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과 신명나는 놀이의 회복

2011.06.02 | 조회 2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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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3월을 맞이하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3월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입춘이 지났지만 추위가 매섭거나 봄꽃이 더딜 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한나라 원제 때 절세미녀 왕소군이 강제로 흉노족에게 시집가서 지은 시에서 나왔다. 낯설은 흉노 땅에서 봄꽃을 대하니 봄날의 정취도 없다는 뜻이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그러나 불사춘이라 해도 3월은 만물이 소생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달임에 틀림없다.
「노자」제42장을 보면‘ 도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업고 양을 안고, 충기로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소위 ‘ 삼생만물(三生萬物)’이다. 노자는 천지를 하나의 큰 ‘풀무’로 보았는데 바로 3월부터 풀무질이 더욱 왕성해진다. 우주라는 풀무를 오가는 음양의 기류가 만물을 생생하게 만드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람들 역시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3월을 맞는다. 특히 그동안 등한시했던 여가생활을 본격적으로 다시 해보려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테면 등산이나 골프 등 운동과 독서, 음악감상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식이다. 이는 판에 박힌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보다 풍요롭고 활기차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어쨌든 훈훈한 봄바람에 낮 시간이 길어지면 무엇을 해도 좋은 시절이 아닌가?


일상과 놀이의 경계를 생각하며 김문겸 교수(부산대)는「여가의 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생활시간 구조를 크게 세 가지, ‘생리적인 필수시간’과 ‘노동시간’ 그리고 ‘여가시간’ 으로 구분했다. 나아가 한국인 대부분이 여가시간을 ‘미래 혹은 계획 지향적’이기보다는 ‘현재나 존재 지향적’으로 활용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직업과 관련되거나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만 여가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놀이 행태’를 세 측면으로 나누었다. 첫째가 먹고 마시고 소화하는 재생산을 위한 것, 둘째는 산책과 소풍 등 체력에 자극을 주는 것, 마지막으로 사고와 감상, 글쓰기 등 정신의 감수성을 위한 것이다. 이들 행태는 그 우월성을 떠나 모두가 건강한 정신과 육체의 유지에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준거는 ‘놀이로서의 여가’라는 명제를 풀어내는 여러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몇 년 전에 일본의 남단 미야자끼현으로 출장을 갔다. 귀국 전날 밤 가이드를 맡은 일본 민방(民放; 민간방송)의 프로듀서가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자신이 회원인 어느 동호회 모임이라 했는데 도착해 보니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층까지 다양했다. 사무실 한쪽에는 크고 작은 모형배들이 전시돼 있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 프로듀서는 60년 전통의 ‘배사랑’모임으로 회원들이 조립한 배라고 설명해 주었다. 놀라운 것은 663년 백제부흥군을 도왔던 일본 원군들의 배도 복원했다는 것이었다. 그 고대 선박을 보는 순간,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개발한 일본의 저력이 이해가 되었다. 대를 물리면서 이어지는 동호회. 이들은 순수한 아마추어들이지만 때때로 전문가들도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또한 현내에 이러한 모임이 10여 개로 온천, 고성(古城), 지명, 무덤 등을 대상으로 답사도 가고 회보도 발행한다고 덧붙였다. 직업이 아닌 취미나 여가활동으로 즐기면서 참여한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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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취미의 성과를 하나로

우스갯소리로 한국사회는 ‘3박’에 빠졌다고 한다. 무엇이든 빨리 해치우는 ‘급박’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대박’, 그리고 노는 것마저 ‘천박’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여가나 취미를 둘러싸고 천박하다는 소리까지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사사로운 개인적인 시간까지 간섭하자는 말은 아니다.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정신의 감수성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여가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다.


그런데 여가활동의 대부분은 취미생활로 채워진다. 원래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생계를 위한 일은 엄격한 의미에서 취미가 아니다. 가령 뱃사공이 노를 젓는 행위는 취미로 하는 운동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뱃사공이 운동 삼아 일한다고 말한다면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취미나 여가활동이 직업으로 이어진 사람들도 많다. 여행가나 사진작가는 수없이 거듭되는 여행을 통해 작품을 생산한다. 여정 그 자체를 즐기면서 직업적 성과를 동시에 거두는 것이다.


그런데 직업과 취미는 ‘음양(陰陽)’ 같이 상호 보완적 성격을 띠어야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육체노동에 종사한 사람이 여가시간에 헬스를 하고, 정신노동에 지친 사람이 또 두뇌를 쓰는 취미를 갖는다면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시작과 끝이 있어야 원을 그리고, 하늘의 하강작용과 땅의 상승작용이 결합해야 만물이 생성되고 성장하는 법이다.



신성함이 충만한 신명나는 삶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명저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은 가장 자유롭고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를 통해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로 변질되었다며 고대의 신성이 충만했던 삶에서처럼 진정한 ‘놀이정신’의 회복을 바라고 있다. 또한 ‘놀이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장과 노동의 일방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민주화와 선진경제를 이룩했다. 근대화 이전의 절대 빈곤의 시장과 노동의 노예상태를 벗어났다는 평가다. 이제 우리는 노동의 해방에서 획득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뜬구름 같은 인생에서 우연히 한나절 한가함을 얻는다(浮生偶得半日)’라고 했던가? 예로부터 한민족은 ‘흥과 신명’의 민족으로 정말 잘 놀았다. 한동안 먹고살기 바빠서 잊었던 우리 고유의 진정한 ‘놀이정신’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천지 자연질서와 하나 되는 놀이를 즐겼던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은 살아 있는가? 소중한 혼줄을 되살리고 근본을 바로잡는다는 입장에서, 모두가 진지하게 천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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