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담론과 인류공동체

2011.05.23 | 조회 2455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세계화시대 인류는 지구촌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살 수밖에 없다.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민주화물결이 중국과 북한에까지 영향을 주어 우리나라에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일본의 방사능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유럽과 미국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에도 다문화가족의 비중이 커져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바꿔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직은 이들 해외 이주자가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우리가 그들 모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점차 주요해질 전망이다.


동양은 정신문명이고, 서양은 물질문명이라는 것이 흔히 동서양 문명을 비교할 때 하는 이야기다. 18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우위에 근거한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이러한 단순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 문명 전체를 그 시작부터 조명해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흔히 서구 문명의 두 축을 유대문명과 그리스문명으로 본다. 그러나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준 것은 그보다 앞선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이다. 이집트문명은 유대문명, 아니 그의 원형인 시리아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유대문명의 핵심인 유일신 사상은 신들의 고향인 이집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투탄카멘 왕의 아버지가 유일신인 아톤신을 새로운 이집트의 신으로 삼으려다 실패하고 암살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와 인도문명이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지도를 보면 북아프리카와 인도는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바닷길이 그리 먼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정벌에 나서 결국 실패했지만 그가 동방원정에 나선 것이 그 이전에 이집트 파라오가 한 것을 답습했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리스문명하면 주피터 신과 아폴로 신 등 많은 인간적 모습을 한 신들이 활약하는 신화가 생각난다. 그러나 아테네 황금시대 전에 그리스의 주요 종교 가운데 하나는 오르페우스교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프페우스교도들은 영혼이 윤회한다고 믿었으며 영혼은 여기 지상의 생활방식에 따라 내세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기도 하고 영원하거나 일시적인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오르페우스교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며 이집트의 종교는 인도의 윤회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론하면 오르페우스교의 윤회사상이 설명이 된다.


동양의 유교가 종교가 아니고 단순히 윤리체계라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유교보다는 유학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사실 공자나 맹자, 그 이후 주자의 신유학에 이르기까지 유교에는 신이 없다. 있다면 하늘 즉, 천(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대 유교에는 분명히 신이 있었다. 즉, 상제(上帝)가 유교의 신이다. 상제는 하느님으로서 인격신이다. 공자가 유교를 정립하면서 상제를 추상적인 천(天)으로 대체한 것이다. 도교에서는 상제가 옥황상제로 변해 남아 있다. 노장사상은 도(道)라는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시작하지만 도교가 되면서 인격신이 필요했다.


기독교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유교 개념으로 기독교를 해석해 전도하려 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 신부였던 마테오 리치다. 동양인 최초로 기독교를 유교와 창조적으로 접목시켜 재해석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천주교 박해로 친형제를 잃고 가문이 몰락한 다산에게는 기독교를 유교로 해석하는 것이 자신의 변절을 정당화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유교의 상제가 바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주 즉,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유교와 기독교의 창조적 융합이라는 방향에서 다산 사상을 종교로 더욱 발전시켜 나간 것이 동학과 증산도다. 일본의 신토(神道)는 수많은 인격신을 신봉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에서는 신토를 원시신앙으로 비하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대에는 유불도를 아우르는 풍류도가 있었다. 풍류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으나 일본으로 건너가 신토로 변해 살아남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21세기 동서양의 문명이 서로 갈등한다는 사무엘 헌팅톤류의 문명 충돌론도 있다. 하지만 이상과 같이 문명의 원류를 찾아보면 이들이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그 저류에서 이미 상호 교류하면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할수록 문명 간의 대화를 통한 진정한 인류 공동체 건설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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