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부리는 비석
귀신을 부리는 비석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 했던가! ‘지음知音’이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에 거문고를 잘 연주했던 백아伯牙는 자신의 음을 알아주는 이는 종자기鍾子期뿐이라며 벗인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무릇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보다.
허나 이것이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조선 현종 2년(1661년)에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부임한 미수 허목許穆 선생은 고을이 매년 수재로 극심한 피해를 입자, 동해 바다를 달래기 위해 동해송東海頌(동해를 칭송하는 시)을 짓고 이를 비석으로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에 응하여 동해 용왕신이 마음을 풀었고, 그 결과 조수로 인한 피해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고려 말부터 조선 말기까지 역대 삼척 지방을 거쳐간 수령들의 명단을 정리한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동해퇴조비東海退潮碑를 새겨 세우니 조수가 다시는 밀려오지 않았는데, 손수 명문銘文 192자를 지었다. -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
그리하여 척주동해비는 퇴조비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이 비석을 세움으로써 조수를 잠재웠다니. 허미수 선생의 혼이 실린 전서篆書가 신명들을 감동시킨 것이리라. 미수 선생의 문집에는 이런 자신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송시열과의 예송논쟁으로 유명한 기호 남인의 영수領袖였던 미수 선생이 이 같은 주술적인 행적을 남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미수 선생의 성장 배경을 보면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미수 선생의 아버지인 허교는 서경덕의 제자였던 박지화의 문인이었다. 박지화는 김시습의 도맥을 이어받은 조선 시대 도가道家의 한 사람이다. 미수 선생이 「청사열전」을 써서 김시습 등 도가 7인의 행적과 전기를 쓴 것은 도가에 관심이 컸음을 보여 준다. 또한 그는 불승이었던 정응과도 친교를 맺고 있었다.
미수 선생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고경, 제자백가서, 도교, 불교 등 다양한 학문 세계를 섭렵한 것이다. 미수 선생이 창안한 ‘미수체’는 전서篆書로 구성되어 있다. 전서는 한자의 가장 기본적인 서체로 한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미수 선생은 고문의 힘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讚碑
허미수 선생은 실직悉直(삼척의 옛 지명)으로 부임을 받으면서 수재水災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척주동해비 근처에 있는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讚碑(대한의 물과 땅을 평정한 것을 찬송하는 비)이다.
이 비는 미수 선생이 형산비衡山碑(중국 형산에 세운 우임금의 치수 사업을 기록한 비석) 77자의 비문 중 48자를 선택하여 목판에 새겨 삼척부에 보관하게 한 글을 비석으로 만든 것이다.
1904년 고종 황제에 의해서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는데 우임금과 같이 치수를 하여 수재를 극복했다고 여겨 내려 준 이름으로 보인다. 「기언」에 적힌 미수 선생의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 ‘형산비기 무오년(1678년)’
미수 선생은 우임금이 전서를 가지고서 치수의 사업을 완성한 것을 확인하였다. 형산비의 일부 글자만 따서 글을 지었다는 것은 그 비문의 힘을 빌리려 한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임금의 치수가 단군조선 2세 단군이신 부루태자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환단 시대의 법이 미수 선생에게 전해진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형산비문의 힘을 삼척 관내에 보관하고 있었고, 미수 선생은 7월에 미수체로 동해송을 지어 수재를 잠재웠다.
앞으로 개벽기에는 화火판과 수水판이 있다. 상제님께서는 개벽기에 많은 창생들을 살리기 위해 직접 용궁으로 가셔서 신명들에게 명을 내리셨다. 저 푸른 바다에는 바다 생물뿐 아니라 수많은 바다 신명들이 살고 있다. 허미수 선생의 척주동해비가 바로 그 증거다.
[참조]
*『삼척문화 바로알기』 (개정판, 김태수, 삼척시립박물관, 2018)
*『국역 척주지』 (배재홍, 삼척시립박물관, 2001)
*『삼척향토지』 (김정경 배재홍, 삼척시립박물관, 2016)
*네이버블로그-德田의 문화일기
※삼척시립박물관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척주동해비 동해송
瀛海漭瀁(영해망양) 큰바다 넓고 넓어
百川朝宗(백천조종) 온갖 냇물 모여드니
其大無窮(기대무궁) 그 끝이 없어라
東北沙海(동북사해) 동북쪽의 사해여서
無潮無汐(무조무석) 밀물과 썰물이 없으므로
號爲大澤(호위대택) 대택이라 할 만 하네.
