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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치사율, 한 자리 숫자일 듯 (동아사이언스)

2015.06.02 | 조회 7308


메르스 치사율, 한 자리 숫자일 듯


2015년 06월 01일 15:30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에 대해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이유는 증세가 워낙 미미해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재스퍼 챈, 홍콩대 미생물학자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SF 재난영화의 도입부로도 손색이 없을만한 경악할 일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미국의 군연구소에서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 시료를 13개 기관에 보냈는데, 그 가운데 한 곳이 우리나라 오산공군기지였던 것. 생물전(戰) 대비 훈련용으로 비활성 상태인 균 시료를 받은 줄 알았던 주한미군 당국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부랴부랴 시료를 폐기했다고 한다. 다행히 노출된 22명 모두 감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지금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메르스(MERS), 즉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다. 환자를 간병한 딸이 감염이 걱정돼 격리를 자청했지만 의료진이 거부해 별 수 없이 귀가했다가 발병해 실려오는가 하면, 환자 접촉을 숨기고 중국으로 출장간 사람이 현지에서 발병해 12년 전 사스(SARS, 증증호흡기증후군)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성토하고 있다고 한다.

 

사스나 - CDC 제공


사스나 - CDC 제공

메르스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킨다. 1960년대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표면 단백질이 돌출돼 있는 모습이 왕관(corona)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주로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을 일으키지만 최근 사스와 메르스의 원인 바이러스로 밝혀지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제공



사스나 메르스 둘 다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가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이다. 치명적인 출혈열을 일으키는 에볼라바이러스와는 달리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 대다수가 몇 차례 감염됐을 흔한 바이러스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감기는 인플루엔자(독감)나 에볼라처럼 특정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이 아니라 경증호흡기 질환에 붙인 일반명이다. 라이노바이러스(rhinovirus)가 감기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바이러스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도 15%쯤 차지한다.

 

앞에 인용구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기도 며칠이면 지나가기 때문에 의료계나 제약업계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2년 11월에서 2003년 7월 사이 사스 환자 8096명이 보고됐고, 이 가운데 774명이 사망했다(치사율 9.6%). 그리고 2004년 사스바이러스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사스 발생 10년만인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심각한 호흡기질환 환자들이 보고됐고 조사결과 또 다른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메르스로 명명된 이 질환은 2014년 봄 환자수가 급증하면서 ‘제2의 사스’로 발전했다. 2014년 3월까지 2년 여 동안 200명이 채 안 되는 환자가 발생했는데, 2014년 4월에만 300명이 넘는 환자가 보고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6월 들어 수그러들었지만 지금도 중동지역에서는 매달 수명에서 수십 명의 환자가 보고되고 있다. 지금까지 환자 1170여명이 보고됐고 사망자도 400여명에 이르는데, 약 90%가 사우디아라비아사람들이다.

 

중동을 다녀온 사람을 통해 치사율이 40%에 이른다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고 초기 대응미숙으로 벌써 감염자가 18명이나 생겼다. 게다가 메르스는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없다고 하니 감염자가 더 늘어날 경우 사람들의 불안이 패닉으로 발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메르스의 치사율이 이 정도로 높은 건 아니고 과학자들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손놓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초기 대응 실패는 되돌릴 수 없지만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의 글귀처럼,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공포로 이성을 잃지 않는다면 이번 위기도 차분하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메르스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정리해본다.    

 

● 20년 전 낙타 혈액에도 항체 있어

 

학술지 ‘사이언스’ 3월 20일자에는 2015년 봄을 맞아 중동지역에서 메르스 환자가 반짝 증가하는 현상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지난해 12월 신규환자가 여덟 명이었는데 올해 들어 1월에 33명, 2월에 68명, 3월 17일 현재 30명이 발생했다는 것. 기사에는 2013년 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월별 환자발생수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실렸는데 ‘빙산의 일각(tip of the iceberg)’이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2_메르스 환자 월별 발생현황. 2012년 처음 환자가 보고된 뒤 매달 십여 명 발병되다 지난해 4월과 5월 환자가 급증하면서 ‘제2의 사스’가 됐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인 1만여 명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15개 시료에서 항체양성반응이 나와 실제 감염자는 그래프 수치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ECDC 제공

