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STB] 하늘과 땅의 결실, 태일太一

2010.12.08 | 조회 31548

북두

우울한 사회


한 신문에서는 이 사회를 ‘우울한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 ‘폭스콘’공장의 자살도미노 소동은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인간 본연의 가치가 물질과 이윤추구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종 해외에서 보도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기사건은 개인홈피와 소셜네트워크의 급속한 확산 이면에 더욱 깊어지는 인간의 고립과 외로움을 생각하게 한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패륜적 범죄들이 사회면을 뒤덮고 있다. 인권침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CCTV를 설치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아동성범죄 기사에 부모들은 연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TV와 영화를 모방한 10대들의 범죄는 그 잔혹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언론과 교육계는 앞다투어 ‘10대들의 인성이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단지 청소년들만의 문제일까? 경제위기로 자신의 아이를 죽인 부모, 불안한 노후와 고립감을 이기지 못한 60대 고령자들의 자살증가, 그리고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


지금! 이 시대는 ‘인간의 가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우리사회에 인성론이 부족한 것일까? 문․사․철, 인간을 탐구해왔던 인문의 성과들은 넘쳐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모순은 무엇 때문일까? 인간 삶의 의미, ‘인간에 대해 새로운 가치 발견’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연 이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5편에서는 신교문화에 전승되어온 천지인 삼재사상과 삶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 그 자체로서의 목적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 한국인 자살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3대 사망 원인 중에 하나로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더 높았다. 1일 평균 35.1명꼴로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과는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자살사망자 추이][여성사망원인 도표]

 

자살

최근 인문사회분야 베스트셀러 중에는 『Justice-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다. 7천명 안팎밖에 되지 않는 하버드 학부생들 중에 매년 천여 명이나 모여 <정의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한 강의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다원화 시대, 자유시장 경제 속에서 정의와 부정, 개인의 권리와 공리에 관한 여러 딜레마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자살’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칸트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은 이런저런 의지에 따라 임의로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중략…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임마누엘 칸트)

즉 자살이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람을 물건 취급하면서 그 자체를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타살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에게 사물과는 구별되는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가치가 있음을 말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도구가 되어버린 인간의 자화상을 목격한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경제적 도구로써 하루하루를 기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이 몰려올 때도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의문에 고민하기도 한다.


근래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뚜렷한 이유없이 직장일에 불만을 갖는 것을 말하는 ‘직장인사춘기증훈군’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그냥 웃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삶의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한 현대인들이, 철모르는 어린아이로 인생의 퇴행을 겪고 있는 슬픈 일면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이며, 내 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가슴 한편에 채우지 못한 외로움이 늘 우리를 방황하게 만들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주제의 실마리를 선조들이 쌓아온 문화의 흔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늘의 존귀한 신, 태일太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이곳의 명칭은 도교(道敎)의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삼청전의 제사는 소격서(昭格署)에서 맡았는데, 소격서는 잘 알려진 대로 중종 때 조광조에 의해 폐지된다. 조광조는 좌도가 정도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소격서의 폐쇄를 지속적으로 간한다. 결국 1518년(중종13)에 폐지되고, 이때 제복(祭服)·제기(祭器)·신위(神位)까지 땅에 파묻혔다. 비빈(왕비나 후궁)들의 낭비를 근절하는 개혁의 일환으로써 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유교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소격서에 대한 논란은 조광조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었다. 가령 태종 4년(1404년), 태종이 초제(별에 올리는 제사) 지낼 날짜를 상정하도록 명하자, 유학자들이 도교숭배에 대해 반대하며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예조 지사 김첨이 다시 반박하는 상소를 올리는데, 여기 특이한 문구가 보인다.

태일(太一)은 하늘의 귀신(貴神)이기 때문에, 한(漢)나라 이래로 역대에서 받들어 섬기어 여러 번 아름다운 상서(祥瑞)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조(前朝)에서 복원궁(福源宮)·소격전(昭格殿)·정사색(淨事色)을 두고 따로 대청관(大淸觀)을 세웠으며, …중략… 만일 군사를 행(行)하려면, 장수가 대청관에 나가서 재숙(齋宿)하고 초례를 베푼 연후에 행하였으니, 대개 태일(太一)은 어진 별[仁星]이 있는 곳이어서 병역(兵疫)이 일어나지 않고, 방국(邦國)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대청관은 태청관을 말함)

