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일본의 역사 왜곡

2009.11.09 | 조회 2267

뿌리깊은 일본의 역사왜곡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단지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성 싶다. 그 버릇의 본질은 개인에게는 품성으로, 국가에서는 민족성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작금의 일본의 행태를 살펴보면 이 속담이 너무도 실감나게 와닿는다. 이런 서두를 꺼내는 이유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전후(戰後) 새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시아의 청룡으로 떠올라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이 지난 십여 년간 고베발 경기침체의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벌인 역사조작극이 이제 국제무대의 힘겨루기 판에 놓여 밀고당기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그들의 버릇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 동안 수수방관해온 우리 모습이 지금은 그들의 누른 싹수를 키운 밑거름이 되어 버렸다.
 
 
일본의 임나가 백제와 신라를 지배하다?
이 책의 저자인 홍윤기 박사는 일본에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으로 피끓는 열정으로 그들의 잘잘못을 파헤치고자 나름의 역사적 사료와 증거들을 들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책 전체를 꿰뚫는 논지는 찾기 힘들지만, 나열식으로 이루어진 역사왜곡의 실상을 우리 역사의 동시간대에 비교하면서 꼼꼼이 살펴보면, 저자의 역사 사랑의 뜨거운 순정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그들이 왜곡하는 역사를 시간대별로 나누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신라시대 이전의 고대사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본서에서는 이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둘째는 신라시대와 일본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관한 부분이다. 본서에서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되어 저질러지는 일본의 만행을 역사적 사료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신라, 가야지역에 과거 일제강점기 때의 조선총독부와 같이 이 지역을 관할하는 일본의 행정부서가 있었다는 내용으로서,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륙침략의 야욕을 위해 조작된 밑바탕인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고사기』(古事記, 712년 편찬)와 두 번째 역사책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편찬)에 보면,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로서 9명의 천황들을 만들어놨다. 그중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에 쳐들어가서 신라왕의 항복을 받고 신라왕을 마부로 삼았으며 무릎을 꿇고 사죄하게 하고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까지 조공을 바치게 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공황후 섭정 46년이 A.D. 246년으로 신라, 백제, 고구려를 복속시킨 후에 문예와 기술·방직·금은·기계 모두가 삼한으로부터 전래해 와서 일본의 개화를 도운 것이 매우 많았으며, 이에 국운이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이 내용을 살펴보면 후진국이 선진국을 침공하여 이기고 갖가지 문물을 배워 번창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또한 신공황후의 재위기간이 『삼국사기』 백제왕들의 재위기간과 비교해볼 때, 120여 년이나 앞당겨져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設)은 5∼6세기 중엽 무렵, 조선의 임나에 설치되었던 출선(出先)기관으로서, 임나 등을 비롯한 그 밖의 백제·신라 등까지도 지배했으며, 서기 562년에 임나가 신라에게 합병되기 전까지 존속했다고 하는 설이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일본이 고대 조선인 정복왕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건국된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서도 왜곡, 유물도 조작
이에 대해 저자는 일본 극우사관의 원류를 역사서와 유물의 왜곡 날조로부터 비롯됨을 정확히 꼬집고 있다. 내용인즉 광개토대왕의 비문 훼손으로 광개토왕의 남하가 임나일본부의 일본군의 저항에 부딪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남아있는 광개토대왕비의 사진을 비교하고, 떠진 탁본이 훼손된 비문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로부터 조작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광개토대왕비의 비문 훼손에 대해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비석은 1880년으로 한 농민의 집안 땅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듬해 일본군 중위 사코우 카게아기가 비문을 떠서 해독하였다. 그리고 1907년 4월 프랑스 학자 샤방느가 현지에서 입수하여 1908년 통보(通報)(제2권 8호)에 탁본을 발표했는데, 당시는 새까만 바탕에 자획이 비교적 명료한 문자로 찍혀있었다. 그런데 6년 뒤인 1913년에 세키노 타다스(關野 貞, 1875∼1935, 미술사가, 건축학 전공, 도쿄대 교수)와 이마니시 료우(今西 龍, 1875∼1931, 조선사 전공, 경성제대 교수)가 조사했을 때 찍은 사진에는 비면에 세로줄이 그어지고, 그 사이에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 후로도 나이토우 코우난(內 湖南, 1866∼1934, 동양학자, 도쿄대 교수)이 찍은 사진에는 아예 석회를 발라 비문을 새겼다. 그렇게 그들은 유물마저 파손시키면서 노골적으로 역사 왜곡작업을 벌여왔다.
 