2_메르스 환자 월별 발생현황. 2012년 처음 환자가 보고된 뒤 매달 십여 명 발병되다 지난해 4월과 5월 환자가 급증하면서 ‘제2의 사스’가 됐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인 1만여 명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15개 시료에서 항체양성반응이 나와 실제 감염자는 그래프 수치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ECDC 제공

메르스 환자 월별 발생현황. 2012년 처음 환자가 보고된 뒤 매달 십여 명 발병되다 지난해 4월과 5월 환자가 급증하면서 ‘제2의 사스’가 됐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인 1만여 명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15개 시료에서 항체양성반응이 나와 실제 감염자는 그래프 수치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 제공



기사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보건부 장관이었던 지아드 메미시와 독일 본 대학의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교수가 이끄는 연구자들이 2012~13년 채취한 사우디아라비아사람 1만 여명의 혈액(대표 견본)을 조사한 결과 15명에서 메르스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양성반응인 사람 대다수는 시골에 살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인구가 2700만 여명이므로 4만 명 이상이(지난 2~3년 사이 추가로 감염된 사람이 꽤 있었을 것이므로) 메르스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다고 추측된다.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고된 환자수가 930여명이므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다.

 

드로스텐 교수는 메르스의 치사율이 현재 추정치인 40%보다 훨씬 낮아 “한 자리 숫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감염자의 다수는 증상이 없거나 그냥 감기몸살로 알고 지나갔을 거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차 감염자인 68세 남성과 2차 감염자 두 명이 호흡곤란 등 상태가 안 좋지만 나머지 환자들은 감기증상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르스는 낙타에서 사람으로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혈액 조사 시료 1만 여 개 가운데 140개가 낙타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것인데, 이 가운데 5개에서 항체가 검출돼 평균보다 23배나 높았다. 사람에게서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인간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부르듯이 메르스바이러스는 낙타코로나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동의 낙타 혈액을 조사한 결과 4분의 3에서 항체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낙타 혈액 시료 가운데는 20여 년 전 채혈된 것도 있어서 메르스바이러스가 적어도 20년 전 낙타에 퍼졌다는 말이다. 메르스바이러스는 박쥐 코로나바이러스와 게놈서열이 비슷해 결국 낙타도 박쥐에서서 바이러스를 전수받는 것으로 보인다. 낙타는 메르스바이러스에 감염되도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정도에서 그친다. 낙타의 감기인 셈이다.

 

● 증상이 없는 보균자가 전염시킨 사례 없어

 

그런데 이 녀석이 어쩌다 사람에 감염되면 상당한 비율에서 중증의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다행히 메르스바이러스는 낙타에서와는 달리 사람에서는 전파력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플루엔자 같은 팬데믹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이다.

 

이런 전파력의 차이는 감염부위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낙타에서는 코나 목 같은 상기도에 감염하기 때문에 콧물에 바이러스가 고농도로 포함돼 있어 주변으로 감염되기 쉽지만 사람에서는 하기도(기관, 기관지)에 머무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낮다. 즉 메르스바이러스는 낙타라는 숙주에 최적화된 바이러스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첫 번째 감염자인 68세 남성은 어떻게 옆에서 간호를 한 가족은 물론이고 잠깐잠깐 들러 진료를 한 의료진까지 17명을 감염시킬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람을 수퍼전파자(super-spreader)라고 부른다. 즉 체액에 바이러스가 유달리 고농도로 존재하고 가래 같은 분비액도 많아 주변 사람들에게 감염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이런 동물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얼마나 전파력을 띨 수 있는가는 수퍼전파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가 주요 변수일 것이다. 930여명의 메르스 환자가 보고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도 낙타에서 직접 옮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 상태가 나빠져 병원으로 들어온 수퍼전파자를 통해 옮은 2차 감염자들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2차 감염자를 통한 3차 감염자 확진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4월과 5월 환자가 급증하면서 허술했던 병원의 위생관리를 강화하자 2차 감염자도 급감했다.

