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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난민 밀어내기 뒤에 푸틴… 美-러 갈등으로 확산”[글로벌 포커스]

2021.11.27 | 조회 502

“벨라루스 난민 밀어내기 뒤에 푸틴… 美-러 갈등으로 확산”[글로벌 포커스]


동아일보 2021-11-20


벨라루스 난민 사태 어디로

EU 제재 맞서 ‘하이브리드전쟁’

주변국 영향력 키우는 푸틴

서방국가 vs 러시아 긴장 고조




16일(현지 시간) 밤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 서부 그로드노 인근 국경 검문소 쿠지니카에서 국경을 통과하지 못한 난민들이 임시 난민촌에 모여 불을 쬐며 추위를 피하고 있다. 이번 난민 사태는 부정 선거 의혹을 받는 ‘유럽 최후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의 제재에 ‘난민 밀어내기’ 공격으로 맞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격의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로드노=AP 뉴시스


“우리는 벨라루스와 유럽연합(EU) 사이에 갇힌 인질이었습니다.”


18일(현지 시간) 벨라루스 국경 지대에서 폴란드로의 입국을 시도하다가 입국이 좌절되자 본국인 이라크로 다시 돌아온 난민들이 한 말이다. 이날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출신 난민 390명을 수송 여객기를 이용해 귀환시켰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살기 위해 조국을 떠났던 난민들은 폴란드와 벨라루스 간 갈등 속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 처지를 한탄했다. 이날 시리아 난민 부부의 한 살 된 아기도 국경 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기는 굶주림과 탈수로 심한 복부 통증을 앓고 있었다. 이 가족은 한 달 반 동안 국경을 넘지 못하고 숲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틀 전인 16일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이 맞닿은 쿠지니카 일대에는 약 3000명의 난민이 몰렸다. 일부는 도끼와 칼로 국경 사이 철조망을 훼손하고 국경을 넘으려 했고, 일부는 폴란드 국경수비대에 돌을 던졌다. 국경수비대는 물대포, 최루탄, 섬광탄으로 맞섰다. 폴란드 내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번 사태로 폴란드 국경 일대에서 최소 13명 이상의 난민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국경 일대에서의 충돌에 대해 폴란드는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67)을 맹비난했다. 미국, EU 등 서방이 벨라루스에 제재를 가하자 루카셴코가 이라크, 시리아 난민을 자국 항공기로 실어 나른 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인접한 국가로의 월경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3만 명 이상의 난민이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불법 월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루카셴코 대통령 못지않게 서방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인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9)이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53)는 벨라루스의 ‘난민 밀어내기’에 대해 “지휘자는 푸틴 대통령”이라며 “사람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으로 (이를 통해) EU를 불안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간 더타임스는 이번 난민 사태가 폴란드와 벨라루스의 갈등을 넘어 미국, EU를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시아 간 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왜 푸틴은 루카셴코를 돕나


러시아는 난민 밀어내기의 배후라는 의혹 제기에 사실 무근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지만 실제로는 벨라루스 지원에 나선 상태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 입장에서 벨라루스는 미래의 러시아가 될 곳이기 때문이라고 일간 르몽드는 분석했다.


동유럽에 위치한 내륙국이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는 과거 ‘백러시아(White Russia)’로 불렸다. 우크라이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맞닿아 있어 위치상 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통로다.


지정학적으로 벨라루스는 러시아 동맹의 서부 최전선,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부 최전선이어서 과거부터 몽골, 러시아, 독일 등 강대국들의 침략이 잦았다. 벨라루스는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0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한동안 친서방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러시아에 의존하게 됐다. 세계 3위 산유국 러시아로부터 원유를 싸게 구입해 가공, 수출하는 석유화학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집권한 루카셴코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러시아와의 통합에 반대했다. 그러나 경제적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자 1999년 그는 러시아와의 ‘연합국가(Union State)’ 창설 조약에 서명했다. 다만 자신의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구체적인 통합에는 합의하지 않았다. 그는 “연합국가가 아닌 일방적인 흡수”라고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사회를 앞세워 연합국가 진행을 미뤘다. 이 때문에 푸틴은 처음에는 루카셴코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러시아 주재 외교관들은 전했다. 러시아는 2018년 “벨라루스가 유리한 특혜 조건으로 원유를 공급받아 러시아가 피해를 본다”며 세제 개편을 단행해 양국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루카셴코는 지난해 8월 대선에서 80% 이상의 득표율로 6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으로 20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올해 5월에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언론인을 체포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켜 비행 중이던 아일랜드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키기도 했다. 미국, EU 등 서방은 국가가 벌인 ‘하이재킹’(운항 중인 항공기를 공중에서 납치하는 일)이라며 벨라루스에 각종 제재를 단행했다.