 
가공의 인물로 탄생된 일본 천황가의 뿌리
 
또 임나일본부의 뒷받침을 위해 그들은 그들의 뿌리마저 조작을 하고 있다. 임나일본부라는 막강한 통치기구가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이루어진 국가형태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오랜 역사의 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를 위해 제1대 천황부터 9대까지 9명의 가공의 인물들을 만들어 일본역사의 시작시점을 실제보다 1천여 년을 늘여 놓았다. 그나마 역사적 사료의 상세함 등을 들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10대 스진천황의 즉위 년도도 BC 97년으로 실제보다 500여 년을 앞당겨 놓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 유물로 주장하는 수많은 국보들의 대부분이 신라와 백제에서 건너갔다. 또한 최근 한·중 양국민의 서슬퍼런 질책의 칼날과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고이즈미 총리가 뻔뻔스럽게 참배를 드리고 있는 신사(神社) 또한 바로 신라에서 건너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일본인 쿠메 쿠니타케 교수의 논문들을 빌어 입증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라는 이미 2세기경부터 나라(奈良) 땅에서 천신사상을 배경으로 신도적인 국가체제를 구성하였으며, 신라의 고대 야마토(大和)지역의 지배는 신라신 스사노오노케토를 정점으로 해서 그의 아들 대국주신을 신앙하는 신도의 국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이처럼 역사적 사료들과 양심 있는 몇몇 일본 학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일간 역사의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 일본인들은 그들의 대륙침략의 야욕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현재의 역사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역사왜곡을 통한 황국사관에로의 복귀
세번째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시간대로 바로 일제가 저지른 백여 년 전의 만행들이다. 위안부 문제와 독도문제 등 근대에 일어난 수많은 문제들이 모두 그들의 철저한 역사왜곡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지난 백여 년간의 그들의 만행을 교묘하게 얼버무리며 현재 그들의 정치적 야망을 펼치고, 경제적 수렁에서 빠져 나오고자 하는 도구로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들은 지난 백여 년을 통해 극우주의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일만엔 지폐엔 근대 일본에서 극우주의자의 뿌리가 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가 그려져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자비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민중운동가였지만 후에 “조선이라고 하는 악우(惡友)와 사귀는 것을 거절한다”(脫亞論, 1885)고 하며 조선을 못된 친구라고 무조건 매도한 반한주의자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정한론(征韓論)에 앞장섰던 조선 침략주의자였다.
 
그의 ‘탈아론’은 메이지유신 이후 침략주의 노선의 제국주의적 발상이 되어 이후 일본을 군국주의 침략국가로 이끌게 되었고, 이로부터 역사교과서도 조작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어, 이후 1999년부터 일본사회 일각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등장했는데, 일본 군국주의가 내세웠던 지난날의 황국사관에로의 복귀가 궁극적인 목표이다.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그들은 역사 조작과 왜곡을 통해서 그들의 꿈을 현실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가상의 역사가 이제는 힘있는 자의 편에 서서 대 일본제국이라는 그들의 망령이 되어 세상의 역사를 뒤집을 시간대에서 폭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선천 역사는 힘있는 자의 편에 서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만사와 만물의 참이 그대로 드러나는 우주의 가을이 오고 있지 않은가?
 
가을이 되면 모든 생명이 그 진액을 거두어 뿌리로 돌아가듯이 가을개벽을 맞아 우리 역사의 진액을 이제는 거두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인류 문명의 종주국으로서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자 하는 가슴 한 켠의 울부짖음과 그 자성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다가오는 가을 세상의 주인됨의 자질을 갖추고 세상의 불의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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