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문화마당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증오의 세기]

2011.10.31 | 조회 3910

-최원호 / STB상생방송 편성차장


14106_p256_02새로운 밀레니엄을 외치며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던 21세기도 이제 벌써 10년이 지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했다. 우선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면 결코 새로운 한 세기를 시작하면서 바랬던 그런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01년 9월 11일. 21세기의 첫해.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의 자유무역센터가 비행기 납치로 이어진 테러로 공격당한 것이다. 9.11테러로 시작된 21세기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전쟁, 북한 및 이란핵 문제 등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세기의 10년은 지난 20세기와 단절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것은 역사가들이 언제나 바라는 깨끗한 종결, 다시 말해 자신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증오의 세기』는 지난 20세기에 이 지구 행성에서 일어났던 인간 종끼리 벌였던 끔찍하고 처절하고 지독하고 무서운 살육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지난 100년의 전쟁사, 혹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극한의 잔혹사가 책의 내용이다.


지은이 니얼 퍼거슨은 1964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 1985년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와 영국 정치 평론지 에서 ‘이 시대 최고 지성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이력의 학자가 실로 여러 기관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쓴 책이『증오의 세기 -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이다.


1900년 이후 100년은 전례 없는 진보의 시기였다. 평균 수입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1500~1870년에 전 세계적으로 50퍼센트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1870년에서 1998년 사이에는 6.5배가 넘게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13배가 높아진 것이다. 또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전염병을 퇴치하면서 평균 수명도 길어졌다. 1900년에 영국의 평균 수명이 48세였는데 비해 1990년엔 76세였다. 영아 사망률 역시 1900년의 25분의 1로 줄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기술 발전과 향상으로 인간은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되었다. 그런데 전례 없는 진보의 시기였던 20세기에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전쟁이 빈발한 원인은 무엇일까? 지은이 퍼거슨은 20세기의 극단적인 폭력성, 특히 1940년대 초 같은 특정한 시기와 중유럽, 동유럽, 만주, 한국 등 특정한 장소에서 폭력 사건들이 다수 발생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인종과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의 쇠퇴이다.


14106_p256_01

실제로 1900년 이후 100년은 현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세기였다. 20세기는 인간이 벌인 최대의 야만적 학살이 자행된 1,2차 세계대전, 나치와 소련의 대량 인종 청소,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멕시코 혁명 전쟁(1910~1920), 중일 전쟁, 난징 대학살, 중동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아프리카의 내전들, 캄보디아 킬링필드, 미국의 조정에 의한 라틴아메리카의 양민 학살과 역시 미국의 묵시적 허락 하에 자행된 동티모르 대학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앙골라와 보스니아의 폭력 사태 그리고 모든 학살 장소에서 어김없이 자행된 강간살해와 생체 실험 등으로 얼룩졌다.


20세기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망자가 전쟁 및 인종청소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은이는 몇몇 가정에 기초해 총 사망자수는 1억 6700만에서 1억 8800만명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20세기에 스물두 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의 행위로 죽은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문명의 발달과 진보가 인간의 잔혹성과 야만성을 약화시키리라고 기대했다면 지나치게 순진하게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닐까. 발달된 서구 문명 역시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식민지 착취와 끝 모를 탐욕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퍼거슨의 경우에는 이런 서구 문명의 탐욕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약한 것 같다.



1) 인종과 민족 갈등

20세기 내내 인간은 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인종이 별개의 종(種)인양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일부 집단을 ‘인간 이하’로 분류했다. 결국 20세기 최악의 전쟁들은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유사한데도 타자(他者)를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들 때문에 일어났다. 헤르만 괴링은 2차 세계대전을 노골적으로 ‘위대한 인종 전쟁’이라 부르기도 했다.


퍼거슨은 인종주의의 뿌리, 즉 다른 인종에 대한 증오가 근거 없는 우생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물론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모든 사람이 인종간의 결합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강력한 동기였지만 대량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 중엔 노골적으로 물질적 탐욕에 이끌려 움직이거나 동료집단의 압력이나 군대의 야수성에 휘둘려 행동한 보통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에 대한 세계관이 새로운 제국들의 기초를 이루었다.


14106_p256_03특히 퍼거슨은 유대인 혐오의 경우, 나치만이 아니라 실제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한결같이 중증의 유대인 혐오증을 앓고 있었다고 말한다. 유럽의 보통사람들이 드러내준 유대인 혐오라는 협조가 없었다면 히틀러의 기반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여러 군데에서 강조한다. 다수의 협력자들은 언제나 제국(帝國)의 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처럼.


