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반가사유상은 내 영감의 원천

2016.02.23 | 조회 1232


상생칼럼 | 미륵반가사유상은 내 영감의 원천

김택상 / 교무녹사장, 본부도장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9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세계의 불상佛像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기획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라는 제목 아래 인도의 불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의 미륵반가사유상 2점(국보 78호, 83호)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미륵이니라.”『도전』 2:66 하신 바, 나는 관심을 갖고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먼저 인도의 불상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불상들이 거의 다 머리에 큰 상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상투는 중국으로 이어지고 역시나 우리나라의 불상에서도 나타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상투를 튼 불상들은 우리나라에 불상이 수입되면서 만들어졌다고 여기겠지만, 오히려 상투는 인도불상들에서 더 확연하고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투는 상두上斗에서 온 말로 내가 하늘의 북두칠성과 항상 연결돼 있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있는 인류의 원형문화 생활양식이다. 이에 따르면 부처는 상투의 정신처럼 바로 하늘의 정신을 세상에 그대로 실현하고자 지극한 서원을 세우고 나서 이룩한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환단고기』에서 전하는 신교의 3도 중에서 바로 전도佺道(원형 불교)의 모습이다.

이번 기획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었다. 두 가지 미륵반가사유상은 다른 작품들과 급을 달리하는 무게감이 있었다. 작품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서 진한 울림이 전해왔다. 그것은 단지 제작기술의 우수성에 대한 놀라움에서만 온 것은 아니다. 두 분의 미륵부처님이 취하고 있는 자세와 표정은 보는 이에게 오묘한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압권은 두 손가락을 오른쪽 뺨에 대고 고요히 생각하는 자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서 무한한 영감을 느꼈으리라. 슬픈 듯하면서도 미소 짓고 있는 표정에서는 우주를 다 담을 수 있는 웅장한 심법과 함께 중생을 보듬어주는 세심하고 섬세한 마음도 느껴진다. 필자는 앞에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옆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올려다보고 하면서 그 자리를 차마 뜨지 못하였다. 세속을 벗어나 초탈해 있는가 하면 세상의 중심에서 치열히 노력하고 고뇌하는 모습도 보인다. 불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운은 나를 계속 사로잡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계속되는 여운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생각을 끊고 끊어서 무념무상의 상태에 나아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모든 번뇌와 망상,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의 경지에 이른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부처의 경지에 있으면서도 손을 뺨에 가져다 대고 골똘히 열중하고 있는 생각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생각이 마음의 평온함을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고요한 표정을 살펴보면 진정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 반가사유상의 생각이란 어떤 종류의 생각일까? 알 듯 모를 듯 쉽게 잡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평생을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당연히 잘된 생각도 있고 잘못된 생각도 있다. 과연 생각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려줄 사람이 있을까? 미륵반가사유상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일말의 답을 던져주는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을 초탈해서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매이지 않은 그런 경지에서의 완벽한 몰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집착이 아닌 집중執中을 보여주는 듯하다. 미륵불이신 상제님께서는 도전 8편 7장에서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느니라. 무엇을 하나 배워도 끝이 나도록 배워라.”라는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바로 이 경계를 반가사유상은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다 여성의 이미지를 가진 불상과 남성으로 보이는 불상이 나란히 전시되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참으로 장관이다. 두 불상은 그 모습이 대조적이면서도 한데 어우러져서 서로 옆에 있는 불상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옆에 있는 불상에 의해 더욱 빛나면서 또 상대편을 빛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파주 용미리 쌍미륵불상과 태인 매당 불출암의 쌍미륵불상을 연상시킨다. 파주 용미리 불상은 원립과 방립을 쓰고 있어서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나타내어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깨달음으로 조화를 이루며 대중들을 진리와 자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치 자애로우신 영적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대하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을 비운 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홀로 앉아 자족自足한 모습을 보이는 부처님보다도 부부의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을 품에 안고 이끌어주는 듯한 두 분의 부처님은 훨씬 더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성聖과 속俗이 합일하여 완전히 만개한 한 떨기 진리의 꽃을 바라보는 것 같다. 내 안의 풀리지 않는 숱한 문제들을 내려놓고 깨끗이 해결할 수 있는 거대한 진리의 바다를 마주하는 것 같아 경이롭다. 그대로 쏙 빼닮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것은 참으로 싫증이 나지 않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이것은 상제님께서 태모 고수부님께 종통대권을 전수하시며 “그대와 나의 합덕으로 삼계를 개조하느니라.”(도전 6편 42장)하신 말씀과 연결이 된다. 우주를 품에 안고 우주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조화로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미륵불이 출현하고 나서야 이 세상이 깨달음으로 충만한 낙원의 세계로 화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그동안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졌고 수많은 사상가들이 활동해 왔는데, 왜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셔야만 진리가 현실속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미륵부처님만이 가지신 조화권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가르침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그것을 바로 이 반가사유상은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가르침은 부분적이고 편향적이면서 결과적으로 현실적용에 있어 온전히 부합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현실속의 인간이 자기실현을 이루는데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륵불의 가르침은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이다. 인간을 어떤 규율로 얽어매거나 다른 세계로 데려가려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을 해방시키고 성공시킨다. 

상제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경지를 ‘중통인의中通人義’라고 하셨다. “내가 비로소 인의를 통하였노라.” 인간이 갈 수 있는 궁극의 경계, 인간 가능성의 온전한 실현. 이것을 이루신 것이다. 미륵반가사유상은 바로 그러한 온전한 깨달음 위에서 삼계우주를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불의 슬픈 듯 기쁜 듯한 표정과 웅장한 듯 섬세한 그 자태는 나에게 화두처럼 던져졌다. 그것은 내가 가야할 이상적인 모습으로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삶에 자극이 되고 수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리라는 믿음이 샘솟는다. 이러한 미륵부처님의 참되고 무궁한 지혜의 마음이 세상에 널리 퍼져 후천선경인 용화세계 건설에 참여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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