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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 충돌 미국과 중국, 이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

2015.11.14 | 조회 5603

'바닷길' 충돌 미국과 중국, 이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


2015-11-10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중국은 북한처럼 노골적으로 미국의 세계패권에 도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미 핵문제 같은 사안에서는 미국의 패권을 존중하는 듯하지만, 이번 난사군도(남사군도) 분쟁처럼 국익이 직접적으로 걸린 사안에서는 미국에 대한 대결도 불사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중에서도 필리핀 및 브루나이와 인접한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에 인공섬을 설치하고 영유권을 주장하자, 미국은 인공섬의 12해리 이내를 침범함으로써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평소 미국에 정중하던 중국은 이럴 때 고개를 빳빳이 들곤 한다.  


해양 영유권을 놓고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현상은 국제법이나 국제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이것은 지난 5백년간 이어져 온 서양인들의 바닷길 지배권과 관련된 역사적 변화를 담고 있다. 


우리는 콜럼부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의 역사적 업적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지구상의 바닷길이 하나로 통합되는 데 기여했다.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 이들이 활약하기 전만 해도, 서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바닷길은 지중해를 통과해 중동아시아로 가는 루트뿐이었다. 16세기 이전에는 유라시아대륙의 경제적 번영지가 동유럽·중동아시아·동아시아였기 때문에 서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와 교류하지 않고는 발전을 도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유럽인들은 기존의 바닷길을 통한 아시아와의 교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지중해 바닷길에서 이익을 얻은 것은 서유럽과 아시아를 중개하는 이탈리아와 이슬람 세력이었다. 그래서 서유럽은 아시아로 가는 바닷길을 활용할 수 없었다. 15세기 후반에 그들이 미친 척하고 대서양을 횡단한 것은 그렇게라도 모험을 하지 않으면 바닷길을 활용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닷길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해서 육로를 잘 활용했던 것도 아니다. 유라시아대륙 최대의 육로였던 비단길은 중국·이슬람·이탈리아 등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중동에서 중국까지 사막을 통해 이어진 비단길은 15세기 이전에는 바닷길보다 더 활발하게 이용된 무역로였다. 이 길에서 멀리 떨어진 서유럽은 이탈리아나 이슬람 혹은 러시아의 중개를 거쳐야만 이 길을 통한 세계적 교역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유럽은 이래저래 아시아와의 직접 교역이 쉽지 않았다. 



▲  역사에 등장한 유라시아대륙 3대 무역로. 초원길·비단길·바닷길의 순서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 김종성


서유럽, 근대까지 아시아에 의존했다


"아니,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서유럽이 역사를 주도한 것처럼 나오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인들이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1945년 이후 동아시아 해양지역이 미국의 지배 혹은 통제 하에 들어가면서, 동아시아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미국의 조상인 서유럽의 위상이 과도하게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다. 


이 점은 저명한 서양인 경제학자들에 의해서도 강조되고 있다. <간결한 세계 경제사>의 공동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론도 캐머런과 래리 닐은 11세기 이탈리아의 경제적 위상을 언급하면서 "이탈리아 도시는 이와 같이 보다 부유하고 진보된 동방과 보다 빈곤하고 낙후된 서방을 연결해주는 중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나 명목적으로 많은 이익을 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한 '부유하고 진보된 동방'은 아시아, '빈곤하고 낙후된 서방'은 서유럽을 지칭한다. 이탈리아가 번영할 당시만 해도 서유럽은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두 학자는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유럽은 (세계의) 고립된 몇몇 지역의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서유럽이 고립된 지역이었다는 것은 서유럽이 유라시아 차원의 해로나 육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경제적 낙후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다. 


경제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리오리엔트>에서 "유럽은 19세기에 유럽 중심적 세계관이 발명되어 전파되기 전, 그러니까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카고대학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제임스 모리스 블로트는 죽기 몇 년 전인 1990년대에 발표한 글들을 통해, 16세기 이전의 서유럽은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낫기는커녕 오히려 못한 지역이었다고 평가했다. 블로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과 서유럽의 관점이 반영된 지금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서양을 중심으로 세계사가 전개된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서유럽이 선진 지역으로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다. 


바로 위에 소개한 프랑크의 말처럼 '유럽 중심적 세계관' 즉 유럽인 중심의 세계사가 서술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였다. 19세기 중반에 서유럽과 미국이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를 꺾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 된 뒤부터 유럽인이 세계사를 새롭게 썼던 것이다.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변방에 불과했던 서유럽이 '유럽대륙'으로 평가된 것도 역시 이때부터였다. 


5년짜리 국가 정권만 잡아도 국사를 새로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데, 아편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잡았으니 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새로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는 19세기에 유럽인들이 다시 쓴 세계사에 기초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서양 군대가 진을 치고 있으니, 그들의 교과서를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불행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서유럽이 아주 오래 전부터 세계사를 주도해온 것 같은 잘못된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아편전쟁. 중국 광동(광둥)성 동완시의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바닷길 통합으로 서유럽 급속도 성장


15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세계적 차원의 육로나 해로를 이용할 수 없어 후진 지역이었던 서유럽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의 바닷길을 하나로 통합하면서부터였다. 서유럽인들에 의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통해 세계를 일주하는 루트가 개척되고,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루트가 개척되었다.   


서유럽이 세계의 바닷길을 활용하게 되면서부터 세계의 부와 재물은 급속도로 서유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노동력과 아메리카의 은(당시의 세계 화폐)을 공짜로 착취한 뒤 이것을 갖고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무역을 했다. 공짜로 노동력과 화폐를 획득했으니, 서유럽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를 기초로 서유럽은 17·18세기에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이룩하고, 이것을 군사력으로 연결시켜 19세기 중반에 아편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서유럽은 15세기 이후로 바닷길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부와 권력을 획득하다가 19세기 중반에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 뒤늦게 등장한 미국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19세기 후반 이후로 세계무대에서 위상을 높였다. 


이런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과 서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힘은 바닷길에 대한 지배에서 나온다. 세계 바닷길이 여타 대륙이나 해적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미국과 서유럽의 안정적 관리 하에 있을 때만, 미국과 서유럽은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지배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까지 미국과 서유럽이 안정적으로 관리해온 바닷길 곳곳에서 중대한 도전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미국의 심기를 어지럽히면서 바닷길 지배권을 교란하는 것도 그런 도전 중의 하나다.


비단 남중국해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해적이 많이 출몰하는 바닷길은 토고 해역(아프리카 서해안 중부), 나이지리아 해역(아프리카 서해안 중부), 홍해, 소말리아 해역(아프리카 동해안), 방글라데시 해역, 말레이시아 해역, 인도네시아 해역 등이다. 


이곳들은 16세기부터 서유럽이 관리해온 바닷길의 주요 길목이다. 아편전쟁 이후에는 서유럽이 보다 더 확고하게 지배권을 행사해온 길목이다. 20세기부터는 미국의 영향력까지 함께 미치던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해적이 많이 출몰한다는 것은 미국과 서유럽이 이곳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과 서유럽의 바닷길 지배권은 지금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빙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바닷길에 대한 지배를 통해 세계를 지배한 자가 바닷길을 관리하지 못하면 패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현상은 서양의 세계 지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머지않아 종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닷길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고 세계 지배권을 획득한 서양의 시대는 그렇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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