소격서에서는 삼청전(옥청,상청,태청)과 내외전 외에 태일전(太一殿)을 따로 두었다. 태일太一은 천신天神의 이름으로 하늘에서 가장 존귀한 신으로 모셔졌다(태일전은 태일이 있는 곳에 따라 옮겨 설치하는데, 처음에는 경상도 의성(義城)에 두었다가 성종 때에 충청도 태안(泰安)으로 옮겼다고 한다). 실록에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태일성이 움직이는 방위에 따라 해당하는 지방에 태일전을 짓고 태일신에게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도교는 황제와 노자의 학설로 이론체계를 세우고 교단을 확립하여 황제와 노자를 시조로 받들었다. 그런데 도교의 주요 경전인 『포박자抱朴子』나 개설서인 『운급칠첨』을 보면, 황제가 신농씨의 후예인 광성자나 치우천황의 국사인 자부선생에게서 깨달음을 전수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노자는 동이계 국가인 초나라 출신으로 자신의 성 한韓씨를 이李(木+子)씨로 바꿈으로써 본래 자신이 동방사람임을 암시하였다. 즉 황제와 노자는 혈통적으로나 학맥적으로 모두 동이족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도교는 본래 신교의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교로 그 신앙형태 역시 신교를 계승하고 있다.
[북극성 영상]신교는 북극성, 삼태성, 북두칠성이라는 하늘의 세 신성한 별을 섬겨왔는데, 도교에서도 태일, 삼청, 칠성사상이 있다. 하늘의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데, 그 중심별을 바로 태일 또는 태을이라고 한다. 이처럼 상제님과 더불어 하늘의 천신이신 태일신을 함께 모셨던 도교는 신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태일太一에 대해 보다 깊이 느낄 수 있는 신교문화의 사서가 있다.

만유생명의 근원, 삼신三神


조선조 중종 시절 한민족 신교문화의 신학과 철학적 기틀을 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1455~1528)이다. 그의 본관은 고성固城으로 고려말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의 현손(5대손)이다. 외세의 침입 속에 천자국의 위상이 쇠퇴해가던 고려 말,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행촌 이암과 중종반정 이후 사림의 득세와 명분론에 치우친 유학의 정치체제 속에서 신교의 맥박을 다시 이은 이맥의 삶을 통해 과연 역사적인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봄직하다.


일십당 이맥은『태백일사』「소도본전 경훈」에서, ‘삼신은 천일 지일 태일이라(三神은 乃天一地一太一之神也)’하여, 만물생명의 뿌리, 근원인 삼신三神이 현실 속에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으로 드러남을 말했다.
그런데 첫째로 삼신三神이란 말에서부터 혼동이 온다. 혹시 신이 세 분이란 말인가?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우주의 신 또는 창조주를 말할 때 한분의 하느님, 유일신으로 말한다. 그래서 신교의 ‘삼신’을 마치 세 분의 하나님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세 분의 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은 본래 일신一神이지만 세 가지 덕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삼신과 ‘하나’되어 우주 자연의 질서와 인간역사를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인간형상을 하고 계신 주신主神을 ‘삼신상제님’ 또는 ‘상제님’이라 불러 왔다.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道典 1:1:1~3)


‘일즉삼(一卽三) 삼즉일(三卽一)’이라는 말이 있다. 즉 하나가 구체적으로 현실에 작용하려면 셋으로 열려야 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변화논리로 볼 때 본중말(本中末)이라고 한다. 하나가 셋으로 작용할 때 그 첫 시작이 있고, 작용하는 중간 과정이 있고, 그 다음에 끝마무리를 짓는 과정이 있다는 뜻이다.
흔히 한국인은 숫자 3을 참 좋아한다고 하는데, 씨름을 해도 세 판, 내기를 해도 세 번, 무엇을 해도 세 번을 한다고 우스갯말을 하곤 한다. 이는 하나가 3수의 원리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원리를 생활문화 속에 그대로 적용해온 오랜 문화전통이다.


봄에 만물을 내고, 여름에 길러 가을에 결실을 거두는 생장성生長成의 법칙은 바로 3수의 원리로 만유를 주재하시는 삼신 상제님의 창조섭리가 지구 1년의 초목농사 속에 드러내심이다.


그래서 ‘천일지일태일’에서의 ‘일一’은 우주를 낳아준 한 분의 조물주 곧 삼신을 말한다. 이 삼신의 신성과 지혜와 광명이 하늘과 땅과 그리고 인간 속에 100% 온전히 그대로 동일하게 깃들어 있기 때문에 하늘을 천일天一, 땅을 지일地一, 인간을 태일太一이라 부른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을 인일人一이라고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늘 땅보다 더 존귀한 존재, 태일太一


태太는 대大와 씨앗을 의미하는 ‘⼂’가 합해진 글자로, 단순히 ‘크다’라는 대大자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태는 씨앗을 품고 있으니 모든 것의 근원이며 또한 결실이 된다. 동방의 한민족은 예로부터 천지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받들었다. 이 천지부모의 이상과 꿈을 이루는 우주의 주인공, 그 인간의 위격이 바로 태일太一인 것이다.