 

사실 수퍼전파자는 다른 많은 전염병에서도 병을 퍼뜨리는 주인공이다. 2002~2003년 사스에서도 수퍼전파자의 역할이 눈에 띠었다. 중국 광둥성에서 사스 환자를 진료하던 의사가 친지 결혼식 참석차 홍콩에 가서 메트로폴 호텔 9층에 묵었는데 같은 층에 있던 16명이 감염됐고 이들 가운데 다수가 외국인이라 제 나라로 돌아가 병을 퍼뜨렸다. 싱가포르에서는 심혈관질환으로 입원한 54세 남성이 사스에 감염된 뒤 33명에게 감염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2002~2003년 사스 사태 때 홍콩 메트로폴 호텔에 묵었던 한 수퍼전파자가 같은 층에 있던 16명을 집단감염시켰다. 당시 호텔의 배치도로 녹색이 수퍼전파자가 묵은 방이고 파란색이 감염된 사람들이 있던 방이다. 빨간색이 바이러스가 검출된 구역이다. - EIDJ 제공

 

2002~2003년 사스 사태 때 홍콩 메트로폴 호텔에 묵었던 한 수퍼전파자가 같은 층에 있던 16명을 집단감염시켰다. 당시 호텔의 배치도로 녹색이 수퍼전파자가 묵은 방이고 파란색이 감염된 사람들이 있던 방이다. 빨간색이 바이러스가 검출된 구역이다. - EIDJ 제공


2002~2003년 사스 사태 때 홍콩 메트로폴 호텔에 묵었던 한 수퍼전파자가 같은 층에 있던 16명을 집단감염시켰다. 당시 호텔의 배치도로 녹색이 수퍼전파자가 묵은 방이고 파란색이 감염된 사람들이 있던 방이다. 빨간색이 바이러스가 검출된 구역이다. - 신종감염병저널(EIDJ) 제공

학계에서는 많은 전염병에서 ‘20/80 법칙’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즉 20%의 환자가 적어도 전염의 80%를 일으킨다는 임상관찰을 토대로 한 추측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수퍼감염자가 되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쾌한 대답은 없지만 몇 가지 추측이 있다. 즉 수퍼전파자는 증상이 좀 다르거나 다른 질병이 있는 경우가 있다. 또 체액 분비가 많고 체액 내 바이러스 수치가 높다. 예를 들어 사스의 경우 수퍼전파자들의 코에서는 콧물이 줄줄 흘렀다고 한다. 요도염이 있는 HIV(에이즈바이러스) 보균자는 그렇지 않은 보균자에 비해 요도에서 검출되는 바이러스의 농도가 8배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환경도 주요한 요인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위생 상태가 안 좋으면 본의 아니게 수퍼감염자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메르스 1차 감염자의 높은 전파력에도 환경요인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 변이 가능성은 낮아


조류인플루엔자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동물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바이러스로 바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즉 메르스바이러스가 사람에서도 높은 전파력을 띠게 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럴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세포생물들은 게놈이 DNA이중가닥으로 이뤄져 있지만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선에 있는 바이러스는 게놈유형이 다섯 가지나 된다. 즉 세포생물과 마찬가지로 DNA이중가닥으로 된 녀석들도 있지만 DNA단일가닥인 바이러스도 있다. DNA 대신 RNA를 게놈으로 쓰는 바이러스는 세 유형으로 나뉘는데 RNA이중가닥, RNA단일가닥(+), RNA단일가닥(-)이다. 플러스는 게놈이 곧 전령RNA라는 뜻이고, 마이너스는 전령RNA의 상보적인 염기서열이란 뜻이다.

 

DNA 게놈 바이러스에 비해 RNA 게놈 바이러스의 경우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DNA가 안정한 분자인데 비해 RNA는 구조가 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변이가 심한 것으로 유명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나 에이즈바이러스도 다 RNA 바이러스다.