積水稽天(적수계천) 바다 물 하늘에 닿아
浡潏汪濊(발휼왕예) 출렁댐이 넓고도 깊으니
海動有曀(해동유에) 바다가 움직임에 음산함이 있네
明明暘谷(명명양곡) 밝고 밝은 양곡으로
太陽之門(태양지문) 태양의 문이라
羲伯司賓(희백사빈) 희백이 관장하고
析木之次(석목지차) 석목의 성차이고
牝牛之宮(빈우지궁) 빈우(동해신의 이름이라고도 한다)의 성궁이니
日本無東(일본무동) 해뜨는 동쪽의 끝이구나
蛟人之珍(교인지진) 교인(인어)의 진기한 보배는
涵海百産(함해백산) 바다 속의 온갖 산물이라
汗汗漫漫(한한만만) 한도 없이 많으며
奇物譎詭(기물휼궤) 기이한 물체 조화를 부려
宛宛之祥(완완지상) 꿈틀대는 그 상서로움은
興德而章(흥덕이장) 덕을 일으켜 나타남이로다
蚌之胎珠(방지태주) 조개 속에 든 진주는
與月盛衰(여월성쇠) 달과 성쇠를 같이 하니
旁氣昇霏(방가승비) 기운은 토함에 안개가 오르고
天吳九首(천오구수) 머리가 아홉인 천오(수신水神)와
怪虁一股(괴기일고) 외발 달린 괴물 기는
飇回且雨(표회차우) 폭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네
出日朝暾(출일조돈) 아침에 돋은 햇살
轇軋炫熿(교알현황) 구석구석 밝게 비추니
紫赤滄滄(자적창창) 자주색 붉은 빛 서늘하여라.
三五月盈(삼오월영) 보름달 둥근 달
水鏡圓靈(수경원령) 하늘에서 밝게 비추니
列宿韜光(열숙도광) 별들이 빛을 감추네
扶桑沙華(부상사화) 부상의 사화족
黑齒麻羅(흑치마라) 흑치의 마라족
撮髻莆家(촬계보가) 상투 튼 보가족
蜒蠻之蠔(연만지호) 굴조개를 잡는 연만족
爪蛙之猴(조와지후) 원숭이가 많은 조와족
佛齊之牛(불제지우) 소를 좋아하는 불제족
海外雜種(해외잡종) 바다 저편 잡종이라
絶黨殊俗(절당수속) 종족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지만
同囿咸育(동유함육) 같은 땅 위에서 자라서
古聖遠德(고성원덕) 옛 성인의 위대한 덕화에
百蠻重譯(백만중역) 온갖 오랑캐 거듭 통역하여 모여드니
無遠不服(무원불복) 멀리까지 복종하지 않는 곳 없구나
皇哉熙哉(황재회재) 훌륭하고 빛나도다
大治廣博(대치광박) 큰 다스림 넓고도 크나니
遺風邈哉(유풍막재) 남긴 기풍 원대하여라
대한평수토찬비 내용
久旅忘家(구여망가) 오래도록 자기 집을 잊어버리고
翼輔承帝(익보승제) 임금의 뜻을 보좌하였네.
우가 구년 홍수를 다스릴 적에 세 차례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았다.(도전 2:50:1)
勞心營知(노심영지) 마음을 쓰고 지혜를 써서
衰事與制(쇠사여제) 사업을 모으고 제도를 흥성하게 하니
泰華之定(태와지정) 온 세상이 안정되고
池凟其平(지독기평) 바다와 하천 모두 평온하구나.
處水奔麓(처수분록) 물에 처하여 산록은 구불구불
魚獸發形(어수발형) 고기와 짐승이 모습을 나타낸다네.
而岡弗亨(이강불형) 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伸鬱疏塞(신울소색) 답답한 것이 해결되고 막힌 것이 뚫리리니
明門與庭(명문여정) 밝은 문과 뜰에서
永食萬國(영식만국) 만국의 백성이 길이 먹고 살리라.
(월간개벽 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