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제갈공명의 도덕성 우선의 리더십

2009.11.09 | 조회 2844

김재웅/창작시대/8,000원

 일관된 신념과 도덕성의 리더십
 제갈공명! 그는 만고의 지략가이다. 뿐만 아니라 탁월한 행정가, 상식을 뛰어넘는 발명가였고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가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일관된 신념과 도덕성에 바탕을 둔 리더십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유비 진영을 어엿한 삼국의 하나로 일어설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원칙에 충실한 리더로서 인재기용에 있어 도덕성에 큰 비중을 두었다. 조조가 유재시거(唯才是擧)라 하여 능력만을 중요시했던 데 비해 그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기용했다. 또한 처음부터 한실의 회복이라는 천하통일의 일관된 신념(삼고초려로 유비와 만난 27세 때부터 오장원에서 죽을 때까지 27년간)을 간직하며 변절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정책에 책임을 지고 신상필벌과 믿음을 근본으로 하는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감한 개혁정책을 감행함으로써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여 백성들을 잘 살게 하였으며, 국토를 넓힌 후에는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공명의 리더십은 일관된 신념과 도덕성에 있었다. 유비의 대를 이어 왕이 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서 인재를 보는 그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 … 시중시랑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은 모두 진실되고, 뜻과 헤아림이 충성되며 순수합니다. … 궁중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말고 모두 다 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런 연후에 행하신다면, 필시 그들은 폐하를 보좌하여 빠지거나 새는 일이 없도록 보필하여 널리 이로움이 있게 할 것입니다. …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함이 맑고 곧으며 군사(軍事)의 일에도 밝습니다. … 현 시중상서, 장사, 참군 세 사람은 곧고 명석하여 절개를 위해 죽을 신하들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하시어 믿어주십시오….”
 
 그가 발탁했거나 중용한 인물들을 보면 모두 한결같이 도덕성을 갖춘 인물들이다. 위(魏)의 진영에는 인재가 많았지만, 촉(蜀)의 진영은 인재에 항상 갈급증을 느꼈다. 좁은 익주 한 곳에서만, 그것도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다보니 정작 쓸 수 있는 인재는 늘 부족했던 것이다. 반면에 조조는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는 인재 기용 때문에, 간사한 자들이 드나들고 반역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예로 조조는 아첨하는 동소의 말에 귀를 귀울인 탓에 위왕이 되고, 나중에는 ‘한실의 찬탈자’라는 역사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생전에는 그의 카리스마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사마의의 쿠데타로 왕조가 뒤엎히고 말았던 것이다.
 
 공명은 신념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사에 힘썼으며, 정책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였다. 삼국시대 말, 그는 위나라 원정길의 요충지인 가정을 지키는데 평소에 신임하던 마속을 내보냈다. 마속은 전략에 밝아 많은 계책을 내놓았지만, 실전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이었다.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장수 왕평을 부장으로 붙이고, 직접 진을 치는 법까지 일러주며 만약의 실수에 대비했다. 그러나 마속은 도로에 진을 치라는 공명의 명을 어기고, 병법서에 나온 대로 원론적으로 산 위에 진을 치는 고집을 피웠다. 이에 촉군은 위군에 수로(水路)를 끊겨 대패하였다. 공명이 친자식처럼 아끼던 마속이었지만,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린다는 원칙 하에, 먼저 자신의 벼슬을 우장군으로 깎고, 마속을 참수했다. 이것이 바로 ‘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며 마속을 베다)’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마속은 공명과 의형제였던 마량의 아우로, 인재난에 허덕이던 촉의 처지에서 보면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확실한 법 집행은 촉의 백성과 문무백관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주었다. 이엄은 공명으로부터 벌을 받고 쫓겨난 인물이었지만, 공명이 죽자 그는 오히려 이를 크게 한탄하다 병으로 죽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근신하면 다시 기용될 것을 확신하고 있던 터였는데, 공명이 죽자 그런 자신을 인정해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했던 것이다. 역시 요립도 공명에 의해 쫓겨난 인물이지만, 정작 공명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탄식했다. “내 이제 좌임(左 : 서민)으로 끝나겠구나!”라고.
 
 개인이나 조직의 준비성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도 목표를 성취할 수도 없다. 준비성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발견하게 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공명의 리더십은 그냥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이 아니라 항상 준비하고 정도를 걸으려고 하는 삶의 자세로부터 나온 것이다.
 
