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오곡밥은 드셨나요?

2011.02.17 | 조회 2822

“오곡밥은 먹어야지?” 지금도 정월대보름이 오면 시골의 노모는 전화를 한다. 며느리를 찾아 오곡밥을 먹는지 꼭 챙긴다. 대도시 서울에 사는 아들네의 살림살이를 몰라서가 아니다. 어제가 곧바로 옛날이 되어버리는, 팽팽 돌아가는 21세기의 세상임을 잘 안다. 하지만 노모에게 정월대보름은 아직까지 그 어느 때보다 귀중한 날이다. 한 해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지내기 위해 간절한 소망을 담아내는 날이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바뀐다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뿌리는 변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기층문화의 질긴 생명력이다.

음력으로 1월15일, 새해 들어 처음으로 달이 꽉 차는 정월대보름이다. 한 해의 첫 만월이다 보니 그냥 보름이 아니라 대보름이다. 농경사회에서 달은 땅, 여성성을 뜻하고 이는 다산을 상징한다. 다산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민중들의 세시풍속도 많다. 한 해 세시풍속의 20%가 이때에 몰려 있다. 땅콩이나 호두·밤 등 견과류를 ‘오드득’ 소리나게 깨물어 먹는 부럼 깨기, 남녀노소 누구나 술 한잔하며 기쁘고 즐거운 소식만을 듣게 해달라는 귀밝이술, 5가지 곡식으로 지은 오곡밥 나눠먹기가 대표적이다. 또 떠오르는 달을 보며 풍년을 기원하고 소원을 비는 달맞이, 다리밟기, 달집태우기, 액막이 연날리기 등도 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세시풍속 체험의 장이 도심 곳곳에서 열린다. 삶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관·단체가 제공하는 것이다 보니 생명이 없다. 그야말로 박제화된 체험행사들이다. 세시풍속은 시대나 사람들의 살림살이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기층문화는 활짝 꽃을 피우다가 소멸되고, 또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우리의 세시풍속, 나아가 민속문화가 변화하는 게 아니라 맥이 끊기고 단절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식민주의자들의 치밀한 전략과 전술 아래 왜곡되고, 해방 이후 미국 중심의 서구문화가 급작스럽게 밀려들면서 폄훼당한 것도 한 이유다.

농경사회를 지나고 산업사회를 거쳐 첨단 정보화사회에 이른 우리가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을 오늘에 그대로 되살리고, 계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거죽만 남은 세시풍속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우리가 챙겨야 할 것들이 담겨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바뀌지 않고, 또 바뀔 수 없는 삶의 지혜, 자연과 이웃에 대해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정신과 태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원래 대보름 오곡밥은 세 집 이상 성이 다른 집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한다. 굳이 이웃과 밥을 나누며 새삼스레 정을 돈독히 하고, 지역 공동체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정월대보름만이 아니라 삼짇날, 단오, 유두, 칠월칠석, 백중, 동지 등에도 오곡밥 나눠먹기처럼 공동체를 생각하는 정신이 실려 있다. 또 인간의 오만함을 털어내고 생명을 존중하며,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개인적으로 보다 더 충실한 삶을 도모하려는 뜻도 곳곳에 녹아 있다.

공동체성의 회복,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 개인 삶의 충실성은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정월대보름을 맞은 오늘 한번쯤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생각했으면 싶다. 그 옛날처럼 드넓은 밤하늘에서 대보름달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승용차·전동차의 창밖으로, 아파트 베란다나 쌈지공원에서 대보름달을 잠깐 바라보자. 그리고 이웃 공동체를, 자연을, 나를 한번 돌아보자.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216192652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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