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실제상황

갑오년 1894년 vs 2014년 외

2014.07.02 | 조회 2168


갑오년 1894년 vs 2014년 외

갑오년 1894년 vs 2014년

1894 갑오년에 조선에서 발생한 갑오동학농민혁명은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신분제 철폐 등 내정개혁(갑오경장)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청나라와 일본을 한반도에 개입시키는 빌미가 되었다. 남의 나라 땅에 들어와 패권 다툼을 벌인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일본은 청나라를 이겼고 중국은 패전국이 되어 중국 중심의 아시아는 일본중심의 동아시아로 바뀌게 되었다. 일본은 그 기세를 타고 러일전쟁(1904~1905)에서도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러시아 중심의 세력을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 넣었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은 이 같은 분위기에서 가능했고, 유럽은 1차세계대전의 전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2주갑을 지나 맞이한 2014 갑오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중국은 패권국인 미국을 긴장시킬 만큼 강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일본과 맞붙은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에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돌출시켜 이어도를 포함한 서해 지역에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아베 수상이 보란듯이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그동안 헌법상 제한에 의해 활동 범위가 한정된 자위대에 사실상 정규군과 동등한 지위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는 제2차대전 전범국으로서 오직 자국의 국방을 위한 ‘자위대’를 가질 수 있을 뿐 정규 군대를 가질 수 없었던 일본이 그 족쇄를 풀기 시작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한 잡지에서는 2014년을 “중화제국주의의 야망을 분쇄하기 위해 국방을 재건하는 원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 미국은 ‘동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하며 동북아 패권 문제에 개입하려는 의중을 표하고 있다. 

1894년의 갑오년이 내외적으로 변혁의 격랑에 소용돌이친 해였듯이, 2014년의 갑오년 또한 많은 어려움과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동북아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가 요동을 치면 한반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정세 변동의 파고가 더욱 높아질 2014년에 한국은 전략적인 준비와 체계적인 대응력을 높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여론이다. 1894년의 갑오동학혁명은 이 시대에 개벽세상을 선포하며 새로운 근대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그 개벽의 열망은 2주갑이 지나도록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세계 역사의 종주인 한민족 시원 뿌리 역사가 침탈, 왜곡, 악용되고 있는 ‘역사전쟁’은 2014 갑오년에 우리가 당면하고 극복해야 할 근원적인 과제 중 하나다.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사회경제적 통합과 안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올바른 역사의식을 확립해 우리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굳건하게 다지는 일은 민족 중흥과 국가 안위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1894 갑오년 비극의 역사를 다시 재현할 것인가?


눈여겨봐야 할 갑오년


1594년의 갑오년

[사진]1594년의 갑오년은 임진왜란의 전화 속에 휘말린 시기였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자 조선은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했으며, 이에 중국과 일본의 정규군이 조선에서 전쟁을 벌였다. 1593년 명군은 평양에서 일본군을 완파했으나 벽제에서 참패를 기록한 후 태도를 바꿔 왜군에게 휴전협상을 제의했다. 이 강화협상은 무려 4년을 끌게 되고 협상이 진행되는 갑오년 무렵부터 조선의 관민들은 명군과 일본군에 의해 온갖 악행과 치욕을 당하면서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1954년의 갑오년

[사진]이 시기에 제네바협정(1954.7.21: 인도차이나 휴전협정)이 있었다. 이는 한국전쟁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프랑스 식민지 지배에서의 독립을 선언한 호치민 등 베트남 민주공화국측과 프랑스 간의 전쟁)의 전후 처리문제로 미국, 중국, 프랑스, 소련, 영국 등이 모여 논의한 정치회의이다. 본 협정에 의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3국의 독립을 프랑스가 정식으로 승인하여 인도차이나 전쟁은 종료하였으며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한편 이 회담을 계기로 제2차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가 중심이 되었던 국제질서는 자본주의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사회주의진영을 대표하는 소련의 양강체제로 나뉘어 대립하는 일명 냉전시대(cold war: 양측이 무기 없이 정치, 외교, 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 전략으로 서로 대결을 벌이는 것)로 전환하게 되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가속화되는 군국주의

일본은 제2차대전 전범국으로서 정규 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자국의 국방을 위한 ‘자위대’를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본이 서서히 그 족쇄를 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에 대한 명분은 다름 아닌 동북아의 갈등구조이다. 독도 망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국제적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전략에서 도출된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단계는 다음과 같다.

① 미국의 일본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 승인

영원한 우방이자, 파트너국인 미국의 허가를 얻음으로써 집단적 자위권을 공론화시켰다.

② 비밀 보호법안 최종 가결

‘국가안보에 대해서는 특정한 비밀을 지정할 수 있다’는 비밀보호 법안을 통과시켜 향후 국가안보에 대한 일체의 문제에 대해서 비밀이 보장되는 여지가 마련되었다.

③ 아베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국제사회에 일본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전후 세대 일본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④ ‘전쟁금지’ 문구 삭제

제2차대전 후에 만들어진 평화헌법 제9조에 있는 ‘전쟁금지, 군대보유 금지’라는 항목에 대해서 향후 개헌논의를 시도할 것이다. 

⑤ 일본 군대 소유

비밀 보호법안과 평화헌법 개헌논의가 합쳐지면서 국가 안보를 위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은 정당화될 수 있다.


(글: 월간개벽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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