그런데 중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혐오 역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퍼거슨은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아닌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의 발발로 보고 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은 몇 달 동안 모범답안에 해당하는 전격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전투는 일본군 책임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인명과 재산 피해 또한 훨씬 컸다고 한다. 1937년 12월, 일본군은 장제스의 수도 난징에 접근하면서, 중국인들의 저항에 치명타를 입히고 전쟁을 빠르게 종결시키기를 기대하면서 본보기를 보여 주려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한 기사가 있다. <도쿄 니치니치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중국인 100명 죽이기 시합에 나선 중위들이 호각지세의 실력을 보여주다. 구양의 가타기리 부대 소속인 무카이도 시아키 중사와 노다 다케시 중사는 개인 총검 전투에서 누가 먼저 중국인 100명을 베어 넘어뜨릴지 가리는 친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두 사람이 거의 호각지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이후 극동국제군사재판부는 1938년 12월에 일본군이 난징에 입성한 이래 5주 반 동안 계속된 난징 대학살로 무려 26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일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했다. 이는 전체 전쟁 기간에 죽은 영국 민간인의 네 배가 넘는 수치였다. 또한 8천~2만 명이 강간을 당했고, 하룻밤에 평균 1000여 건의 강간 학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본군만의 특성은 아니었다. 터키인들이 아르메니아인을, 스탈린의 충복들이 쿨라크나 폴란드인 등 인민의 적을 인간 이하로 생각하며 그렇게 다루었다. 결국 다른 인간을 열등하고 유해한 종(種), 즉 단순한 해충으로 간주하는 심리는 20세기의 전쟁이 그토록 폭력적이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2) 경제적 변동성

지은이는 20세기에 전쟁과 학살이 자행된 또 하나의 원인으로 경제적 변동을 든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변동은 경제성장률, 가격변동, 금리, 고용변화의 빈도와 진폭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압력과 긴장을 의미한다. 경제적 변동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살아가기 어렵거나 빈부의 차가 커지면 소수 민족 집단들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토 확장이든 시장 개척이든 경제적인 이유는 모든 전쟁의 오래된 동인(動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새로운 제국(帝國)들이 전쟁을 일으킨 한결같은 명분이 바로 ‘생활공간의 확장’이었다. 이는 열강의 자원 착취 욕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은 1890년대 말 라이프치히대학 지리학 교수였던 프리드리히 라첼이 고안하고, 카를 하우스호퍼가 발전시켰다. 그 주장은 경제 발전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에 근거한 것이지만 1930년대 상황에서 그 주장은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특히 그러했다. 1930년대 말에 세계 주요 경제국 가운데 영국 다음으로 일본, 이탈리아, 독일이 인구밀도가 높았다. 특히 히틀러는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나 원료가 한정된 상태에 인구 밀도까지 높은 국가에 새로운 ‘생활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생활공간’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군사 국가라면 전략상 중요한 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했다. 석유와 고무 등 당시 중요한 이 물자들의 생산을 미국과 대영제국, 소련 또는 이들 세 국가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서양의 기계와 원료 수입에 크게 의존했다. 1935년 일본은 황마와 납, 주석, 아연, 망간은 수입의 절반을, 고무, 알루미늄, 철광석, 면화는 수입의 거의 절반을 영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또한 인도와 이집트에서 면화를 수입하는 만큼 미국에서도 면화를 수입했고, 다량의 미국산 파쇠와 석유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공황 이후 국제 무역이 붕괴되면서 일본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위기 대응책으로 영토 확장 말고도 다른 대안들이 존재했지만 군사적 확장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무역을 회복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 막 생겨나던 군산복합체를 위해 석유나 구리, 석탄, 기계류, 철광석 수입을 늘려야 했기 때문에 영토 확장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였던 구조적인 문제가 되레 악화되었다.



3) 제국의 쇠퇴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충돌을 이해하자면 배경에 있는 제국(帝國)을 살펴보아야 한다. 1900년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다민족 거대 제국의 쇠퇴와 몰락이 전쟁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 대부분은 제국이었거나 제국이 되려고 애썼다. 당시 민족국가나 연방국가가 되려 했던 그 시기의 여러 정치 조직도 사실상 제국이었다.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왕국은 실제로 대영제국이었고, 독일은 프로이센제국, 인도는 무굴제국, 중국은 청 황제들이 정해놓은 경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선 ‘제국’은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규모의 경제 때문에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대부분의 민족 국가가 보유할 수 있는, 전투태세를 갖춘 병력 규모는 인구 통계학상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제국은 그런 제한을 크게 받지 않았다. 제국은 여러 민족으로부터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여 장비를 지급하고, 세금을 징수하거나 국채를 모집하면서 식민지의 자원을 활용하는 핵심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20세기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로 인한 피해는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었다.


