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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팬데믹’에서 배운다

2011.01.07 | 조회 4540

1918년 가을, 스페인독감은 일시에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차대전 4년 동안 숨진 900만명보다 한달 남짓 동안의 독감 사망자가 5배 이상 많았다.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전지구적 대유행)의 대명사로 불리는 20세기 최대의 바이러스 참사였다. 스페인독감은 그해 8월 말 미국 보스턴의 한 해군 병사에게서 시작해 군용열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덮쳤고, 1차대전에 참전한 군함에 실려 유럽 전체로 전파됐다.

위생이 취약한 아시아 국가들의 희생이 가장 커, 인도에서만 1700만명이 죽었다. 시베리아 철도와 만주 하얼빈역을 거쳐 9월 말 식민지 조선 땅에도 바이러스가 유입됐다. 당시 <매일신보>는 1600만 인구 중 740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14만명이 숨진 것으로 보도했다. 그리스어인 팬데믹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사람’을 뜻하는 ‘demic’의 합성어. ‘모든 사람이 감염된’ 가장 최근의 팬데믹은 지난해의 신종플루였다.

구제역으로 오염됐고, 닭·오리 농장이 밀집해 있는 남서지역은 조류인플루엔자(AI)의 공격을 받았다. 구제역으로 생매장당한 소·돼지가 지금까지 모두 77만8850마리. 3일 하루에만 10만마리가 땅에 묻히는 참상이 벌어졌다. 가축 보상비와 방역비를 합친 직접적인 구제역 관련 지출이 8000억원에 육박했고, 1조원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간접손실까지 고려한 가축 바이러스의 사회적 비용은 돈으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구제역은 후진국병이라는데, G20에 속한 대한민국이 왜 이런 참사를 겪어야 하나? 나머지 G19의 선진국들은 다 멀쩡한데, 자연이 내린 재앙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결국 좁은 우리, 너무 많은 가축, 밀식사육, 항생제, 분뇨와 범벅된 축사 등등이 문제를 풀어가는 열쇳말이다. 한마리라도 더 많이 기르고, 병에 약한 환경을 방치하고, 방역에 무신경하고, 분뇨를 바다에 투기하는 대한민국 축산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발상의 대전환 말고는 길이 없어 보인다. 가축 사육 총량을 줄이는 것이 시작이다. 집집마다 소를 기르고, 농가와 돼지 축사가 마을마다 공존해서는 팬데믹의 위험을 분산할 수가 없다.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소와 돼지·닭 사육을 줄여야 한다. 우리처럼 땅이 좁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일찌감치 가축의 머릿수를 제한하는 총량제를 시행하고 있다.

동물복지가 안전한 축산물의 필수요건인 세상이 됐다. 유럽연합은 2006년부터 돼지의 사육과 운송·도축·매몰처분의 최저 복지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산란계(달걀 낳는 닭)의 닭장 사육을 금지하고, 2013년부터는 모돈(새끼 낳는 돼지)을 좁은 쇠울타리에 가두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창녕 우포의 한 농가가 돼지 분뇨를 곧바로 축사에서 빼내는 시설을 구축해 큰 재미를 보고 있다. 건강해진 어미돼지의 출산율이 한해 15마리에서 23마리로 늘어나면서, 수익성까지 크게 높아진 것이다.

20세기 초의 스페인독감이 열차와 군함을 이용한 바이러스였다면, 사람과 상품 교역이 무한정 자유로운 21세기의 전염병은 ‘비행기 바이러스’다. 그만큼 막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당연히 가축 바이러스를 국가위험관리의 주요 대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 농부에 대한 신뢰의 힘은 이미 한우 사랑에서 확인됐다.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생산한 고기라면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제값을 치를 것이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축산, 판을 확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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