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현대 과학혁명의 선구자들

2009.10.28 | 조회 2215




지난 20세기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격동과 파란 그리고 변혁의 시간대였다.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과 식민지 지배로 동서양 문명의 대지각 변동으로 문을 연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반도 남북전쟁, 경제 대공황,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냉전시대, 공산주의의 붕괴로 가속화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100년의 세월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급박하게 변모하였다. 또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부터 시작된 과학적인 진보는 우주여행을 공상과학의 세계가 아닌 현실로 만들었으며, 컴퓨터의 발명은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가져왔고, DNA의 신비가 풀리면서 인간이 가져온 생명연장의 꿈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혁명을 이루어냈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지구촌 사회가 되었으며, 엄청나게 늘어난 인구는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20세기를 이끌었던 변혁의 물결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우주사적으로 볼 때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선·후천(先·後天)의 과도기로서의 20세기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세기’라 말할 수 있다.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선천 5만년의 상극시대를 매듭짓고 후천 5만년의 상생의 새 시대를 여는 필연적 역사과정으로서의 지난 100년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위기(危機)의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는 20세기의 문명적 대변혁과 인식론적 대전환을 이루어내는데 기반이 되었거나 아직도 진행 중인 사상가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뉴턴의 절대적 시공론(3차원 공간)에서 상대적 시공론(4차원 공간)으로의 전환(아인슈타인), 고전역학(인과적 결정론)에서 양자역학(불확정성)으로의 전환(하이젠베르크), 고전생물학에서 진화생물학으로의 전환(다윈), 표층적 의식의 세계에서 심층적 무의식의 세계로의 전환(프로이드), 수학의 완전성의 정리에서 불완전성의 정리에로의 전환(괴델), 있음의 철학에서 과정(유기체적)의 철학으로의 전환(화이트헤드), 과학의 검증주의에서 반증주의로의 전환(포퍼), 누적적인 과학관에서 비누적적인 혁명적 과학관으로의 전환(토마스 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구조주의에로의 전환(푸코), 언어의 일반문법에서 변형 생성문법으로의 전환(촘스키), 무기적 기계론에서 유기적 자동제어이론(사이버네틱스)으로의 전환(노버트 위너), 무기적 지구론에서 생명적 지구론으로의 전환(러브록), 퍼스널심리학에서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으로의 전환(켄 윌버), 원자론적 과학관에서 전일론적 과학관으로의 전환(카프라), 고전적 질서의 과학관에서 혼돈 속의 질서의 과학관으로의 전환(프리고진) 등이다.
 
여기서 전환이라는 말은 결코 고전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축하면서 고전과학의 한계성을 자각하여 새로운 자연의 질서와 새로운 인식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 소개된 15인의 사상가 중에서 특히 인류 지성사에 크게 기여한 5인(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러브록, 화이트헤드, 윌버)의 사상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새 천년의 벽두에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20세기를 회고하며 인류문명의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한 인물 100명을 선정했다. 거기에는 정치지도자, 혁명가,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문화의 모든 분야의 인물들이 선정되었다. 그 100명 중에서 ‘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로 선정된 인물은 단지 하나의 펜과 종이로 가려진 자연의 커튼을 열어본 한 명의 과학자였다.
 
1899년 7월 중순 어느 날, 스위스 연방공과대학(ETH) 물리학과 어느 실험실에서 조그만 사고가 발생했다. 교수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름 내내 실험실에 혼자 들어가 무엇인가 이상한 장치를 설치해놓고 실험에 열중하던 한 학생이 장비 조작의 실수로 자그마한 폭발 사고를 일으켰던 것이다. 다행히 이 사고로 큰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이 학생은 오른팔에 제법 여러 바늘을 꿰매야 하는 상처를 입었고, 이를 계기로 당시 3학년이던 이 학생은 더 이상 실험실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이라 불리던 이 학생이 이 날 실험하려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오늘날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우리는 한 유능한 실험물리학자 대신에 인류 지성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꾸어놓은 한 위대한 이론물리학자이자 위대한 과학사상가를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실험 조작의 실수라고 하는 이 작은 사건 하나가 20세기 지성사의 역사적 과제를 짊어지게 될 주인공으로 하여금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자기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게 하는 운명의 손길이었음을 알아차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서던 이 시기는 인류 지성사에서 중요한 한 전기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한 발견과 창조의 세기가 아니라 위대한 새 발견과 창조가 이루어지기 위해 기존의 구조물들을 먼저 청산해내지 않으면 안될 전환과 혁명의 세기였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상제님께서 평양에 오래 계시면서 문명이기 대공사를 보시던 이듬해인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라는 믿음아래 200년 전 뉴턴이 생각한 고전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뒤엎는 4차원 시공간의 개념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이는 근대 이후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 모든 물체와 운동의 바탕으로서 고정·불변한다는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을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시간과 공간은 달라질 수 있다는 상대적인 시공 개념으로 인식 전환을 일으키는 가히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 10년 후 그는 중력과 관성은 동일하다는 ‘등가원리’를 바탕으로 질량 분포(더 일반적으로 에너지-운동량의 분포)가 주변 시공간에 굴곡을 준다고 보아 휘어진 시공간을 얻어내고, 이 휘어진 시공간 안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운동이 바로 중력장 안에서 물체의 운동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였다.
 