또한 제국들 간의 접촉 지점, 다시 말해 국경선과 완충지대, 전략요충지에서는 제국 중심지보다 더 많은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상존했다. 거대 제국의 지각판이 만나는 단층선이었다. 그리고 제국은 종종 경제 질서 창출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제적 상업망 통합의 성쇠는 제국의 흥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그러나 과거 제국과는 다르게 20세기에 탄생한 제국은 상대적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20세기 제국들은 단명했음에도 파괴와 살상에서 비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근대 제국들은 유례없는 중앙집권적인 권력과 경제적 통제, 사회적 동질성이란 세 가지 요소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요소는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이 새로운 제국들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적국의 훈련받은 군인만이 아니라 본국, 해외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을 공격했다. 이는 20세기 대격변의 진원지가 새로운 제국 국가의 주변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20세기 말 냉전이 끝나자 서구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며 “역사의 종언”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니얼 퍼거슨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것을 두고 “기본적으로 지난 100년의 궤적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다시 동양으로 방향을 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계의 방향 전환은 전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서양 열강들은 아시아 국민과 자원에 대한 지배를 단념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하면서 1500년 이후 4세기 동안 무너졌던 동서양의 균형이 회복되고 서양의 상대적인 하락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지은이가 마지막 요소로 내세운 제국의 몰락은 그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주장해 온 서구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상황은 쇠퇴하는 제국과 새로 부상하는 제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또 다른 충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세계 전쟁의 불안과 위협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쟁은 없어야 하나 힘의 논리를 부정할 순 없다고 한 어느 한 작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20세기는 진보의 시대다. 1900년 이후 100년 동안 인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이전에 견줘 연평균 성장률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 기술은 발전하고 지식은 축적됐다. 그래서 인간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됐다. 사람들은 효율적인 노동으로 이전보다 세 배가 넘는 여가 시간을 갖게 됐다. 민주주의와 복지 개념이 확산됐다. 그러나 20세기는 폭력이 놀랄 정도로 크고 격렬하게 진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어떤 시대보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기였다.



문명화된 사회의 지도자들은 이웃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원시적인 살해 본능을 폭발시켰다. 잔악함과 섬세한 기술이 결합한 결과, 20세기 총 사망자 수는 1억 6700만명에서 1억 88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세계적인 석학 니얼 퍼거슨(46)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는 말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을 꼽을 때 심심치 않게 순위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 퍼거슨 교수는 ‘증오의 세기’(이현주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인종 청소 및 대학살, 내전 등에 의해 20세기가 피로 물든 까닭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인종 및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의 쇠퇴다.


●다인종 지역 정치분열 등 원인 들어

퍼거슨 교수는 ‘인종상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유전 법칙이 널리 보급되고, 인종이 뒤섞인 지역이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고 진단한다. 또 먹고 사는 문제가 힘겨워지고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소수 민족 집단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다민족 거대 제국이 해체된 이후 분쟁 지역이나 권력의 공백 지역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퍼거슨 교수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 및 통계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20세기에 일어난 전쟁, 특히 1, 2차 세계 대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짧게 언급됐지만 한국전쟁 부분도 흥미롭다.


퍼거슨 교수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양인들은 3차 대전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세계 전쟁과 다를 바 없는 격렬한 파괴가 초반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18개국이 참전했고, 3년 동안 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세계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이 인류를 파멸시킬 정도로 파괴력을 키워 세계 열강들이 전면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게 가장 그럴 듯한 이유라고 퍼거슨 교수는 분석한다. 그리고 그는 세계 전쟁이 끝난 시점을 한국전쟁 휴전 협정이 맺어진 1953년 7월 27일로 본다.


●서양, 한국전쟁을 당시 3차대전 인식

이후 미국과 소련이 각각 핵무기를 보유한 뒤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 나오는 ‘치킨 게임’을 벌이며 냉전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유지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퍼거슨 교수는 착각이라고 일축한다. 1945년부터 1983년까지 1900만~2000만명이 100차례 정도의 대규모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폭력이 일어나는 곳이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달라졌고, 초강대국들은 정면에서 싸우기보다 대리전을 치렀을 뿐이라는 게 퍼거슨 교수의 주장이다.


물론 1980년대 중반 이래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60% 이상 줄었고, 195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21세기가 낙관적이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같은 종교, 같은 유전자는 아닐지라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상당히 잘 통합되어 있는 곳이더라도 문명 체계가 급속하게 무너질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21세기의 불안 요소라는 생각도 슬며시 내비친다. 그가 던지는 의미심장한 질문 하나. “중국의 경제 성장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퍼거슨 교수가 현미경을 들이대듯 20세기에 일어난 증오를 깨알처럼 관찰하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그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인플루엔자보다 더 지독한 변종과 전염병을 만들어낼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의 개입으로 인류 역사가 갑자기 끝나기 전까지, 인간에게는 같은 인간이 최악의 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지난 세기의 전쟁을 야기했던 동인(動因)들을 이해할 때에만 다음 세기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일갈한다. 아쉽게도 그 동인을 발본색원할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8개(5/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