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개벽뉴스

스페인 독감은 어떤 병이었나?

2009.12.21 | 조회 8576

스페인독감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사람수보다 몇 배 더 많은
전세계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스페인 독감 - 위키백과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혹은 스페인 독감(Spain毒感)은 1918년과 1919년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형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 2,500만~5,0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수보다 3배나 많은 숫자이다.


한국에서는 무오년 독감(戊午年毒感)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발생원은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 부근이며, 고병원성으로 발전한 것은 1918년 8월 15일, 아프리카 서해안의 영국 보호령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 부근으로 추정된다. 감염자의 약 5%가 죽었으며, 일부는 걸린 지 2~3일 만에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스페인이 병원체의 발원지는 아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은 이를 ‘스페인 독감’으로 불렀다. 이는 스페인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 보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아 스페인의 언론에서 이 사태가 깊이있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1. 스페인 독감은 어떤 병이었나?


◉ p.19 : 스페인 독감 - 1부 1장

1918년 독감은 20세기에 창궐한 각종 전염병들이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얼마나 위력적인 전염병이었는가 하면, 만일 그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오늘날 창궐한다면 심장병, 암, 뇌졸중, 만성폐질환, 에이즈, 알츠하이머병의 연간 희생자 수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전염병은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의 한해 동안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미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18년에 무시무시한 전염병 하나가 전 세계를 휩쓸며 얼음처럼 차가운 손으로 거의 모든 가정에 죽음과 참화를 남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니,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기막힌 일이다. 하지만 무지했던 깃이 나뿐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1918년 독감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전염병을 무시해 버리는 습관이 있는 역사학자들이 간과한, 역사상 가장 커다란 미스터리 중의 하나였다.


가장 치명적인 살인자 중의 하나인 바이러스가 관련되어 있었으며, 1918년 독감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일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많은 학자들의 사연이 거기에 있었다. 이 미스터리를 풀어 낸다면 그 끔찍한 바이러스 또는 그것과 비슷한 다른 바이러스가 다시 지구상에 나타났을 때 과학자들이 인류를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2. 스페인 독감의 증세는 어떠했는가?

◉ 『독감』 p.25 : 스페인 독감 - 1부 1장

찬바람이 부는 가을에 전염병이 찾아왔을 때 몇몇 사람들은 그것이 새로 발명된 무서운 전쟁 무기일 거라고 했다. ... 병마는 젊은이와 건강한 사람들을 공격했다. 건강하고 튼튼해서 병을 잘 견뎌 내는 사람들이었다.


◉ 『독감』 p.27 : 스페인 독감 - 1부 1장

사람들은 그 전염병을 1918년 독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독감은 이전에 나타난 어떤 독감과도 달랐다. 마치 성서의 예언이 실현된 것 같았다.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처럼 먼저 세상에 전쟁이 오고 다음에는 굶주림이 오며 그 다음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네 번째 두루마리의 봉인이 열리면서 “죽음처럼 창백한 말이 나오는데 말을 탄 자의 이름은 전염병이니 하데스가 그 뒤를 따르더라”라는 예언이 현실로 되는 것 같았다.


전염병은 그해 9월에 시작되었고 전염병이 지나갔을 때에는 50만 이상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질병은 지구상의 구석구석까지 손길을 뻗쳤다. 일부 에스키모 마을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서사모아 인들의 20%가 사라졌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습격하는 지역이 어디든 매우 특이한 집단을 공격했다. 일반적으로 전염병의 패해를 덜 입는 젊은 성인층이 바로 그들이다. 사망 곡선은 W형태를 나타 내었다. 5세 미만 영유아층, 70~74세의 노년층, 그리고 20~40세의 청장년층이 그래프의 정점을 이루었다.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고 가족은 파괴되었다. 전염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조차 싫어했다. 전염병은 세상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있을 때 찾아와 몇 달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으며 전쟁이 끝나자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 나타날 때만큼이나 수수께끼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 전염병은 세계 역사상 어떤 질병보다 많은 수의 목숨을 단 몇 달 만에 앗아갔다.


신의 육체와도 같았던 건강한 신체의 젊은이가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지팡이에 기대어 앙상한 팔다리로 추위에 떨며 돌아디니는 모습. 오늘날 우리는 천연두와 탄저병, 또는 천연두와 에볼라를 조합해 만든 새로운 바이러스를 이용한 세균전을 걱정한다. 또는 끔찍한 신종 병균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이를테면 무더운 열대지역에서 만들어져 도사리고 있다가 태고의 열대림이 파되되는 것과 동시에 외부세계로 퍼져나와 인류를 몰살시킬까봐 걱정한다.