20세기의 벽두에 아인슈타인은 깊은 직관과 강한 소신을 통해 인류 지성사에 있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과업을 성취하였다. 그의 상대성이론은 그후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며, 인류 지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역학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인류가 가지고 있던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 틀을 뒤흔든 두 이론은 바로 상대론과 양자론일 것이다. 상대론은 한 명의 천재 과학자에 의해 전적으로 완성된 이론이라면, 양자론은 그와 반대로 당대의 여러 뛰어난 과학자들의 협동적인 연구로 완성된 이론이며, 그 중심에는 워너 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가 있었다.
 
뉴턴 역학과 19세기초 라플라스의 천체역학에 따르면 우주는 물리 법칙에 의해 정확하게 기술되고 예측될 수 있었다. … 이는 법칙을 통해 현상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자연의 본질이 인과적이고 결정적이라는 믿음을 극적으로 증명해주었으니, 약간 과장하면 과학혁명 이후 300년 동안 점차 확신을 더 굳혀온 근대 과학관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겨우 100년도 지나지 않아 양자역학에 기초한 비결정론적 세계관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 물리학자들은 미시 물질 세계를 기술하는 새로운 양자역학을 확립했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을 내놓았다. 물리 법칙이 정확하더라도 미래에 일어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우리는 그 확률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은 불완전한 실험 도구, 풀기 난해한 수학 같은 방법의 한계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물질 세계가 본질상 비결정론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상제님께서 천지대신문을 여신 1901년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고 뮌헨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김나지움 시절 이미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특히 수학과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그는 피아노를 잘 쳤고 시를 좋아했으며, 항상 자연을 벗삼아 사색하기를 좋아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는 1920년대 초, 독일을 중심으로 한 양자론 연구의 선구자들인 보어와 좀머펠트 그리고 보른과 같은 뛰어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였다. 또한 1945년에 ‘배타원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파울리Wolfgang Pauli와는 실험실 동기로서 많은 지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그의 ‘불확정성 원리’를 완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 답은 보이지 않고 토론은 계속되었다. 서로 접근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때로는 ‘충돌’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지친 보어가 스키 휴가를 떠났고,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서 각자의 생각을 추진했다. 보어가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답을 들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보어의 상보성의 원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였다. (본문 중에서
 
20세기 초엽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해왔던 자연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꾸어버린 두 이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하나는 우주와 은하를 다루는 거시세계의 자연의 실상을, 다른 하나는 미시세계인 소립자 세계의 자연의 신비를 하나둘씩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두 이론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포용할 수가 없었다.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난제라고 할 수 있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통일, 그 통일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이다.
 
