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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슬러지 유출 헝가리 마을.."악몽과 같다"

2010.10.08 | 조회 6131

<르포> 슬러지 유출 헝가리 마을.."악몽과 같다"

[연합뉴스]

"갈 곳 없어도 아이들 생각하면 이젠 이곳에서 못 살아"

주민 사고 초기 촬영 화면 연합뉴스에 제공

(콜론타르 < 헝가리 > =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슬러지가 땅에 스며든 이곳에서 더는 살지 않겠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야 할지 막막하다."

알루미늄공장의 저수조 댐이 파열되면서 60만~70만㎥에 달하는 독성 슬러지가 순식간에 마을을 덮친 콜론타르의 주민들은 7일(현지시각) 연합뉴스 기자에게 이같이 하소연했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약 170㎞가량 떨어진 인구 800명의 조그만 이 시골 마을은 사흘 전 오후 갑자기 밀어닥친 슬러지 `홍수'에 휩쓸린 이후 주민들에게 버림받을 운명에 처했다. 마을의 낮은 곳에 있는 집들의 벽 중간에는 슬러지에 잠긴 높이를 알려주는 붉은 색 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2m 높이까지 잠긴 집도 보였다.

슬러지가 휩쓸고 지나간 콜론타르의 이날 모습은 홍수가 할퀴고 지나간 마을과 겉으로 보기에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물난리를 겪은 마을에 남은 건 진흙이고, 이 마을에 남은 건 슬러지라는 게 다른 점.

보크사이트 광석에서 알루미나를 추출할 때 쓰이는 이 슬러지는 납 등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고 알칼리성이 매우 높은 유해 물질이다. 피부에 묻으면 화학적 화상과 눈 질환을 유발한다. 유럽연합(EU) 폐기물 규정에 따르면 이 슬러지는 해로운 물질이 아니라는 공장 측 주장은 주민들의 두려움을 전혀 덜어내지 못했다.

이 마을에 사는 40대 여성 홀체르 멜린다 씨는 집이 높은 쪽에 있어 다행히 슬러그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 이 마을에서 더는 살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데 새 집을 마련할 형편이 못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새로 살 집을 마련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졸리'라고 밝힌 50대 남성은 슬러지가 마을을 덮치는 순간을 `공포영화'와 같았다며 자신이 마침 찍은 비디오 화면을 보여주며 당시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우리 집이 조금 높은 지대에 있는데, 마을 쪽을 보니 뭔가 붉은 진흙 같은 것이 마을로 아주 천천히 흘러 왔다. 저게 뭔가 싶어서 보다가 비디오를 들고 찍어 봤다. 그런데 한 30분 만에 온 마을에 슬러지가 50cm 높이로 찼다. 사람들도 멍하게 있다가 너무나 빨리 슬러지가 들이 닥치자 아무 것도 못 가지고 부랴부랴 대피하기 시작했다. 공포영화 같았다. 악몽이다."

헝가리 TV 화면에는 슬러지가 온통 마을을 뒤덮은 이후의 장면만 방영됐는데 졸리 씨가 찍은 화면엔 사고 초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졸리 씨는 이 화면을 연합뉴스에 제공했다.

그는 그러면서 "슬러지가 집에 들어왔든 안 들어왔든 아마 마을 사람 대부분이 결국 마을을 떠날 것 같다. 나도 아이들 때문에 마을을 떠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슬러지가 어느 정도 치워졌지만 이미 땅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토록 커다란 재앙을 가져온 슬러지가 십여 년 넘게 마을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불안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다.

40대의 볼레 카로이 씨는 "사고가 나기 이전까지는 그게 위험한 줄 몰랐고, 또 그토록 엄청나게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재난 위험을 몰랐고, 공장은 무책임했으며, 정부는 위험에 무감각했던 셈이다.

평상복 차림에 장화를 신은 그는 슬러지 유독성에 대해 "정부나 전문가들이 피부에 닿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있다"면서 "얼마나 몸에 안 좋은 건지 내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남은 슬러지를 걷어내거나 더는 쓸모없어 보이는 집들의 가재들을 집 밖으로 옮기는 재난방재청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서 당장의 `중금속 오염'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데베체르에서 볼 수 있었던 폭 2m 정도의 작은 시내는 아직도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흐르며 불안함을 키웠다. 이 시내가 연결된 마르칼 강은 물고기가 폐사하는 생태계 파괴를 맞았다.

슬러지는 폭 5m가량의 마르칼 강을 따라 북진해 이보다 조금 큰 라바 강에 이르렀고 이날 결국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길고 6개국을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에 도달했다.

다만, 죄르 시내에서 본 라바 강과 여기서 3㎞ 정도 떨어진 다뉴브 강과 합류 지점에서 붉은색 슬러지의 흔적을 육안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뉴브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지역방재책임자인 티보르 도브슨 씨는 "라바 강과 다뉴브강의 산도가 PH 9.6과 9.4로 측정됐다. PH 9 이하로 낮추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슬러지가 다뉴브 강 본류에 도달했음을 확인했다.

물의 산도를 나타내는 PH는 1~6일 경우 산성, 6~8은 중성, 8~14는 알칼리성이다.

라바 강변에서 만난 20대 여성 오스테리히 아기 씨는 "전과 달라 보이는 건 없는데 슬러지가 유입됐다고 하니 불안한 생각이 든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며 원망 섞인 투로 말했다.

헝가리 학계를 대표하는 과학아카데미는 이틀 전 시행한 시험분석 결과 슬러지 중금속 함유량이 환경에 위험하다고 여길만한 수준에 근접하지는 않다고 발표했고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다뉴브강 보호 국제위원회 대표도 "슬러지가 다뉴브에 도달하더라도 독성 영향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이런 평가들이 헝가리 시민들의 우려를 걷어낼 수 있을까?

jungw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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