타나는 눈에 띄게 높은 치사율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 가해진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나 스트레스 요인 탓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유전 형질의 독감 바이러스가 여전히 사람과 돼지 등에게 아직도 남아 독감을 일으키고 있고, 돌연변이가 되어 더 큰 피해를 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정확히 똑같은 바이러스도 100년 동안 살아남아 그대로 있고, 일부 바이러스는 1968년 홍콩 독감 바이러스를 만나 변종이 되기도 했고, 지난 2009년 (돼지 독감(swine flu)이라고도 불렸던) 신종플루 때 H1N1 기본 형질은 유지하면서도 조금 다른 바이러스가 되어 창궐하기도 했습니다. 토벤버거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1918년 유행한 독감은 실로 모든 유행성 독감의 기원이라 부를 만하다. 그때 처음 성공적으로 인간에게 침투한 조류독감 형태의 바이러스가 변종이 되고 합성돼 더욱 강해지면서 100년을 거뜬히 버텨냈기 때문이다.”

유행병의 가장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아마도 어린이들이었을 겁니다. 스페인 독감을 이겨낸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아다 다윈(Ada Darwin) 씨는 2005년 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1월 17일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잠자리에 들었는데 머리가 정말이지 깨질 듯이 아파서 어머니께 동생 노라가 제발 계속 재잘재잘 떠들지 좀 못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어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이어 아다의 어머니 제인 베리 씨와 갓난아기였던 여동생 에디스, 남동생 오스틴(당시 2살), 노엘(당시 4살)이 모두 독감에 걸렸습니다. 온 가족이 병에 시름시름 앓자 가족을 보살피고자 할머니가 집으로 왔지만, 할머니가 도착했을 때 이미 아다의 어머니는 온몸이 검푸르게 변해버린 뒤로, 예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치아노제 증상으로 추정) 다음날인 11월 20일 어머니는 34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고, 사흘 뒤 동생 노엘이 숨졌습니다.

다윈 씨가 육군 병원에서 일하던 아버지 프레데릭 베리도 숨졌다는 걸 알게 된 것은 25일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는 38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휴전 이후 부상병들의 치료를 돕고자 살포드에 있는 육군 병원에서 일해 왔습니다. 환자로부터 독감 바이러스에 옮았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11월 29일, 아버지의 장례식은 어머니, 그리고 동생 노엘과 함께 육군장으로 치러졌고, 시신은 맨체스터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아다 다윈 씨는 아직도 부모님과 동생의 관이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던 장면을 94살이던 인터뷰 당시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타조 깃털로 만든 장식을 단 검은색 말들이 앞장서고 이어 영국 국기로 덮은 아버지의 관을 총을 든 군인들이 호위하고 가고 있었죠. 어머니의 관은 커다란 유리로 된 영구차에 실려 있었고, 노엘의 관은 운전석 아래 있었어요. 할머니가 제게 엄마는 예수님 곁으로 갔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저는 ‘예수님 곁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왜 우리 엄마를 데리고 가는지, 난 엄마가 보고 싶은데’ 하는 생각만 했어요.”

젊은 부모 가운데 희생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다윈 씨 같은 사연을 지닌 이들도 정말 많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는 스페인 독감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2~3천 명이나 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런던에서는 1918년 9월부터 12월 사이에만 1만6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듬해까지 스페인 독감이 맹위를 떨치며 1919년은 영국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은 해로 기록됩니다.

100년이 지났습니다. 스페인 독감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 가운데 아직 살아있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습니다. 맨세스터시 보건국장 제임스 니벤의 표현을 빌리면 “워낙 죽는 사람이 많아서 관을 맞춰 짜기도 어려웠고, 묘지 도굴꾼들이 도굴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100년 전 겨울 나타난 바이러스는 엄혹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스페인 독감 발발 100년을 맞은 지금 다윈 씨 같은 생존자들을 더 찾아 이야기를 모으고 연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가디언, Mark Honigs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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