초끈 이론이 주장하는 우주의 실상은 사뭇 흥미롭다. 초끈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4차원이 아닌 10차원 또는 11차원의 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4차원 시공간(3차원공간+1차원시간)만이 우리에게 감지되고 나머지 여분의 차원은 지극히 작은 영역 속에 돌돌 감긴 채로 숨어 있다는 것이다. 초끈 이론은 모든 만물의 최소 단위는 ‘점 입자’가 아니라 파동과 같은 ‘끈’이며, 이 ‘끈’은 고유한 떨림(진동)을 갖고 있어 그 진동에 따라 다양한 입자들과 힘을 만들어내고 지금의 우주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비록 이 이론이 아직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며 실험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지만, 50년 전 아인슈타인이 꿈꾸어 왔던 ‘만물의 이론(TOE=Theory of Everything)’의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후보로 여겨지고 있다. 만일 초끈 이론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100년 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서 새롭게 인식된 시공간의 개념을 인류는 다시 수정해야 될지도 모른다. 초끈 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최근 번역되어 출간된 『엘러건트 유니버스』(원제: The Elegant Universe, 브라이언 그린 著)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에 의하면 지구는 약 45억년 전에 탄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약 10억년의 세월이 지난 뒤 원시 지구의 바다 또는 대양에서 생명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35억년이라는 참으로 장구한 세월동안 지구는 많은 생명을 길러왔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구를 여신인 ‘가이아GAIA’로 일컬으며, 지구의 생물을 어머니처럼 항상 보살펴주는 자비로운 신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근대과학이 확립된 이후 과학에서의 주류적인 시각을 형성해 온 환원주의는 지구를 단지 여러 가지 원소들로 구성된 물질로서 보기 시작하였으며, 산업혁명과 더불어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개발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그후 300년이 지난 지금,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그리고 오존층의 파괴와 지구온난화와 같은 엄청난 재난들은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기에까지 이르렀다.
 
1970년대 초엽 영국의 대기화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1919∼)은 지구의 역사와 생물진화에 대한 종래의 견해들과는 전혀 궤도를 달리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고 주장하였다. 지구 생물권을 단순히 주위 환경에 적응해서 간신히 생존을 영위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오히려 지구의 제반 물리화학적 환경을 활발하게 변화시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라고 규정했다. 러브록은 이러한 자신의 이론에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 지구의 생물과 무생물이 한데 어울려서 하나의 거대한 사이버네틱 시스템, 즉 가이아라는 복합적 실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가이아는 스스로의 존재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주위 환경을 조절한다고 제안한다. … 즉 지구 주위의 물리적·화학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들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환경 요소들이 모두 합해져서 단단히 결집된 조화를 이루는 실체가 바로 가이아 시스템이다. (본문 중에서)
 
러브록은 지구를 ‘생명을 능동적으로 길러내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았으며, 이는 곧 ‘곤토(坤土)의 작용이 지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 해서 우주운동인 일월(日月)의 운동이 자기의 영원성을 창조할 수 있으며, 지구를 중심으로 하고 생식하는 만물은 지구(土)의 통일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증산도 우주관의 일면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선천에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않았나니 이는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니라.이 뒤에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드는 것이 옳으니라. (道典 2:36:2∼3)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는 최수운 대성사가 상제님으로부터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던 이듬해인 1861년 2월 15일, 영국 동남단 아름다운 전원도시인, 켄트(Kent)주 램즈게이트(Ramsgate)에서 태어났다. 화이트헤드는 수학과 물리학의 투철한 연구를 거쳐 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64세의 황혼의 나이에 하버드 대학의 철학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방대한 철학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의 사변철학은 “우주(세계)는 ‘과정’과 ‘실재’와의 끊임없는 변화·교체 속에 있는 현실적 존재들을 통해 자신의 질서를 형성하면서 부단한 창조적 전진 속에 있다”고 하는 유기체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우주에 미만한 질서, 진정한 질서를 파악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저서 곳곳에서 이와 같은 긍정적인 신념을 분명하게 피력하고 있다. …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한다. “물리적인 우주에 대한 지적 이해가 가능한 것은 바로 궁극적 체계의 현시 때문이다.”(『과정과 실재』).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도전은 바로 실재 전체의 체계적인 골격을 포착하려는 것인데, 그런 목표가 도달 가능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실재의 궁극적 체계(ultimate system)가 이미 현시되고 있음으로 해서 충족되고 있다. 바로 이런 골격을 체계화된 도식으로 표현해 내는 것, 그 도식을 통해서 실재의 궁극적 체계를 파악하는 것, 화이트헤드가 그의 철학적 작업, 특히 후기 형이상학 속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과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본문 중에서)
 “철학의 유용한 기능은 문명화된 사상의 가장 일반적인 체계화를 촉진하는 일이다.”(『과정과 실재』)
 