하지만 독감을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독감은 너무 시시해 보인다. 독감은 겨울마다 나타나고 사람들은 빠르든 늦든 누구나 독감에 걸린다. 독감에 걸리면 별다른 치료법이 없지만 상관없다.


“인플루엔자”는 이탈리아어로 한 가설에 따르면 18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이 붙였다고 한다. “influenza di freddo”는 “추위의 영향”이라는 뜻이다.



3.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었는가?

◉『독감』 p.29 : 스페인 독감 - 1부 1장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는가? 미국 인구의 25%가 넘는다. 해군에서는 전체 해군의 40%가 1918년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육군은 약 36%로 추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죽었는가? 추정치는 2000만에서 1억 이상까지 다양하다.


비교하자면 1997년까지 1170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투로 인한 전사자 수는 920만 명이었고, 이 기간 동안 전체적으로는 1500만 명이 사망했다. 이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상 비슷한 기간 동안에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많은 수의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라는 것이다.


1918년 독감의 치사율은 어떠했을까? 일반적인 독감 사망률의 25배가 넘었다. 이 독감은 감염자의 2.5%가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독감에 걸려서 사망하는 사람은 0.01%에 불과하다. 그해 미국 인구의 28%를 포함해서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독감에 걸렸기 때문에 이 사망률은 엄청난 것이었다. 사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1918년에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12년이나 줄었다. 만일 오늘날 그런 전염병이 창궐하여 유사한 사망률을 보인다면 미국인 150만이 사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림잡은 수치만으로는 1918년에 전 세계를 휩쓸며 대도시에서부터 한적한 오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던 무시무시한 공포의 풍경(3부)을 전달해 줄 수 없다.


◉ 『독감』 p.31 : 3부

그는 충동적으로 1917년의 연감을 집어들고 미국인의 평균수명을 찾아보았다. 약 51세였다. 그런 다음에 1919년의 연감을 빼 들었다. 평균 수명은 거의 같았다. 그런 후에 그는 1918년의 연감을 살펴보았다. 평균 수명이 39세였다.


4. 스페인 독감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력한 질병이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독감』 p.31 : 3부

1918년의 독감의 거대한 영향은 어찌된 셈인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18년 독감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치명적인 균주로 발전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5. 스페인 독감은 어떻게 번져갔는가?

처음에는 평이한 독감으로 시작했다가 변이를 일으켰다. 첫 번째는 평범했다, 그런데 두 번째 다가올때는 괴물로 변해있었다.


◉『독감』 p.31 : 3부

알려진 것은, 그것이 처음에 평범한 독감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변이를 일으켰다는 것뿐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1918년 봄, 사람들을 감염시켜 3일 정도 오한과 열을 일으켰다. 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모습을 감추었고 엄청난 힘을 가지고 가을에 다시 나타났다.


의학 전문가들은 1918년 독감의 두 엄습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 엄습은 평범했고 쉽게 잊혀졌다. 이 유행성 독감이 처음 나타났을 때 전염병이니 세균전이니 하는 것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엄습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감과는 닮은 점이 거의 없는 괴물로 변해 있었다.


◉ 『독감』 p.33

그러던 중에 이 마을에 독감이 찾아왔다.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이틀쯤 뒤에는 독감에 걸려버리는 것 같았다. 거의 동시에 전염 경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군인들 중 일부가 독감에 걸리고 있었다. 1918년 3월 독감은 유럽으로 이동하는 미국의 제 15기갑부대에 도착했다.


두 달 후 모든 사람들이 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에서는 알폰소 13세까지 포함해서 800만 명이 독감에 걸렸다. 마드리드 시민의 3분의 1이 독감에 걸려서 일부 정부 청사는 업무를 중단해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전차도 운행을 중단했다. 이 시점에서는 스페인 혼자만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독감의 첫 번째 엄습이 넓게 퍼져 나간 것이다.


군대에서는 병에 걸렸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3일 열병”이라고 불렸다. 다음은 그해 4월 존 C. 애커 병장이 쓴 편지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3일 열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 마당에 그런 이름이 적합한지 모르겠다. 병은 갑자기 찾아오는데 수은이 체온계의 맨 꼭대기에 오르도록 열이 펄펄 끊고 얼굴은 붉게 변하며 온몸의 뼈가 욱신거리고 머리는 부서질 듯이 아프다. 이런 증세가 사나흘간 계속되다가 흠씬 땀을 흘리고 나면 차츰 가라앉지만 후휴증이 한두 주는 계속된다.


