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역사에도 사용설명서가 필요하다면?

2010.07.22 | 조회 2363

 
 배동미 / 대구 복현도장
 
 

 역사 사용설명서
 마거릿 맥밀런 지음 | 권민 옮김 | 공존 | 2009년 11월 | 15,000원
 
 이 책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과거를 왜곡하는 사례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히틀러와 처칠, 마오쩌둥, 마르크스,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를 비롯한 인물과 발칸반도에서 티베트에 이르는 모든 역사사건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역사서술이 만들어낸 결과를 파노라마식으로 조망해주고 있는 책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역사의 밑뿌리가 잘려나간 한국사에 비해 그 정도가 미미하지만 한중일 동북아 역사 전쟁의 와중에서 음미해볼 만한 책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인 역사가 너무나 자주 왜곡되고, 정치화되고 악용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 수치스럽고 후회스러운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곡해하는 역사기록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가 사용되는 것이라고? ”
 일단 책의 제목을 보고서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역사가 사용되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역사”란 예전에 있었던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었던가.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맺었고, 1882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하는 식으로 교과서에 줄을 긋고 연표를 만들어 사실을 기억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역사”다. 그러나 이 책은 전 세계 곳곳의 사례를 종횡무진으로 펼쳐가며 역사가 인간에 의해서 사용되었음을 증명한다. 독자는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으며, 역사는 분명히 사용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자제품처럼 사용설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
 하게 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역사를 이용한 사례가 글을 쓴 계기
 책의 저자인 마거릿 맥밀런은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로 영국 근현대사를 전공했고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앤터니스 대학의 학장으로 있다. 그가 쓴『평화조약자들(peacemaker)』, 『중국에 간 닉슨(Nixon in China)』등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 그가 한가지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책이 아닌,『 역사 사용설명서』를 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캐나다 CBC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조지 W. 부시의 행보가 글을 쓴 계기라고 밝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은근히 자신을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견주었다. 재임 중 트루먼의 지지율은 오늘날의 부시만큼이나 낮았지만, 궁극적으로는 1989년 서방(西方)의 승리를 가능케 했으며 현재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트루먼을 찬양하고 언급하면서 재임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역사는 그가 옳았음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멋대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트루먼은 부시의 노선과 전혀 다른 민주당원인데다가, 국제연합을 무시하지 않고 국제연합을 통해 일을 한 부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정치가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사실을 고의로 간과한 채 트루먼을 자신과 비유하여 언급했다. 저자는 부시 대통령의 예를 계기로 글을 쓰게 됐지만 그런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역사를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에는 기기의 조작방법과 동시에,“ 제품 취급 시 주의해야 할 것들”, 즉 제품을 쓰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또한 함께 제시한다. 역사에서도 주의해야만 하는 행동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역사 사용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역사사용시 주의해야 할 것들
 저자는 첫 장에서 현재가 역사에 열광하는 시대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역사로 눈길을 돌렸다”며, 역사와 관련된 채널, 역사와 관련된 출판물, 박물관의 전시회, 무수한 기념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현상이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당연하다고 한다. 역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답변까지 다양한 요구에 응답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역사에 열광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라는 건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역사가 제멋대로 이용되어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는 지금처럼 역사에 열광하는 이유가 역사로부터 위안 받으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그 마음가짐부터 경계한다. 그것 때문에 역사는 잘못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현재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때 역사가 단순성을 제시할 수 있다. 헤겔에게 역사는 무한한 정신에 의한 실현의 증거이며, 마르크스에게는 역사란 완전한 공산주의라는 예정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란 패턴을 역사 속에서 찾았다. 역사를 통해서 세상사의 단순한 패턴을 찾음으로써, 어수선하고 혼란한 현실을 정리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역사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된다. 세계가 급속하게 복잡해지고 변화하면서 과거는 더 단순하고 명확했을 것이라 오해하면서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는 사람의 일인 만큼 단순하지만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저자는“미국 흑인들은 노예 제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미국 지방 정부들이 기꺼이 사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가난한 학교에 다니는 흑인 아이들과,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흑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라고 말한다. 역사로부터 위안을 받느라, 바꾸어 말하면 과거에 파묻혀 있느라고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지적한다. 현재와의 연결성으로부터 역사를 사용할 것을 먼저 주문한다. 먼저 당면한 현실을 정확히 보아야 역사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
 
 
 현재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역사
 가장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의 진실에 대해 모르면, 다른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이용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 열광하지만, 불행히도 정확한 사실에 어둡다. 그래서 역사가 잘못 이용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저자는 아마추어 역사가들이 판치는 현실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역사학자들이 너무 난해하게 글을 쓰면서 대중과 멀어졌고 이 사이를 아마추어 역사가들이 메우면서, 대중들이 잘못된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시기를 실제로 살아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2차 세계대전 동안의 주요한 정치적, 군사적 결정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기밀에 부쳐졌던 문서가 세상에 공개되고 연구가 가능해져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전까지 아마추어들의 추측이 역사가 돼버린다.
 
