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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융악마’ 정체를 알려주마

2011.10.20 | 조회 3789

2011.10.19 15:14:19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금융자본에 대한 반발이다. 30여 년간
지속된 금융자본주의는 1%를 위해 99%를 밑바닥으로 내몰았다.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계급 전쟁’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의 행보를 요약하면 ‘1보 후퇴, 2보 전진’이다. 부인할 수 없는 과오로 잠시 숨 죽였던 금융자본은 2009년 중반 이후 다시 선진국 정부들을 무릎 꿇려 ‘재정긴축’을 세계적 의제로 부상시켰다. 이에 따라 장기불황이나 공황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가기관도 대적하지 못한 금융자본을 대중이 정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세계 금융자본의 본부라고 할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핵심부에서. 이 반란자들의 슬로건은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이다.

이 운동의 진원지는 캐나다의 급진주의 매체 <애드버스터(Adbusters)>다. 애드버스터는 지난 9월 초 발간한 97호에 ‘월스트리트 점령’이라는 자체 광고를 실었다(아래 사진). 9월17일, 초대형 금융기관이 밀집한 뉴욕 시 맨해튼 남부 지역에 모여 텐트와 바리케이드로 ‘평화 점거’를 벌이자는 내용. 애드버스터 측은 이집트 혁명을 격발한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동의 봄’을 ‘미국의 가을’로 전이시키려는 시도다.




9월17일, 150명 정도가 참여한 ‘월스트리트 점령’은 20여 일이 흐른 10월 초에는 1만~2만명 규모의 대형 시위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국의 주요 도시로 확산 중이다. 요구 사항도 처음에는 ‘돈과 정치를 분리시키라’는 극히 추상적인 내용에서 로비스트 규제, 금융기관 겸업 해체 등 구체적 의제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주적은 미국의 정치·경제를 장악한 ‘1%’의 금융자본이다. “우리 99%는 너희 1%의 탐욕과 부패를 더 이상 인내하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초래한 1% ‘원흉’


이 1%는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월스트리트에 본사를 둔 초국적 거대 금융복합체를 가리킨다. 세계경제위기의 주범인 금융복합체는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수조 달러의 구제금융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긴축’으로 복지 제도를 축소하고 부자 감세를 시행하라고 선동해왔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대드는 격이다. 공화당과 티파티 같은 극우 단체가 이들의 혈맹이다.

금융복합체는 긴축의 명분으로 재정건전성이나 ‘민간경제 살리기’ 등 허울 좋은 경제이론들을 내건다. 그러나 긴축은 전적으로 금융자본을 위한 조치다.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경우, 물가 인상과 함께 통화가치가 떨어져, 금융자본은 앉아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자본과 시민의 이익이 상반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1% 대 99%의 전선(戰線)이 그어졌다.

이런 금융복합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일본·독일 등에게 잠식된 1980년대 중반부터다. 미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채택한 것이 바로 금융산업이었던 것. 이에 따라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금융기관을 대형화·겸업화하고 각종 규제를 허무는 작업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인수합병의 광풍이 불었다.

1999년 클린턴 정부는 대공황 이후 지켜왔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장벽을 허문다. 이른바 겸업화다(32쪽 딸린 기사 참조). 이를 주도한 인물이 골드만삭스 출신인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과 래리 서머스 차관, 그리고 필 그램 상원의원이다. 그리고 루빈은 금융계로 돌아가 씨티그룹 회장이 된다. 서머스와 그램은 2000년 금융현대화법 제정을 주도해 파생 금융상품 시장에서 대부분의 규제를 제거한다. 이후 그램은 헤지펀드의 컨설턴트가 되어 매년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서머스는 재무장관과 하버드 대학 총장을 거쳤다. 이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금융기관 대마불사’와 ‘파생상품 탈규제’의 원흉이다.

이런 조치에 힘입어 2000년대 미국에는 직원 수만명, 자본금 100억 달러 정도에 은행업(상업은행)과 증권업(투자은행)을 넘나들며 1조 달러 정도를 운영하는, 괴물 같은 금융복합체가 5개 등장한다. 골드만삭스·리먼브러더스·메릴린치·모건스탠리·씨티그룹이다.


ⓒReuter=Newsis
2008년 12월31일 서브프라임 사태로 집을 잃고 쫓겨난 소녀가 인형을 챙기고 있다.



그런데 한 금융기관이 1조 달러 정도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뜻한다. 다른 나라 금융상품(주식이나 채권)의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 있다. 세계 11~13위 경제 규모인 한국의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이 2010년 10월 현재 1조 달러 정도다. OECD 국가 중 폴란드, 체코 등은 그 절반 정도다. 한국 금융시장은 외국 투자자들이 10억 달러 정도만 빼내 가도 출렁거린다. 매집해서 가격을 올렸다가 빼가면 그만이다. 말하자면 거대 금융기관은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시장 지배자’이다. 전 세계 금융기관의 목표인 대형화의 진정한 노림수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시장지배력 획득인 것이다.


월스트리트가 강요한 삼중고


그런데 자본금 100억 달러 정도인 미국 투자은행들이 1조 달러를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규제 완화이다. 어느 나라나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자본금보다 지나치게 많은 부채를 가지지 않도록 규제한다(레버리지 규제). 그런데 미국은 2000년대에 극히 과격한 조치를 취한다. 골드만삭스 등 5대 투자은행에 대해서는 레버리지 규제를 사실상 면제해준 것이다. 2004년 골드만삭스 CEO였던 헨리 폴슨의 강력한 로비에 따라 이뤄진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헨리 폴슨은 2006년 재무장관이 된다.