하지만 스페인으로서는 난처하게도, 다른 나라들에서 이 질병이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다. 결국에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비롯하여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도 1918년 봄에 이 질병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 『독감』 p.35 : 3부

1918년 4월 독감은 프랑스에 나타났고, 프랑스에 주둔한 영국, 미국, 프랑스 군대뿐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감염시켰다. 다음 달 독감은 영국에 상륙했고 조지 5세도 독감에 걸렸다. 독감은 영국에서 6월에 절정을 이루었다. 같은 시기에 독감은 중국과 일본에 나타났다. 아시아에서도 독감은 “3일 열병”, 때로는 “씨름선수 열병”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놀랄 일은 아니지만 독감은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하도 많이 독감에 걸린 나머지 지휘관은 병 때문에 전투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고 불평하기에 이르렀다.


조지 왕의 영국 함대는 1만 313명의 군인들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5월에 3주 동안이나 출정하지 못했다. 영국 육군 제29사단은 6월 30일에 프랑스의 라베크를 공격할 예정이었지만 너무 많은 병사들이 독감에 걸려서 작전을 연기해야 했다.


◉ 『독감』 p.36 :

여름이 되면서 독감이 가장 기승을 부렸던 나라들조차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독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몇 달 후 독감은 복수의 화신처럼 사납게 돌아왔다. 독감은 전세계를 휩쓸었다. 1918년 독감의 두 번째 엄습 역시 매우 전염성이 강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치명적인 살인자였다. 돌이켜보면 독감이 보이는 양상은 뚜렷했다. 인구 통계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젊은 성인들의 사망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노스케롤라이나 대학의 의학 지리학자 제럴드 파일이 밝히듯이 8월 무렵에 독감은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카리브 해의 상당부분,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사망자를 냈다.”


6. 스페인 독감의 증상은 어떠했는가?

고열에 헛소리를 하다가 허파에 물이 차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마침내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건장한 백인 장병들이 몇시간만에 백인과 흑인을 구분 못 할 정도로 까맣게 변했다.관이 모자라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 『독감』 p.36 :

감염자의 약 20% 정도는 경미한 증세를 보이다가 별 탈 없이 회복되었지만, 나머지 80%는 2명 중 1명이 심각한 증세로 악화되었다. 일부는 순식간에 허파에 물이 차서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할 정도의 치명적인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고열에 헛소리를 하다가 호흡이 곤란하여지고 마침내 혼수상태로 빠져들었는데 며칠 심지어 몇 시간만에 사망했다.


또는 처음에는 오한, 열, 근육통 외에 심각한 증세는 없는 일반적인 독감으로 시작했다가 병을 앓기 시작한 지 네댓새가 지난 무렵에는 손상된 허파로 병균이 침입하여 목숨을 잃거나 오랜 회복 기간이 필요한 폐렴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7. 독감은 얼마나 빨리 번졌는가?

◉ 『독감』 p.36 :

독감의 두 번째 엄습은 8월에 미국의 보스턴 항에 도착한 일단의 해병들 사이에 나타났다.


하룻밤 사이에 데번스 기지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해 9월 데번스 기지에 근무를 배정받은 한 의사, 로이는 통제 불능의 전염병에 대해 친구에게 절망적으로 편지를 썼다. “데번스 기지는 보스턴 인근에 있으며 약 5만 명의 병사를 수용하고 있네. 아니, 전염병이 돌기 전까지는 그랬네.” 독감은 4주 전에 기지에 들어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어찌나 빨리 퍼지는지 병사들의 사기가 엉망이 되고 독감이 지나갈 때까지 정규 훈련이 전면 중단되었다네. 병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절대 금지되었지.”


이 질병은 처음에는 평범한 독감처럼 보였다고 로이는 설명했다. “하지만 기지 병원으로 실려 온 병사들의 증세는 빠르게 폐렴으로 발전했네. 그렇게 심한 폐렴은 한 번도 본적이 없네. 폐렴 소견을 낸지 2시간이면 벌써 광대뼈 부위에 적갈색 반점이 보이고 몇 시간 후에는 귀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얼굴에 청색증이 나타나 얼굴이 검푸르게 되는데,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네. 죽음은 단 몇 시간만에 찾아오네. 환자들은 공기를 찾아 허덕이다가 숨이 막혀 질식해 버린다네. 끔찍한 일이야. 하나, 둘, 아니 스무 명이 죽는 것은 견딜 수 있네. 하지만 불쌍한 병사들이 파리처럼 죽어 나가는 것은 눈뜨고 보지 못할 참극이야. 하루 평균 백 명이 죽어 나가는데도 질병의 기세는 여전히 꺾일 줄을 모른다네.”


시체를 처리하는 일 자체도 문제가 되었다. “시체 수송을 위한 특별열차가 동원되고 있네. 며칠 동안 관이 모자라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네. 시체 보관소 공간이 부족해서 막사를 추가로 더 비웠네.”