그가 생각한 실재의 궁극적 체계로서의 철학이 갖는 의미는 우주에서 삼라만상의 무궁한 변화의 본체와 그 작용을 탐구대상으로 했던 동양의 역철학적 우주관(우주변화의 원리)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서 말하는 ‘창조성(creativity)’,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영원적 객체(eternal object)’, 그리고 ‘神(God)’과 같은 개념은 증산도 개벽사상에서의 ‘氣’, ‘事’, ‘理’, 그리고 ‘上帝’의 개념과 유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그는 2000년 서구 역사 동안 초월적 존재로서만 인식되어온 ‘신’ 개념의 체계내적 비정합성을 비판하고, 神의 ‘초월성’과 ‘현실성’ 그리고 ‘내재성’이라는 신의 세 가지 본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인류문화의 원형(原型)인 신교神敎문화에서의 ‘三神上帝’의 개념을 그의 유기체 철학 내에 구현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19세기말 서양의 과학주의로 인한 형이상학의 불신 속에서 근대 과학적 지성을 비판하고 과학과 철학의 20세기적 결합을 추구하는 거대한 우주론적 형이상학을 구축하였다. 그의 유기체 철학은 지금까지의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뛰어 넘는 경험과 직관력으로 우주의 궁극적 진리로 가는 하나의 벽을 무너뜨렸다.
 
윌버의 통합적 진리관
켄 윌버Ken Wilber(1949∼)는 우리 시대의 가장 창조적이고 심오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 어느 누구도 윌버만큼 광범위하면서도 진정한 통합적 위력을 갖추고서 과학과 정신의 지식을 통합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인간 사상의 한계를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초월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을 도와주면서 인간 사상의 총체적인 발달을 포착하는 데 있어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49년 미국 오클라오마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자연과학을 좋아하였다. 듀크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다 생화학으로 바꾸어 공부하였다. 대학 시절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통하여 동양사상을 알게 되었고, 그후 불교, 인도 철학, 참선 등에 몰두하였으며 지금도 명상과 참선을 하루의 일과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초인격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sy)분야의 대가이며, 신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철학, 종교, 심리학, 신과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류 문화의 모든 분야를 포섭하는 그의 ‘영원의 철학’을 통해 세계적인 대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다.
 
 
종교와 과학, 과학과 신과학, 경험주의와 신비주의 등, 전근대·근대·탈 근대사상의 갈등, 전통 대 신시대 패러다임의 대립에서와 같이 다양한 진리주장이 대립·갈등하면서 공존하는 현대는 분명 사상과 이념의 혼돈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적 특성과 함께 가장 우려되는 것은 편협하고 닫힌 의식의 눈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진리라고 단정하고 그 외에는 모두 과학적 방법이라는 흑백논리로 매도하는 경험주의적 과학지상주의자/유물론적 실증주의자들의 전통 경험 과학적 진리관이 일반인들을 혼미, 오도시킴으로써 현대인들이 점차 영성을 상실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 캔 윌버Ken Wilber(1949∼)는 경험과학만이 과학이 아니고 이지적/논리적 지식과 선험적/초월적 지식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과학적 방법의 조건을 만족시킬 때 넓은 의미의 과학이 될 수 있고, 이와 같이 인간이 가진 육안·심안·영안의 세 가지 의식의 눈 모두에 의해 통합적으로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통합적 진리관을 말한다. … 이러한 통합적 진리관에 바탕을 두고 육안·심안·영안에 의해 획득되는 순수한 지식으로서의 굳은모Hardware·무른모Software·초월모Transware라는 넓은 의미의 과학사상-심층과학/상위과학/정신과학사상-을 바탕으로 전통경험과학/신과학사상, 전근대/근대/탈근대의 종교/철학/심리학/실증주의/신비주의 세계관을 포괄하고 통합하는 통합적 진리관으로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본문 중에서)
 
켄 윌버는 근대 과학혁명 이후 전개된 이성주의와 20세기 정밀과학이 내놓은 논리실증주의가 가지고 있는 ‘육안(the eye of flesh)을 통한 과학’을 넘어서서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눈인 ‘심안(the eye of mind)’과 ‘영안(the eye of contemplation)’으로 경험되는 존재의 참 실상까지 포함한 ‘영성과학(spiritual science)’을 탄생시켰다. 그는 하나의 진리를 두고 서로 상충되어온 기존의 종교적, 과학적 인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통합적 진리관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사고를 통해서만 얻어낸 관념적 사상이 아니라 그 스스로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얻어낸 살아있는 체험의 사상이다.
 
 글·박현호(hyunho@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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