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동서문명 교류를 연 마테오 리치

2009.10.28 | 조회 2220

히라카와 스케히로 지음/동아시아/36,000원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解寃)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道典 2:26)
 
 
최고의 공덕, 최고의 인간
선천(先天)이 열리고 뿌리종교 시대를 지난 이래 역사적으로 다양한 종교들이 태동하여 인류사를 이끌어왔다.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타고르의 금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날의 각색 종교는 그 정신의 본향을 동양에 두고 있다.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 도시 안에서도 교회와 절, 심지어 이슬람 사원까지 볼 수 있지만, 동서양 종교사를 통틀어 볼 때 한 국가 내에서 종교와 신앙의 다양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백여 년이 채 안 된다.
 
지난 19세기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앞서, 16∼17세기에 구도의 열정으로 동양에 건너와, 동서양의 역사와 문명을 조우시킨 최초의 세계인이 있었다. 기독교적 이상을 동양에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마테오 리치 신부가 바로 그 분이다. 동서문명은 이 분에 의해 비로소 본격적인 조우를 시작하여, 오늘날의 지구촌문명으로 성숙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 이 분은 과연 누구인가?
 
구도의 신념을 따라 중국으로?
마테오 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의 마체라타에서 태어났다. 마테오 리치가 태어났을 당시의 서구 세계는 종교개혁의 불길에 휩싸여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카톨릭)가 대립하여, 이미 북부 유럽은 신교로, 남부 유럽은 구교로 지형도가 그려진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예수회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일어난 카톨릭 내부에서의 혁신운동으로, 인재양성과 선교활동, 신앙심의 확립과 외교력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등을 꾀했다.
 
19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마테오 리치는 외지 선교를 희망하여 로마를 떠나 인도의 고아에서 4년간 머물며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 1582년, 30세 되던 해에 중국의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는다. 중국을 하나의 자기완결된 세계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견고한 중화사상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판단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어를 심도있게 공부했다. 특히 중국에서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라는 것을 알고는 선교사들도 그에 상응하는 선교 방편으로 마테오 리치의 의견에 따라 불교 승려의 복색을 갖춘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마카오에 도착한 이후 명(明)의 수도 베이징의 궁궐에 입성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아닌 이마두(利瑪竇)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천주란 무엇인가? 곧 상제이다
베이징 입성을 향해 북진(北進)하는 동안, 마테오 리치는 한문 저술을 통한 선교가 중국을 위시한 조선과 일본 등의 한자문화권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 입국시의 판단과는 달리 중국 사회에서는 승려의 지위가 낮으며 또한 불교보다는 유교가 그리스도교와 친화력이 있다고 판단한 마테오 리치는, 승복을 벗고 사대부의 복식을 하여 학문을 구하는 유학자로 행세하기 시작한다. 사대부의 복식은 리치 신부가 선비와 관료, 왕족 등의 상류층과 교류할 기회를 넓혀주었으며 상류층 선교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비상한 기억력과 언어 능력으로 단기간에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된 마테오 리치는, 먼저 친분을 나누게 된 중국인 관료에게 우정과 사교에 대한 서양의 금언을 모아 『교우론』을 저술하여 선물한다. 『교우론』은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선비와 관료 계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 중국 사회에서 마테오 리치의 입지를 크게 넓혀 준다. 인간성에 뿌리를 둔 이 ‘우정’이라는 화제가 서양과 동양을 잇는 최초의 책제목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 마테오 리치는 이미 중국 사회에서 명사(名士)가 되었는데, 리치가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서양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기심, 그가 보여주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뛰어난 기억력, 사서오경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풀이해준 놀라운 지적 능력, 자연과학자이며 동시에 인문학자로서의 탁월한 능력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명성과 더불어 황제의 관심을 사기 위해 여러 차례 선물 헌상 등의 노력으로, 1601년 리치 일행은 베이징에 입성하게 된다. 예수회 일행은 당시 황제인 만력제의 인정을 받아 베이징의 영내에 거주할 수 있는 허가를 얻게 되고 또한 황제로부터 녹봉까지 지급받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 밖의 세계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알리고 은연중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세계적 보편성을 전하고자 세계전도인 ‘곤여만국전도’를 제작한다. 또한 한문으로 된 최초의 교리문답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인간과 인생에 대한 윤리적 고찰인 『25언』,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기인畸人 10편』, 기하학을 소개하는 『기하원본』 등의 저술을 연달아 출간한다.
 
『천주실의』의 서문은 ‘천주란 무엇인가, 곧 상제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천주실의』를 통하여 마테오 리치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초기 유교의 상제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천주 신앙의 동일성이다. 중국 선비와 서양 선비의 문답으로 진행되는 이 책에서, 리치는 불교와 도교의 공(空)과 무(無) 개념을 비판하고, 유교의 상제(上帝)가 곧 그리스도교의 천주(天主)라고 이야기한다. “옛 경전들을 보니 상제와 천주는 단지 이름만 다를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천국과 지옥, 내세관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당위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한문으로 쓰여진 최초의 그리스도교 서적인 『천주실의』는 어떤 파장을 일으켰을까?
 