◉ 『독감』 p.40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의사들은 혼비백산했다. 수용한도가 3만 5000명인 기지는 4만 5000며잉 넘는 병사들로 북적였다. 거기에 독감이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본 박사는 그 경험에 대하여 글을 남겼다.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건강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 가며 과학의 얼굴에 대고 도전적인 붉은 깃발을 흔든” 이 유행성 독감의 역사를 구구절절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 박사는 말했다.


다음은 그가 데번스 기지에서 본 광경이다. “군인들이 열 명씩 스무 명씩 떼를 지어 병원으로 들이닥쳤다. 병상이 다 차고 난 뒤에도 환자들은 계속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곧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심한 기침에는 피 섞인 가래가 함께 나왔다. 아침이면 죽은 시체들이 시체 보관소 부근에 장작 단처럼 쌓였다. 그 일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함에 있어서 인간의 어떤 발명품도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에 미치지 못함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당시는 현대식 무기를 사용한 첫 번째 전쟁, 기관총과 신경가스로 젊은 남자들을 쓰러뜨리는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무기들은 이 질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독감』 p.44 :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미국 육군 헌병 사령관은 14만 2000명에 대한 신병 소집을 취소하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유럽에서 군인들이 절실히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독감은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해 9월, 1만 2000명의 미국인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전국의 모든 기지가 격리 상태에 있었다.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으며 일반 대중 가운데 그런 예상을 한 사람은 전무했다.


◉ 『독감』 p.45 :


독감이 필라델피아에 도착한지 한 달 안에 거의 1만 1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1918년 10월 10일에는 하루에 759명이 세상을 떠났다. 장의사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장의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가격을 6배나 올려 받아 잇속을 차리는 자들도 있었다. 시립 시체 보관소에는 시체들이 “모든 방과 복도까지”삼중 사중으로 쌓여 있었다. “시체들을 핏자국이 묻은 더러운 천으로만 덮어 놓기 일쑤였다. 대부분은 방부 처리를 하지도 않았으며 냉동도 하지 않았다. 어떤 시체들은 심한 악취를 뿜어 내기도 하였다. 시체 보관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는데 아마도 환기를 위해서였을 것이다”필라델피아의 악몽은 전 세계에 퍼져 엄청난 공포를 가져올 전염병의 전주곡이었을 뿐이었다.


◉ 『독감』 p.48 :

미주리 주립대학의 스타인 박사는 1918년 9월 26일에서 12월 6일까지 1020명의 학생들이 독감에 걸렸다고 썼다. “나는 한 환자가 병이 생긴 지 18시간 만에, 그리고 병상에 누운 지 12시간 만에 죽는 것을 보았다. 다른 수많은 환자들이 이 질병에 걸린 처음 48시간 동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을 목격했다. 독감이 중병이 아니라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썼다.



◉ 『독감』 p.51 :

관리인은 그 끔찍했던 기기에는 시체들이 도로를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노라고 말해 주었다. “죽은 사람이 하도 많아서 시체를 묻을 구덩이를 팔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거에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 『독감』 p.52 :


벤을 위해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독감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몰랐다. 펄펄 끓는 열을 내릴 약도 없었고 물이 찬 허파에 산소를 공급할 방법도 없었다. 생명을 연장시킬 수단도 없었고 죽음을 고통스럽지 않게 해 줄 방법도 없었다.


8. 스페인독감을 빨리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에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던 때였다. 지금은 왜 독감바이러스가 허파 세포만 감염시키는지도 안다.

◉ 『독감』 p.55 :

전자 현미경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바이러스는 너무 작아서 평범한 현미경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단한 독감 바이러스 안에는 8개로 분절된 RNA 유전자뿐이며, 감염시킬 수 있는 세포 없이 바이러스만 놓아두면 몇 시간 안에 죽어 버리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십여 년 전에 알아냈다. 독감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아냈다. 전자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독감 바이러서는 조그만 공 또는 달걀 모양의 입자들이다. 때로는 긴 막대형을 띠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알고 있다.


독감 바이러스 입자들은 단백질 지지대가 박힌 매끄러운 지질막에 쌓여 있으며 내부에는 RNA 유전자 분절들이 들어 있다. 또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 자기 자신을 복제한 다음, 바이러스 외피에서 튀어나온 수백 개의 예리한 단백질 침을 이용해 세포를 깨고 다시 퍼져 나오는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왜 인간 독감 바이러스가 허파 세포만을 감염시키는지도 알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들을 만드는 동안 단백질을 분해하는 데에 필요한 효소가 인체 내에서는 오직 허파에만 있기 때문이다.


출처: 질병대란과 인류의 미래 (http://flu.js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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