 그렇다고 역사는 전문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인건 아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역사가들만이 과거를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우리 모두가 소유한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자신의 시간을 역사 연구에 바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마추어보다는 더 나은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정부분의 역할을 이들에게 기대한다.“ 우리는 과거가 어떤 식으로 진전되었다고 하면 기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처럼 역사에서도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것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역사가들은 그 몫을 정확히 해주어야 한다. 그걸 알게 해주기 때문에 역사는 늘 쓸모 있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의 유용성을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자신을 정의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된다.”“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것이 바로 역사다. 그러나 그러한 유용성 때문에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 역사가 만들어진다. 마치 요리감이 된 생선처럼 역사가 뜯어 발겨지고, 새 접시에 받쳐져서 꾸며졌던 사례들이 숱하게 보여진다. 없었던 것처럼 덮혀버린 역사적 사실도 많았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악용’이다.
 
 
 현재, 누군가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역사가 쓰인다
 1990년대에 중국 공산당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쇠퇴와 민주주의 요구의 증가를 점점 염려하게 됐다. 체제 위기를 느낀 중국은 중국의 역사를 새삼 끌어왔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중국은 고위 간부가 새삼 황제를 기리는 의식에 참여하거나, 공자에 관한 대규모 학회를 열거나, 소위‘애국 교육’을 위한 사업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역사를 강조할 때는 이유가 있다. “중국 역사는 중국 인민이 외세의 개입과 억압에 맞서 통일과 진보를 이루려고 수세기 동안 벌인 투쟁의 이야기”로 제시됐다.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 안타깝게 꺾어진 적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근대사다. 중국은 그들의 근대 시기를 ‘치욕의 세기’(1842~1949)라 명명하며 그 시기동안 받았던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되풀이해서 상기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중국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중국인들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게 한다. 사실 중국은 1970년대에 문화대혁명을 통해 역사적 유물을 파괴하고 역사적 사실을 전할 사람들을 탄압했었다. 황제는 신화 속 인물로 여겨, 조상 숭배라며 금기시했고, 수많은 공자의 고전은 문화대혁명 때 불에 탔다. 그들이 이제와서 역사 교육을 새삼 강조하고 역사적 사실들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중국에 대한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중국에 대한 충성은 결국 당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진다.
 
 있는 사실을 굳이 덮으려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그 예로 일본을 들고 있다. 1945년까지 일본의 왕실 무덤은 발굴되지 않았다. 물론 왕실 유적을 신성시하기 때문이지만, 저자는 그것이 일본 민족이 태양신의 직계 자손이라는 믿음에 반하는 내용, 즉 일본 왕실이 원래 중국이나 한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확증할 증거들이 나올까봐 막는 경우라고 보았다. 확실한 증거가 나와도 철저히 덮으려 했다.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일본 궁내청은 왕실 유적들은 신성하다고, 선조들의 혼령을 어지렵혀서는 안된다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민족주의자 집단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역사적 사실을 요리해서 그것이 현재 누군가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쓰인다면, 그것이 바로 역사의 악용이다. 책의 제 6장‘역사의 이용과 악용’에서는 역사를 잘못 사용한 예가 무수히 쏟아진다. 그 중에 하나가 지난 역사를 공격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서양 외세가 침략하여 중국의 자주권을 침해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에 와서 중국은 그 역사를 서방세계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관점에서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가진 서방은 중국의 인권문제나 티베트, 위구르 문제에 대해서 거론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중일 전쟁 시기에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만행들은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는 좋은 구실이 된다. 저자는 그런 모든 행보들이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권위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역사는 바로 ‘애국주의’이데올로기다. 현재 중국이 취하고 있는 가장 뚜렷한 역사의 사용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책임을 피하고자 과거를 바꾸려 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지금의 독일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일으킬 때의 독일은 군주제였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은 공화국이니 과거 정권이 저지른 일을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지지를 얻고 유포되었다. 그러나 베르사유 조약은 그들에게 전쟁에 따른 배상금을 요구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인에게 발전의 결정적인 족쇄로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에 대한 불만은 결국 여론을 등에 업고 히틀러가 권력을 차지하는 기반이 되고 말았다.
 
 역사는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근거로서도 많이 쓰였다. 파리평화회의에서는 자국의 영토권을 주장하기 위해 무수한 역사적 근거들이 난무했다. 역사적 근거에 대한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문제는 사실인지 검증하기 어려운 근거들이 이권을 위해 역사의 탈을 쓰고 무수하게 쏟아졌던 것이다. 1차대전 이후 식민지 처리를 위해 역사가 게임처럼 사용되고 만들어졌던 사례다.
 
 신문에서 심심찮게 보는 티베트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티베트나 대만이 중국의 것임을 입증할 역사적 사실은 없다고 했지만, 중국은 매우 자연스럽게 그들을 중국으로 편입시키면서 역사적 권리를 찾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코소보 사태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서도 역사적 사실들은 이용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정의를 규명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뒷받침 정도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두고 기나긴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역사 전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흔히 올바른 역사의 필요성을 말할 때 사실상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역사"라며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역사 교육을 통해서 가치관을 심어주고 전달하려는 목적 때문에 도리어 역사를 왜곡 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에게 역사란 인간의 복잡한 경험이다.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역사를 한 방향으로만 서술하고, 단순화시켜 버리면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역사 교육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결국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영원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다.
 