 

코로나바이러스도 RNA 바이러스이지만(양성가닥) 다행히 안전장치가 있다. 즉 코로나바이러스는 RNA가 복제될 때 일어나는 오류를 수정하는 효소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혼자 작업하는 블로거라면, 코로나바이러스는 교정보는 직원 한 명을 둔 군소 잡지사 정도는 되는 셈이다. 따라서 메르스바이러스가 인간코로나바이러스로 바뀔 가능성은 낮지만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 배양세포에서는 바이러스 증식 억제

 

설사 이번 메르스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된다고 해도 메르스는 잠재 위협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목민의 영원한 친구인 낙타를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낙타에게서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일을 100%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동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언제 어떻게 메르스바이러스가 전파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이 이에 대처하는 방안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백신개발이다. 이 경우 사람이 아니라 낙타를 대상으로 한 백신인데, 기사에 따르면 현재 두 가지가 만들어졌고 각각 낙타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설사 백신 연구가 성공한다고 해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현지에서 낙타들에게 제대로 접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현지인들이 멀쩡한 낙타에 백신을 맞히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메르스 치료제 개발이다. 영국왕립약학회에서 발행하는 ‘약학저널’ 2014년 10월 20일자에는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 치료 전략 연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2002년 사스가 터지면서 반짝 연구가 진행됐지만 2004년 사스바이러스가 자취를 감추면서 연구동력을 잃어 그 뒤 지지부진해졌다. 그런데 2012년 메르스가 등장하면서 다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기존에 나와 있는 약물 가운데 치료제를 찾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사스처럼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르는 질병을 두고 비용이 엄청나게 들고 시간도 10년은 걸릴 신약개발을 시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연구자들은 메르스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물 348종을 적용한 결과 이 가운데 클로로퀸(chloroquine), 클로프로마진(chlorpromazine), 로페라미드(loperamide), 로피나비르(lopinavir) 등 4종이 증식 억제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결과를 지난해 학술지 ‘항미생제 화학치료’에 발표했다. 

 

클로로퀸은 항말라리아약이고 클로프로마진은 항정신병약이다. 로페라미드는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이고 로피나비르는 에이즈 치료제다. ‘연구 한 번 주먹구구식으로 한다’고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AZT는 이보다 더했다(실패한 항암제를 재활용한 것이므로).

 

흥미롭게도 로피나비르의 경우 사스 환자를 치료하는데 적용된 적이 있다. 즉 입원 환자 41명에게 로피나비르를 투여한 결과 사망자가 없었고 호흡곤란을 보인 환자도 한 명에 불과했다. 반면 대조군 111명 가운데 7명이 사망했고 호흡곤란을 보인 사람도 25명이나 됐다.

 

에이즈바이러스를 타깃으로 한 약물이 어떻게 코로나바이러스에도 듣는가 의아할 것이다. 로피나비르는 단백질분해효소의 억제제다. HIV가 증식할 때 구조단백질 전구체가 단백질분해효소의 작용으로 구조단백질로 바뀌어야 바이러스입자가 조립되는데 로피나비르가 효소에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서도 비슷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메르스 환자를 대상으로도 약물치료가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즉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효과를 보인, 선천면역계의 요소인 인터페론-α2b와 C형간염 치료제인 리바비린(ribavirin) 복합처방을 환자 다섯 명에게 실시했지만 모두 사망했다. 하지만 당시 환자들은 입원 2주 이상이 지난 중증의 상태였기 때문에 이 치료법이 효과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아무튼 사스가 터졌을 때 좀 더 연구를 계속했다면 지금쯤 메르스 치료법이 확립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볼라도 그렇고 메르스 역시 대단히 위험한 질병이지만 현대의학이 지니고 있는 여러 옵션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이번 사태가 무난히 지난간 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바로 잊어버리지 말고 우리 과학자들도 메르스 치료법 개발에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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