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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미래] 성장사회와 성숙사회

2022.02.27 | 조회 346

[뉴노멀-미래] 성장사회와 성숙사회


한겨레 2022. 02. 27. 14:56 


[뉴노멀]


효율성과 능력주의에 기반한 경제적 성장주의의 한계가 점점 뚜렷이 확인되면서, ‘성숙사회’가 그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주변 풍경. 장철규 기자

박성원 |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성장이라는 단어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이의 키가 자라고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기쁜 것도 없다. 화분의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 학생이 선생의 학문을 넘어서는 것, 낡은 사회적 통념이 깨지는 것도 성장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렇듯 가슴 떨리는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꼭 경제를 붙이는 버릇이 있다. 사회의 미래 방향을 가늠하는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성장은 늘 정책공약의 1번을 차지했다. 역대 정부의 성패는 경제적 성장을 일궈냈는지에만 달려 있다. 이 때문에 경제부처는 다른 부처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중요한 행정부가 됐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가장 중요한 뉴스는 다음해의 경제성장률 전망이다.


경제적 성장의 한계가 이미 50년 전 로마클럽의 보고서에서 확인되었지만 성장, 그다음의 비전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지속가능성장, 동반성장, 혁신성장, 포용성장 등이 지금까지 대안적 비전으로 거론되었지만, 여전히 성장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성장 앞에 무엇을 붙이든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소비와 생산이 증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후위기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팬데믹의 숱한 징후에 둔감했을까.


지난해 국회미래연구원은 3000명 대상의 온라인 조사와 202명의 시민이 참여한 숙의토론형 공론조사를 통해 새로운 선호 미래상으로 ‘성숙사회’를 도출했다. 성숙사회는 효율성과 능력주의에 기반한 국가 주도의 경제적 성장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사회다. 각 개인의 처지에 맞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형평성, 사회적 신뢰나 연대, 건강의 증진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생물다양성 보존과 기후변화 대응에도 적극적인 사회다.


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물과 흙이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며 “전국에 웬만한 땅 파보면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나온다”고 증언했다. 또한 “경제성장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한 방향으로만 가는 사회에서 끝이 없는 경쟁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성장을 위한 기계로 사람을 취급하는 것은 멈춰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의견들은 성숙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하게 한다.


성숙사회의 원류를 찾아보면 물리학자(197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자 시대사상가인 데니스 가보르가 1972년 펴낸 책()이 나온다. 그는 성장사회가 잃어버린 개인의 행복 능력, 놀이와 여가,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이 성숙사회의 과제라며 시급히 성장사회에서 퇴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보르의 성숙사회는 한동안 잊혔다가 유엔이 설립한 대학에서 2013년 성숙사회를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다시 언급되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경제학자 파르타 다스굽타는 국내총생산(GDP)으로 성장을 측정하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자연 자본과 개인의 건강이 훼손되지 않는 성장을 주장했다. 그는 미래세대의 웰빙까지 고려하는 것이 성숙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성숙사회를 저출생과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의 관점에서 비전으로 제시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 교토대학 히로이 요시노리가 펴낸 <에이아이(AI)가 답하다. 일본에게 남겨진 시간은?>(2019)에서 일본이 지속가능하려면 도시집중에서 지역분산형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과 물건, 돈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분산형 사회시스템이 성숙사회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강조한다.


아직은 경제적으로 더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당장 성숙사회로 이행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숙사회가 성장사회에 짓눌려 새로운 선택지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껏 하던 대로 살 수밖에 없다. 그건 정말 매력도 없고, 성장하지 않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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