이런 조치를 통해 미국 금융자본은 엄청나게 돈을 빌려 극히 위험한 상품을 만들고 이에 투자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왔다. 금융위기 직전에는 미국 기업 전체 수익 중 40% 이상이 금융 부문에서 나오는 경이로운 성과를 거뒀다. 세계 각국의 꿈은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첨단 서비스인 금융산업을 집중 육성해 지역 금융허브로 등극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금융산업이 주도하는 경제는 부유층에게는 유리하지만 노동자·서민에게는 굉장히 불리하다. 이 시스템 하에서 기업은 더 이상 생산 및 고용의 거점이 아니다. 단지 ‘금융 투자의 대상’일 뿐이다. 월스트리트는 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집해 경영권을 획득한 뒤 구조조정으로 주가를 올려서 되팔아 높은 수익을 챙겼다. 이런 방식이 경제 전체에 확산되면서 기업 경영의 최대 목표는 ‘주가 올리기’가 된다. 주가가 떨어지면 다른 기업에 합병당하고 경영자의 목이 잘릴 것이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기술을 개발하거나 노동자의 숙련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과도한(?) 기술투자를 했다가는 ‘미래 현금흐름이 불확실해졌다’며 주가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부가 집중 지원한 방위산업 및 IT 부문을 제외한 다른 제조업 부문의 경쟁력은 대체로 하향 곡선을 그어 동아시아와 유럽에 뒤처지게 된다. 한때 세계를 기술력으로 압도했던 GE나 GM은 제조업이 아니라 인수합병이나 금융 자회사로부터 대부분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


로비스트 3000명, 개혁 법안 막아

또한 노동자는 가급적 해고하는 편이 주가 올리기에 도움이 된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을 강행할 수 있겠는가. 이에 따라 노동권은 약화되고 일자리는 불안해진다. 임금 수준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떨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렇게 대중이 빈곤해져 유효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 경제는 어떻게 지탱해 왔을까. 역시 금융 부문에서 해법이 나왔다. 시민에게 대규모의 소비 대출을 실시한 것이다. 예컨대 씨티그룹은 ‘부유하게 사세요(Live Richly)’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부동산 담보 대출에 주력했다. 광고비로만 1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렇게 빌린 돈을 미국인은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 2000년대 중반 부동산 버블의 정체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시민은 일자리는 없고, 투자한 돈은 잃고, 상환 독촉에 시달리는 삼중고를 겪어왔다.

이런 금융위기 이후 집권한 오바마 정권에게 금융개혁은 역사적 소명이었을 터이다. 선거운동 기간 급진적 금융개혁을 공약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한 금융 규제안으로 불리는 도드-프랭크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지난 6월 <가디언> 기사에 따르면, 이 법안에 명시된 380개 규제조항 중 명확한 시행 방침이 확립된 것은 30개에 불과하다. 금융자본의 강력한 로비 때문이다. 미국 금융기관이 이 법안 발효 이후 의회에 투입한 로비스트는 무려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의원 1인당 로비스트 5명이 달라붙은 것이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에는 금융위기 주범이 많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투자은행들의 사실상 대변인인 뉴욕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총재 출신이다. 래리 서머스는 금융기관 비대화와 탈규제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월스트리트의 1등 공신이다. 이런 서머스가 오바마의 수석 경제 자문위원으로 월스트리트 개혁을 지휘했다. 레버리지 규제 철폐를 관철한 헨리 폴슨 골드만삭스 전 CEO는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오바마 경제팀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대중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것은, 금융기관의 범죄와 모럴 해저드였다. 골드만삭스는 내부 이메일에서 ‘쓰레기’라고 부른 위험한 파생상품을 ‘수익성 높다’고 선전하며 내다 팔았다. 그러면서 이 파생상품 가격이 떨어질수록 큰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한 것이 밝혀졌다. 이 밖에 뇌물, 분식회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범죄가 적발되었으나 기소된 금융인은 극히 드물다.


ⓒReuter=Newsis
2008년 10월6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지수가 1만 이하로 떨어지자 한 직원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



더욱이 월스트리트는 자신들의 이익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여줬다. 메릴린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인 2008년 12월 임직원에게 36억 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지급했다. 이 회사의 스탠리 오닐 회장은 1억6000만 달러의 퇴직금을 챙겼다. 최근 다시 부도 위기에 처한 모건스탠리는 2009년만 해도 직원에게 100억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책정했다. 민주당이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업의 보너스에 중과세하는 법안을 제출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서민들이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도 그렇게 만든 ‘원흉’은 승승장구한 셈이다. 이런 와중에 시민들의 일방적 내핍을 강요하는 재정긴축 압력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신세대가 주도하는 계급 전쟁 움직임

작가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가디언>(9월25일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금 신세대는 교육을 모두 이수한 뒤에 직업을 갖기는커녕 엄청난 규모의 부채를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다. 사회는 이런 신세대를 패배자나 무뢰한으로 간주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신세대의 도전적 자기주장이 ‘월스트리트 점령’이라는 것.

‘월스트리트 점령’은 금융자본이 훼손하고 있는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반발이란 면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이기도 하다. 일차적으로 공격당할 정치세력은, 그동안 금융자본을 대변해 강력한 긴축 드라이브를 추진해온 공화당이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금융자본의 비대화를 추진해왔고 금융개혁에 실패했다는 면에서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가 ‘월스트리트 점령’의 에너지를 부자 증세와 건강보험 개혁 등에 성공적으로 활용한다면 민주당에 호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0여 년 명맥을 이어온 금융자본주의가 한 일은 결국 1%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99%를 사회의 바닥으로 내몰아 ‘계급화’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계층 간 갈등이 좀처럼 표출되지 않았던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계급 전쟁’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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