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生과 共生

2010.12.17 | 조회 2380

요즘 상생(相生)이란 말이 남용되고 있다. 원래 "나무(木)는 불(火)을, 불은 흙(土)을, 흙은 쇠(金)를, 쇠는 물(水)을 생(生)한다"는 오행설(五行說)의 개념인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서로 돕고 산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서로'라는 훈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오히려 본뜻을 곡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언어란 본래 법칙보다 쓰임이 더 무서운 만큼 잘못된 용례들이 너무 굳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한번 짚고 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상생은 양자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쌍방행위가 아니다. 상생이란 목생화(木生火)·화생토(火生土)·토생금(土生金)·금생수(金生水)에서 다시 수생목(水生木)으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을 의미한다. 즉,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가 또 누군가를 돕고 또 그가 다른 누군가를 돕는 가운데 우리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며 그게 결국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삶의 이치이다. 대기업더러 무턱대고 중소기업과 상생하라고 윽박지르거나 그리하면 대기업에도 곧바로 도움이 된다고 꼬드긴들 별 효력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상생에는 반드시 상극(相剋)이 따라온다. 상극 관계를 모르면서 어쭙잖게 상생을 꾀한다면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상생과 상극을 너무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것도 옳지 않다. 때론 적절한 상극 상황이 화끈한 상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너무 쉽게 상생과 공정(公正)을 연계하는 것도 부당하다. 상생은 삶의 원리이지 갑자기 외쳐댈 규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생'이 남용되기 전에 우리가 늘 쓰던 단어가 있다. 바로 공생(共生)이다. '공동의 운명을 지닌 삶'이란 뜻인데, 내가 몸담고 있는 학문인 생태학에서 아주 자주 쓰는 용어이다. 영어로는 심비오시스(symbiosis)라고 하는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상리공생(相利共生·mutualism)과 한쪽에만 이득이 되는 편리공생(片利共生·commensalism) 모두를 포괄한다. 개미와 진딧물은 상리공생을 하고 밭을 가는 황소와 그 뒤를 따르며 벌레를 잡아먹는 황로는 편리공생을 할 뿐, 어쭙잖게 상생을 말하지 않는다. 상생은커녕 딱히 얻는 것도 없으면서 남에게 해나 끼치는 편해공생(片害共生·amensalism)만 저지르지 않아도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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