천지가 합덕해서 낳은 인간 속에 삼신 하느님의 신성과 그 거룩한 대조화가 그대로 들어와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으며 천지 질서를 다스려 삼신하느님의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을 천지보다 더 존귀하게 여겨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정의하는 이유이다. (안경전 종정님)


얼마 전 STB상생방송 역사특강 프로그램에서 이형구 문화재위원은 한 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이형구


이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뭐하는 모습 같아요? 인류가 얼마나 많은 긴 시간을…, 수백 만 년인지도 모르죠. 수백 만 년을 저렇게 손으로 물을 떠먹었어요. 이 컵이 나올 때까지 그릇이 나올 때까지 수백만 년이 걸린 거예요….(이형구 문화재위원)


그는 오랜 역사과정에서 마침내 인류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을 감격해 했다. 한평생을 고고학 연구에 바쳐온 노학자의 감회는 결코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긴 여운을 남겼다. 그것은 우주의 역사과정에서 인류가 마침내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와 근원에 대해 각성하게 된 과정과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천단을 쌓아 제를 올리고, 신교의 가르침을 받아내려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쌓아온 인류의 발자취에서 참으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조물주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안운산 종도사님께서는 “이 대우주 천체권은 사람농사를 짓기 위해서 생겨져 있는 것이다”라 하셨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 인간의 의미, 내 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우치게 해주시는 말씀이다. 기나긴 우주역사과정의 결실로써 나 자신이 다시 인식될 때, 인간을 낳고 기르는 천지에 대한 경외심과 진리를 향한 구도심이 샘솟고, 삼신 상제님이 주재하시는 천지시간 중에 나는 어느 때에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이끗의 도구가 아닌 우주의 목적 그 자체인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상제문화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유물과 유적이 아닌, 인간의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상제문화를 찾아가는 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생의 목적을 찾는 여정과 결국 한 길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形於天地하여 生人하나니 萬物之中에 唯人이 最貴也니라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天地生人하여 用人하나니 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何可曰人生乎아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道典 2:23:1~4)


증산 상제님께서는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고 선언하셨다. 인간에 의해 마침내 우주의 역사가 성취됨을 의미하는 이 놀라운 말씀은 인간이 우주 속에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말씀해주신다.
그런데 그 태일과 상통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떠오른다. 구한말 꺼져가는 국운의 불씨를 다시 밝히려 했던 고종, 그가 천자국을 선포하며 내세웠던 국호 대한제국大韓帝國, 그 대한大韓의 의미가 바로 태일과 상통하고 있다.

 

태일, 대한大韓의 의미


‘대한大韓사람 대한大韓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의 마지막 소절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대한大韓의 한韓은 하나, 크다, 중앙, 하늘 등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韓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광명’사상이다.


‘한’의 뿌리는 바로 신교 삼신[조화신,교화신,치화신]의 광명정신이다. 광명은 우주 만물의 실상이요 본성으로서 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광명을 ‘환桓’이라 하고 땅의 광명을 ‘단檀’, 천지의 광명을 실현하는 역사의 주체를 ‘한韓’이라 했다. (『개벽 실제상황』, 안경전)


인간은 천지의 자녀이며 천지는 인간을 통해 하늘의 뜻을 이룬다. 바로 한韓은 그 주인공인 태일太一의 광명을 의미한다. 이러한 ‘한韓사상’을 계승한 민족, 그 천명을 받은 민족이 한민족인 것이다. 그런데 그 광명의 세상을 길이 보존하고 열어나갈 역사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냉정히 자문해보자.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서字書로, 고대의 백과사전 격인 『이아爾雅』에는 동방 한민족을 대평지인大平之人이라 말하고 있다. 최치원 선생은 대大는 곧 태太라고 주석하였는데, 이 태평지인이란 말에서 평화의 바다 태평양이란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민족이 태평지인太平之人의 나라, 불사지국不死之國,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仁方) 등으로 불리며 동방문화를 전수해준 주체였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도리어 과연 우리에게 그만한 문화 창조의 역량이 있었겠냐는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동방 문화의 연원을 왜곡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마저도 잃어버리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신교神敎와 상제문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역사를 지켜내지 못한 민족이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또한 현재가 과거 뿌리와 단절되어 제 정체성을 상실하였는데 어떻게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무엇보다 잃어버린 인류의 시원문화이자 우리 민족의 뿌리 문화인 신교문화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다행이 신교와 상제문화를 계승하며 역사적 존재로서 살아갔던 이들이 있었다. 6편에서는 상제문화의 수호자 낭가郎家와 낭가의 맥에 대한 이야기로 펼쳐가 보자.

 

<참고자료>
『도전』(도전편찬위원회), 『개벽 실제상황』(안경전), 「심성론」(증산도교육부), STB상생방송 〈역사특강〉시리즈,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인간등정의 발자취』(제이콥 브로노우스키), 그 외 여러 보도자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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