 역사 문제는 지금에 와서 보수와 진보간의 싸움에도 항상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과 캐나다 오타와의 전쟁박물관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그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떠오르게 된다. 한국에서도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에 따라 촉발되는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은 늘 신문과 뉴스를 뜨겁게 달구지 않는가.
 
 역사적 사실 중에는 굳이 강조되는 것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잊혀지는 것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행보는 일본과 비교되곤 한다. 일본은 스스로를 마치 전쟁의 희생자인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특히 일본이 패전을 할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채 한국의 종군 위안부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역대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건 역시 전쟁의 책임을 고의로 망각하는 행위다.
 
 
 과거를 입맛대로 취하다 보면 자신을 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역사는 늘 누군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만 당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역사를 제대로 사용한 사례들도 보여준다. 역사가 화해를 도모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례들이 그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칠레에는‘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있으며, 프랑스와 독일은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펴냈다. 2000년대 들어서 역사교과서를 두고 논란이 일어나는 동북아시아 쪽 국가로서는 부러운 대목이다. 심지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쓸 역사교과서 제작도 소수의 움직임이긴 하지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역사는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냉전이 심화된 이유를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역사를 모른다면 그들의 가치관, 그들의 두려움, 그들의 희망, 그리고 우리의 행위에 대한 그들의 대응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저자는 그런 점에서 역사가 아주 쓸모있는 것이라 말한다. 역사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할 때도 쓰이지만 자신을 이해할 때도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명해질 수 있다.
 
 저자는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제시한다.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약간의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또는 일어나지 않을지에 대한 경고도 들을 수 있다.”
 
 저자는 역사를 이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제대로 역사를 사용하길 바라며 엄중하게 말한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하기로 결심한 것들을 정당화하려고 과거의 근거를 입맛대로 취하다 보면 우리 자신을 기만할 수도 있다.”
 
 역사는 세탁기나 전자렌지처럼 간단한 버튼조작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생각부터 차근차근히 제시한다. 역사는 복잡하다. 인간사란 단순하지 않다. 역사도 또한 인간의 경험이 축적된 것이니 단순하지 않다. 역사는 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한 가지 관점, 한 가지 행동 방침밖에 없다는 생각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역사다. 그리고 저자는 역사를 겸손해지는 데 쓰라고 말한다. 인간은 과거 잘못된 인류의 행동을 통해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인류사에 오점을 남긴 수많은 사건들은 인간의 행동에 경종을 울리는 지침이 돼야 한다. 또한 역사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데 써야 한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추측과 남들의 추측을 조사하여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다른 설명도 가능한지 캐물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는 인간사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쓰여야
 『역사사용설명서』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이 책의 원제는 사실『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 즉“역사의 이용과 악용”이다. 책은 원제목에 충실하게 역사를 잘 사용한 예와 잘못 사용한 예를 줄줄 쏟아낸다. 저자가 미국과 캐나다의 문제를 많이 거론하고 있는 편이어서 중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주변국의 사례나, 코소보, 이라크와 같이 비교적 지금과 가까운 시기의 사례가 아니라면 눈에 들어오지 않게 쓴 부분도 없지 않다.
 
 “역사의 악용”에 대한 사례는 굳이 책 안에 찾을 것 없이, 바로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앞서서 언급했던, 영토권 분쟁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 독자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파리강화회의와 같은 사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는 우리에게는 피부적으로 느껴지는 사건이다. 중국이 한반도와의 접경문제를 의식해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제목이『The abuses of history』(역사의 악용)인가 싶을 정도로 역사가 잘못 사용된 예들을 보여준다. 책은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7장이 역사적 사실이 잘못 사용된 예들이다. 그래서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역사를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잘’이용하자는 것이다. 역사는 현세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쓰여서는(written) 안 되고, 인간사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고 그 사건들은 각자의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런 복잡다단한 단면들을 모두 들여다보면서 의미를 획득해 가는 것이 역사에 대한 인간의 도리다. 그런 각각의 사건들은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배경이 있고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문제는 역사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정치지도자나, 역사적 사실들 중에서 몇 가지는 배제해버리고 몇가지는 단순화시켜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들이다. 즉 지배와 통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역사가 멋대로 이용당하고, 역사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대중이 이용당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수차례 언급한 대로 대중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역사는 복잡한 사건의 연속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가 너무나 복잡한 나머지 교과서 속에 나열된 사건들만을 간단히 외우는 것에서 그쳐 버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권위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주장이나 이익을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이 쉽게 성공하게 된다. 그러한 의도를 막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순서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 그리고 그들의 협조자들이 그네들의 성공을 위해 만들어 낸 역사의 뒤에 숨겨진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48개(7/7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