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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쟁' 하고 한편 됐다···이란·이라크 역설 뒤엔 '美 꿍꿍이'

2020.01.07 | 조회 1290


'8년전쟁' 하고 한편 됐다···이란·이라크 역설 뒤엔 '美 꿍꿍이'


중앙일보 2020-01-07 


미군의 공습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총사령관이 사망한 이후 이라크 내 반미 시위가 불붙고 있다. 5일(현지시간) 이라크 내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에서 시위대가 도심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타이어 더미에 불을 지른 뒤 양손으로 '승리'를 나타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일촉즉발 위기 상황 속에 이라크가 또다시 ‘중동의 화약고’로 급변하고 있다. 앞서 미군 기지와 미 대사관을 겨냥한 공격, 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제거 등이 모두 이라크 내에서 자행됐다. 이란이 직접 군사행동을 하는 대신 당분간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이 ‘대미 성전(지하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이라크의 복잡한 정파간 갈등, 그리고 때마다 등장했던 미국의 개입이 지금의 이라크 정세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미국이 키운 이라크 수니파
이라크 내 최대 종파는 시아파다. 미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시아파는 이라크 국민 중 64~69%를 차지한다. 시아파 4대 성지 가운데 2곳(카르발라·나자프)이 이라크에 있을 정도다. 이들의 주요 근거지는 수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이남 지역이다.

이에 반해 북부 제2의 도시인 모술을 근거지로 한 수니파는 29~34% 수준이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선 수니파가 오랜 기간 정치권력을 독점했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가 모술을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를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친수니파 국가로 만들어 방파제로 삼으면서부터다. 거꾸로 말해 시아파는 그만큼 핍박 받는 역사를 가진 셈이다.

물론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을 제외한 이라크 시아파와 수니파는 거의 대부분 아랍인이다. 페르시아인으로 불리는 이란과는 민족도 언어도 다르다.

1979년 2월 이란혁명은 이란, 이라크, 미국 세 나라에 역사적인 분기점이 됐다. 이란에선 시아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친미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집권했다. 이때 이란식 신정일치를 수호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혁명수비대다.

1979년 11월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이 시작되던 당시 성난 이란 청년들이 미 대사관 담을 넘고 있다. [중앙포토]

같은 해 7월엔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국경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던 중 후세인이 80년 9월 전면 선제공격에 나섰다.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접경 지역의 수로를 둘러싼 갈등이었지만, 이면에는 종파간 대립이 존재했다. 혁명으로 실권을 쥔 이란의 호메이니가 이라크 시아파에게 수니파 정권 전복을 공공연히 지시하자, 후세인이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적극 지원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는 84년 이라크와 국교를 회복하고 88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라크에 무기를 비롯한 막대한 군사원조를 했다. 특히 CIA는 전투 수행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건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세인 붕괴로 시아파 득세
후세인 정권의 부침은 이라크 내 시아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공격 타깃으로 삼았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이란을 지근거리에서 압박하던 수니파 정권이었다.

이들의 몰락은 자연스럽게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낳았다. 특히 이라크에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시아파가 정권을 거머쥐면서 친이란 색채가 강화됐다.

2003년 4월 6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110㎞ 거리에 위치한 카르발라 시민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2005년 과도정부 총리에 오른 이브라힘 알자파리는 대표적인 친이란계 이슬람 강경파였다. 의사 출신인 알자파리는 68년 시아파 정당인 다와당으로 정계 입문했지만, 후세인이 집권하면서 80년 이란으로 망명했다. 해외에서 반후세인 운동을 벌이다가 2003년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자 귀국해 시아파를 대표해 총리에 올랐다.

후임 총리인 누리 알말리키(2006~2014년), 하이다르 압바디(2014~2018년) 등도 역시 정통 시아파였다. 호메이니를 신봉하는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는 이란의 군사, 경제 지원을 받는 정치조직으로 역대 총리를 배출하고 있는 다와당에 이어 이라크 정계의 핵심 세력이다.


◇이란 도운 '아랍의봄'·'IS격퇴전'
변한 건 이라크뿐 아니다. 2011년 중동에 민주화 바람이 일면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이란에 또 다른 호재로 작용했다. 아랍 세계의 맹주이자 수니파인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자 이란의 지원을 받던 중동의 시아파들이 궐기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국민 다수는 시아파이지만 수니파 왕조가 다스리는 바레인에서도 같은 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배후로는 이란이 지목됐다.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은 이란에 날개를 달아줬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등지에서 준동하자 이란이 지원하는 각지의 시아파 민병대 조직이 IS 격퇴에 앞장서면서다. 솔레이마니가 이끄는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은 이런 민병대 조직을 지원하는 핵심 기관이었다.

‘시아파 초승달 지대’와 중동 내 미군 거점.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란은 이라크는 물론 시리아 아사드 정권,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한 레바논 내 시아파 세력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지대’를 형성할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중동 각지의 시아파 무장조직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이란 갈등이 고조되자 이란 호위의 첨병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미군기지를 공격하고 미 대사관 습격을 배후에서 조종했을 때에도 이란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통해 이란에 최후 통첩을 한 셈이다.


◇솔레이마니 사망에 수니파는 환호
시아파와 대립하는 수니파 이라크인들은 솔레이마니 사망에 환호했다. 솔레이마니는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개입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런 수니파 시민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면서 이번 작전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미국은 이번에 수니파 여론을 이용할 모양새다.

이라크 신정부 수립 이후 제대로 봉합되지 못한 종파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이라크의 혼란상은 가중되고 있다. 알카에다와 IS의 활거로 기반시설이 붕괴된 가운데 부흥의 실마리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각에선 이라크의 대혼란이 또 다른 이슬람 무장세력의 준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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