서방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게 되자 루카셴코는 러시아에 경제는 물론이고 안보까지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일정 간격의 거리를 두던 루카셴코가 지난해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서방의 압박을 받게 된 후 전략을 바꿨다”고 전했다.


올해 9월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두 나라를 통합하는 ‘연합국가’ 창설을 위한 세부안인 28개 로드맵에 합의했다. 2023년까지 단일 가스 시장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고 석유와 석유제품 시장을 통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에너지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5억 달러(약 6000억 원)의 차관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 우크라이나 일대 러시아 병력 증가




17일(현지 시간) 벨라루스 쿠지니카 검문소에서 철조망 앞에 선 난민 아이들이 반대편에 있는 폴란드 국경수비대를 바라보고 있다. 전날 이곳에서는 월경을 시도한 난민들과 국경수비대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그로드노=AP 뉴시스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폴란드 등 인근의 EU 회원국과 친미 국가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있다. 현재 난민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지대는 전통적으로 서방이 러시아를 침공했던 주요 경로이기도 하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등이 모스크바를 침공할 때 해당 지역을 통해 진입했다.


러시아 역시 이 지역을 통해 서방으로 침공했다. 그러나 2004년 5월 폴란드, 체코 등 과거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EU와 나토에 가입한 데 이어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도 가입하면서 러시아는 안보적 완충지대를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마저 EU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대해 일종의 안보 강박증이 발동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는 “벨라루스가 친서방화된다면 안보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서구의 중·단거리 미사일 등을 비롯한 무력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뿐 아니라 발트해-흑해-카스피해로 이어지는 지대에 강력한 대(對)러시아 봉쇄망이 구축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난민 밀어내기 사태에 대해 나토가 “벨라루스가 러시아에 종속돼 ‘제2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이 우려된다”는 논평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크림공화국을 지원한 후 러시아에 합병했다. EU와 미국 등은 러시아의 확장에 따른 유럽의 안보를 우려하며 강력한 제재를 부과한 바 있다.


이달 1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서남부 지역인 브랸스크와 쿠르스크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진행하는 위성사진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3일 기준 국경 지역에 남아있는 러시아군이 약 9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근에 병력을 증강하면서 제2의 ‘크림반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블룸버그는 12일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해 유럽의 동맹국들에 경고했다고 전했다.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1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올겨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경고를 서방의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서방은 우크라이나 주변 군사 활동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5일 “러시아의 추가 도발이나 군사 활동은 매우 심각하다”고 했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0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2014년처럼 우크라이나에 또 다른 ‘심각한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긴장 고조 행위”라며 “오히려 흑해에서 미국을 포함한 나토 국가 공군기들과 정찰기들의 활동이 강화됐다”고 반박했다.




○ 미국과 러시아 대결로 가나




난민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려는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갈등과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서의 군사력 집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시아 간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조짐이다.


미국은 터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과 함께 이달 12일 흑해 공해상에서 연합 해상 훈련을 벌였다. 폴란드 엄호에 나선 나토군도 유사한 해상 훈련을 진행했다. 폴란드는 국경에 1만5000병력과 탱크 등을 배치해 벨라루스 혹은 러시아군과의 교전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도 10, 11일 벨라루스에 자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Tu(투폴레프)-22M3 2대를 출동시켰다. 이 폭격기들은 극초음속 미사일과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어 논란이 됐다. 루카셴코는 13일 “재래식 탄두와 핵탄두를 모두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시스템이 벨라루스에 배치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권 국가의 안보협력기구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군사력도 정비하고 있다. CSTO는 2002년 옛 소련에 속했던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 결성한 군사·안보 협력체다. 지난달 이들은 타지키스탄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푸틴은 18일 러시아 외교부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미국, EU 등에 대해 “러시아가 그은 ‘레드 라인’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일부 외신들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시아 간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도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미국과 EU는 현재 갈등이 지속 중인 국경 지대들에서 군사 작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닉 카터 영국 국방참모총장은 13일 영국 타임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냉전시대 양측의 긴장을 완화해주던 전통적인 외교적 도구와 장치가 더는 없다”며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의 우발적인 전쟁 발발 위험이 미국-소련 냉전시대 이후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가 제2차 정상회담을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채널1 방송에서 푸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양자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상황과 나토 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이 성사되면 양국 정상은 6월 제네바에서 열린 회담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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