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지킴의 올곧음을 기리며

2011.09.15 | 조회 3462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해영 / 객원기자


“조국과 겨레는 나의 사랑 나의 영광 나의 힘 나의 생명
그를 위해 짧은 일생을 바쳐 그와 함께 영원히 살리라”
-국립현충원 충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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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의 지리적 형세
127_1국립묘지 부지는 동작구에 위치해 있다. 서울 동작동(銅雀洞) 국립묘지 앞을 흐르는 강을 예로부터 동적강(銅赤江)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후배를 통해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동작이란 말은 ‘동재기’라는 옛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래됐다 한다. 동재기 국립묘지로 넘어 오는 강변 연안일대에 검붉은 구릿빛 돌들이 많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묘지는 한강과 과천 사이 넒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을 마주보고 그 정기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관악산은 관(冠)모양을 하고 있다해서 붙여졌는데, 거대한 불꽃모양을 띄고 있으며 화(火)기운이 강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봉우리는 붓을 거꾸로 놓은 듯해서 문필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문필봉 아래서 태어난 이들 중에 위인들이 많다. 북두칠성 중 문곡성의 정기를 받았다고 알려지는 강감찬 상원수의 탄생지가 관악산 자락 낙성대이고, 구한말 시서화 삼절에 능했던 자하(紫霞) 신위(申緯) 선생(조선 후기의 문신·화가·서예가)의 탄생지도 관악산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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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가 품고 있는 지리적 형세는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의 공작장익형(孔雀張翼形)이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주봉인 공작봉은 양쪽으로 불끈 솟아올랐다 엎드리는 공작을 연상시키며, 산줄기와 봉우리가 만나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형세를 보여준다. 또한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들어 마치 명주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산수가 유정(有情)하고 하나의 산봉우리, 한 줄기의 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가히 명당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한다
천천히 주위 산세와 강줄기를 조망하며 묘역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순국선열 사이를 지나면서 이들의 나라 지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낯익은 이름의 묘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순국선열 이회영(李會榮)의 묘’. 얼마 전 KBS의 역사 프로그램(<자유인 이회영>)에서도 소개가 된 이회영 선생(1867∼1932)은 백사 이항복 선생의 후손으로 국권피탈 후 전 재산을 조국독립에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묘비를 우러르며 구한말 애국지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 보았다.


비문에는 선생께서 생전에 쓰신 <시위대 장병을 애도하며>라는 5언 절구의 애사(哀詞)*가 적혀 있었다.


“장하신 대장 스스로 머리쏘아
의분의 피 흩뿌렸으니
꽃다운 이름 민영환 공과 더불어 전하여 지리라
모든 용사들 두려움 없이 기꺼이 나아가
싸우다 가셨으니
님들의 뜨거운 충의 만년토록 칭송되리라.”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해학(海鶴) 이기(李沂)선생(1848~1909)의 묘소였다. 동방 한민족의 시원문화와 인류 상고역사의 실상을 밝혀주는 민족의 보물 같은 책 『환단고기』를 감수하신 분이다.


해학 이기 선생님은 전북 만경에서 태어나 유형원, 정약용 등의 실학파의 학통을 계승했다. 한때 녹두장군 전봉준과 거사를 도모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05년 러일전쟁 후 포츠머스조약 체결 때 한국의 처지를 호소하기 위해, 대종교를 창립한 나철과 미국에 가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가지 못하고 서면항의를 하였다. 을사늑약 후 한성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항일운동과 민중계몽운동을 하였으며, 타계하기 전까지 단학회를 설립해 사학연구에 전념하셨다고 한다. 그 지인 중 한 분이 『환단고기』를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이다. 학계 일부에서 『환단고기』를 흠집내며 위서로 트집을 잡지만, 신교(神敎)의 삼신(三神)문화를 알고서 보면 그 역사적 가치는 독보적이다. 조국 광복과 민족정신의 회복에 전 생애를 바친 분들의 추상같은 정신에서 어찌 위서가 나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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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이기 선생의 묘소 뒤쪽으로는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 마련되어 있었다. 독립운동가 중 자손의 맥이 끊어진 분들을 모신 제단이다. 유관순 열사나 나석주 열사 등도 눈에 보였고, 환단고기 편찬에 자금을 조달했던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 장군, 항일 무장투쟁에 헌신한 오동진 선생의 묘소가 보였다. 옷깃을 여미며 그분들에게 엄숙하게 예를 올렸다.


사실 이 넓은 국립묘지에서 이들 호국지사들과 대면할 줄은 미처 예상을 못한 일이었다. 불초한 후손이 찾아와 배회하는 모습을 보시고 신도(神道)에서 이곳으로 인도해 주신 게 아닌가 싶었다. 새삼 나라사랑의 충절의 기상을 올곧게 세워야겠다는 사명감이 가슴깊이 울려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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