 공명은 어려서 불행하게도 부모를 잃고 숙부에 의지하여 자랐다. 숙부마저 죽고 의지할 곳이 없게 된 공명은 주경야독을 하면서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초야에 은거하며 사는 평범한 농부가 아니었다. 그는 쉴새없이 방덕공, 사마휘와 같은 당대의 명사들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고, 형주 일대의 선비들과 교류했다. 그의 천하삼분지계와 같은 특출한 비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리더의 첫 번째 임무는 사명을 정의하는 것이다.”라고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비전이 있으면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리더십의 핵심이란 추종자의 참여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보직은 리더십을 시험하는 무대[자리]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의 리더십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조직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의 인간경영
 공명의 정대함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서 빛을 발한다. 물론 공명의 처신은 리더십론의 측면에서는 원론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것을 실천하여 이루어낸 사람이다. 내부의 분열을 막고 단결시키는 것, 인재를 중용하여 소중히 여기는 것, 그들의 능력을 중요시하는 것, 인재를 믿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것 등 치우치지 않고 등한시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초가 처음으로 유비 진영에 합류했을 때, 관우의 질문에 관우의 경쟁심리를 눈치챈 공명은 이렇게 답장을 썼다. “마맹기(馬孟起)는 문무를 겸비했고, 능력은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일세의 호걸로 경포나 팽월과 같은 무리라고 할 수 있소. 마땅히 익덕(장비)과 나란히 앞섬을 다툴 수는 있을 것이나, 미염공(관우)의 절륜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요.” 마초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관우의 자존심도 함께 지켜주는 절묘한 답장이었다. 관우는 공명이 자신의 자존심을 알아줌을 알고 흐뭇해했다. 공명은 사소한 반목으로 조직이 분열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 중에서 끊임없이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인간의 능력뿐이다.”라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생각을 달리하면 한사람 몫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명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하나의 방책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칭찬’이었다. 그의 반간계(反間計)에 투항해 온 장수 강유를 얻을 때, 공명은 그를 크게 칭찬하며 촉의 기둥으로 삼은 적이 있다. 믿지 못할 사람이면 처음부터 쓰지를 말아야 하고, 일단 썼으면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하며,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주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촉의 창립 1세대가 모두 죽고 삼국의 형세가 굳어지면서 촉은 익주 한곳에서만 인재를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공명은 부족한 자원이라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 애썼다. 공명의 리더십은 빈약한 촉의 인적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였고 상대적으로 뛰어난 인재를 갖춘 오와 맞설 수 있었다. 사람의 재주와 끼를 발견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계발을 시켜주는 것 또한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것’을 넘어, ‘적재적소에 인재를 키우는’ 리더십은 오늘날과 같이 각기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세상에서는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제갈공명의 국가 경영
 공명은 결코 어느 집단에 치우치지 않는 면모로 인재들의 통합을 이끌어 내었다. 자신이 천거한 인물이건 익주에서 새로 합류한 인물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공명은 빈약한 익주의 인재들만으로 오를 견제하고 위나라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덕성에 기반한 엄격한 법 집행으로 강력한 통합과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개혁은 동화, 유파, 여예 등 검소하고 강직한 인재들을 대거 기용하여 관리들의 기풍을 쇄신하고, 윗물부터 맑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이것이 크게 성공하였던 것이다.
 
 반면 원소는 부하들을 믿지 못해 그의 관할 아래에 있던 4개 주에 아들과 조카를 보내 다스리게 하는가 하면, “용맹스럽기는 하나 성격이 급하고 도량이 좁아 혼자서 무거운 임무를 맡을 수 없다.”는 저수의 간언을 듣지 않고 안량을 백마로 보내었다. 결국 장수 안량을 잃고 요충지 백마마저 조조에게 내주고 말았다. 조조의 모사 순욱은 일찍부터 그를 버린 채 조조를 따랐고, 곽가 역시 그를 외면했다. 대업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만한 기둥들을 놓치고 만 것이다.
 
 공명의 넓은 가슴은 남만을 정벌하는 길에 더욱 빛난다. 오나라를 정벌하기 전에 뒤의 안정을 위해서는 남만을 정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남만왕 맹획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곳은 원래 자신들의 땅인데 이민족인 한족(漢族)이 힘으로 뺏은 터라 후손들이 조상들의 땅을 되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몇 차례 사로잡아 달래보았지만, 결코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 공명은 그 때마다 맹획을 놓아주었다. 군사를 쓰는 도리는 “마음을 치는 게 상책이요,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라는 마속의 건의를 받아들여, 맹획의 마음을 얻어내기로 하였다. 공명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일곱 번을 잡아 일곱 번을 놓아준 끝에 맹획의 마지막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공명의 정성에 감복한 맹획은 이렇게 말했다. “공은 하늘의 위엄이 있습니다. 우리 남인(南人)들은 다시는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공명은 관리도, 군대도 주둔시키지 않고 회군함으로써 그들을 껴안았다. 그들은 공명을 오히려 존경하면서 촉군이 북벌길에 오를 때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새 시대의 리더십
 현대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성공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최근에 나오는 리더십론의 저서들은 일방적 권위주의가 막을 내리게 됨을 말하고 있다. 좬신뢰경영과 서번트 리더십좭과 같은 저서가 그러한 예이다. 여기서 서번트(servant) 리더십이란 ‘부하를 섬기며 이끄는 리더십’이란 뜻으로 상하간의 신뢰가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보이지 않는 경영자산임을 강조하고 있다. 상사가 부하를 섬긴다는 것은 부하들이 업무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부하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항상 함께 열심히 해보자고 하면서도 막상 윗사람의 눈치만 보는 상사, 부하에게 반말을 일삼거나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상사, 부하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주장대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상사는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동맥경화증을 유발시킨다.
 
 우주 만유는 중(中)과 화(和)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만물은 평등하여 그 본성이 절대 평등하다. 만물의 질서가 온화함 하나로 손잡고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새 시대의 리더십이란 절대 공명정대하여 중(中)의 정신을 잃지 않고 포용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 도심을 기둥죂道心柱죃으로 하여 화합하는 조직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조직의 생산물을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다. 앞서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그 비전을 제시하면서, 먼저 그것을 준비해내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이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힘든 먼 거리를 건너야 했으므로 물건을 나르는 사람(서번트: servant)을 고용하여 다 함께 기나긴 길을 갔다. 서번트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같이 웃고 울면서, 힘든 역경을 극복해내는데 함께 하였다. 서번트가 중간에 일이 있어서 그룹에서 탈퇴하게 되자 그가 빠진 그룹은 갑자기 대혼란이 왔다. 정작 리더는 따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혼란이 오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리더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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