동서양의 종교사상이 본격적으로 조우한 첫 번째 책인 『천주실의』는 중국을 비롯하여 조선과 일본에도 유입되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천주와 상제의 동일성을 알려 많은 사람들을 카톨릭으로 개종할 수 있게 하려는 그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관철되지는 않았다.
 
마테오 리치는 근 30년 동안 전도를 위한 혈성 어린 노력을 하였으나 중화사상의 견고한 벽을 넘지 못한 채, 단지 중국 땅에 새로운 기술과 유용한 지식을 가진 인재로서 황제의 필요에 따라 쓰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들어온 성직자, 구원자로서는 인식되지 못한 것이다. 서구 카톨릭교회의 기록에 따르면 리치의 선교기간 동안 꽤 많은 숫자가 세례를 받고 개종하여 선교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중국 사회에서 개종한 사람의 숫자는 황제를 비롯한 지배계층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한 수치였으며 개종한 소수의 사람들조차도 친분이나 ‘상제신앙’이라는 주장에 거부감 없이 응한 것일 뿐 신앙의 열정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개종자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천주실의』를 비롯한 일련의 한문 저술들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퍼져 서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최초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촉발된 서양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은 곧 서양의 형이하학, 즉 기술은 쓸만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형이상학, 즉 종교는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수준 이하의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더구나 천주天主는 곧 상제上帝라는 마테오 리치의 주장과, 중국 현지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에 적응하여 친화력을 가지고 유교와 그리스도교를 양립시켜 나가야 한다는 마테오 리치의 입장은 그의 사후에 카톨릭 세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전례논쟁’을 가져와 예수회의 존립을 건 투쟁으로까지 비화된다.
 
 
이를 두고 저자인 히라카와 교수는 영국의 역사가인 샌 섬의 입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국에서 선교단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위대하고 실로 고귀한 노력이 아주 작은 결과밖에 이루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동서문명의 빗장을 연 이마두 대성사

젊은 나이에 구도의 이상을 따라 험난한 여정을 마다 않고 중국 땅에 도달한 마테오 리치는 이후의 서양선교사와는 큰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정신계의 정복자’ 임을 자임하며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군림하여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여타 선교사들의 선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길을 돌아 이국 땅에 상륙한 그는 서구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와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는 거대한 문명과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하나의 다른 문명권을 발견하게 된 놀라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왕국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실로 세계 그 자체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동물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지를 논의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사들과는 달리, 마테오 리치는 세계의 다른 면에 펼쳐져 있는 문명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먼저 그 문명 속에 들어가 배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겸허하게 배우고 일하는 과정에서 동서의 문명에 통달하고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최초의 세계인, 다시 말해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구도자가 된다. 또한 ‘이교도’의 지역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함으로써 동양에 카톨릭 중심의 천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전대미문의 대이상을 품게 된다.
 
‘세계는 하나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문화와 지식을 유산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복수(複數)의 문명권과 복수의 언어권으로 나누어진 현재의 지구는 하나의 세계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교통 수단이 발달하기 전인 대항해 시대 이전의 서양과 동양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르네상스 유럽의 자연과학 지식과 중국 사서오경의 학문을 한 몸에 갖춘 인간이 인류 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다. 마테오 리치는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를 처음으로 한 몸에 겸비한 최초의 세계인이자, 동양에는 서양의 문명을 소개하고, 서양에는 동양의 문명을 소개한 동서 문명과 역사 교류의 수로를 튼 인물인 것이다. 마테오 리치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양의 천주와 유교의 상제신앙의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천주실의』가 비록 동서양 사회 모두에 격렬한 반대 논쟁을 가져오고, 심지어 카톨릭 사회에서는 그의 입장이 거부당했음에도, 그 자신의 신앙 성숙 과정에서 동양 문화의 상제 신앙을 발견하였기에 마침내 천상에서 신앙의 참천주[참하느님]인 상제님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생전의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천상에 올라서까지 인류를 위해 수백 년간 헌신했다. 상제님께서도 그 공덕을 인정해 주신 바 있다.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解寃)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道典 2:26:1)
 
서양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神明)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 이기(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道典 2:26:3∼8)
 
마테오 리치! 이국 땅에서 이마두로서 더 오랜 기간을 살다간 그는 생전에 모든 정력을 다하여 동양 땅에 천주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하였으나, 그 위대한 이상과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아서는 그 염원을 다 이루지 못하였다. 수천 년 동안을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동서양 각 세계의 강한 저항과 그 자신의 본령本領이라 할 수 있는 카톨릭 사회의 완고함과 제국주의적 방법론의 고수는, 최초의 세계인으로서 동서 문명 모두에 발을 딛고선 그의 선구적 행로에 장애로 작용하였다. 그는 결국 이국 땅에서의 짧고도 긴 삶을 마감하고 천상에서 수백 년간 인간세상을 위해 쉼 없이 일한다. 지금 이마두 대성사의 은덕을 입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 대부분이 그 공덕을 알지 못하나, 그는 인간세상을 위해 일심으로 혈성을 다한 최고의 공로자로 인류 앞에 우뚝 서있다.
 
이마두(마테오 리치)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이 그를 떠받드나니,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니라. (道典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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